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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제물포 자동차 매매단지 앞의 斷想 본문

내이야기

제물포 자동차 매매단지 앞의 斷想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1. 23:48

제물포 자동차 매매단지 앞의 斷想

늦은 밤! 수봉공원 밑자락에 있는 제물포 자동차 매매단지의  세로 입간판에 달린 형형색색의 수없이 많은 전구의 불빛이 정신없이 반짝이고 있다. 위쪽으로 치달려 오르다 꼭 네 번씩을 깜빡이며 정지하는 듯하더니 쌩하니 꼬리를 물고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친다. 치솟을 때나 정지동작에서나 아래로 무섭게 질주할 때에도 순간순간 정신없이 깜빡이는 짓은 계속한다.

퇴근 무렵 늘어진 목소리로 전화를 한 동창 녀석의 세상 푸념 듣는 술 한잔을 하고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내린 참에 보이는 모습이다. 술기운에 게슴츠레한 눈앞에 거대한 철구조물이 가로막고서 층층이 숨어있는 수많은 중고차들의 헤드라이트에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번쩍이며 낯선 이를 쫓아내듯 눈알들을 부라린다.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등이 꽤나 오래 켜져 있다. 그 짧은 신호 교대시간이 버거워 알근한 몸뚱이를 철퍼덕 도로경계석에 주저앉힌다. 앉은 김에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오래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후지카 공장의 옛 모습과 동네 친구들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떠 올려본다.

내가 앉아있는 경계석에서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 움푹 꺼진 자리에 공장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경사진 초입의 양 편에 초록색 들풀들이 담 벽을 타고 주욱 펼쳐져 있는 모습들이 유난히 선하다, 공장 안에도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는 어김없이 파란 들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늘 나른함을 보여주곤 했다. 한때 연탄불을 때던 시절 라면을 요긴하게 끓여 먹을 수 있던 곤로라고 불리던  석유풍로와 당시에는 여유가 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석유난로를 생산하던 공장이다.

젊은 날 수봉공원 중간의 묘지 주변과 도화시장 넘어가는 철로변과 후지카 공장 주변 으슥한 곳에서 늦은 저녁이면 강소주 한잔씩 하던 동네 친구들이 있었다. 부도난 수봉 관광호텔 자리에 살던 아르헨티나로 이민 간 종학이라는 친구와 검찰청 다니던 아버지의 뜻을 거른 채 호텔에서 요리를 배워 지금은 송도에 그럴듯한 레스토랑을 차린 친구, 그리고 노조위원장을 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도 있고, 시청 공무원 하는 친구에, 인천의 향토기업에 꾸준히 몸담고 사는 친구도 있다. 대학과 군대들 다녀오던 청년시절에는 종종 만나 등산도 다니며, 술도 한잔씩  하면서 곧잘 어울려 다녔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서서히 만남들이 뜨악해지고, 하나 둘 이 동네를 떠나고 난 뒤로는 1년에 한두 번씩 전화들만 하는 처지가 돼버리더니, 결국 친구가 죽었어도 찾아보지 못한 아주 남과 같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한 친구의 졸업식날! 술마셔도 좋다는 허락들을 받고 아주 작심들을 하며 독한 빼갈 과 소주들을 원 없이 부어댄 뒤 끝에  한 친구가 병원에 실려갔다. 술로 인한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부모님들의 친구들에 대한 불신의 골은 매우 깊어 모두 그 동네를 떠나서도 함께 어울린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어린 날의 치기로 인한 친구들과의 만남의 불편함이 서서히 누적되며 지금까지 이어져오지 않았나 싶다.

신호등이 몇번이고 바뀌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엉거주춤 앉아있는 내 모습을 흘낏 흘낏 쳐다보며 제 갈길들을 간다. 발밑에는 담배꽁초들이 자꾸 쌓여가고.. 다시 파란불이 들어왔다.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 뭐 먹고 싶은거 있냐?"
"네! 시원한 음료수 먹고 싶어요.. 아버지 어디세요?"...
"응! 편의점 앞이다. 곧 사 가지고 가마"

경계석에 붙였던 엉덩이를 떼어 휘휘 횡단보도를 건넌다.

" 아 ~ 내가 아버지구나 ! "

오늘따라 아버지라는 이름이 생경스럽게 들린다.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한 병 사 가지고 다시 한번 번쩍이는 매매단지를 쳐다본다.

A.I.D. 차관아파트 쪽에서 낡은 자전거를 타고 기름때 묻은 모자 차양을 삐두름하니 쓰신 아버지가 열심히 페달을 저으며 다가온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여전히 청자 담배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선창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고도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주안공단의 한 공장에 다시 취직하셨다. 그날은 새로운 직장에 처음 출근하셨던 날이다.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는 내게 벙긋 웃음을 짓더니 주머니에서 길고 조그만 "하모니카" 상자갑을 내 손에 쥐어주신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그 하모니카는 두 어달 뒤 화평동 "황인의원"에서 수술을 하신 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입원실 찬장 안에 잠시 놓아두었는데 찬장 속의 음습한 냄새가 배어 다시는 불지 못할 정도로 상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아버지의 선물이라 수 십년 동안을 아직도 내 보물상자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그 냄새는 다 빠져버렸으나 이제 나는 하모니카를 불지 않는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던 해, 어머니께 뜻있는 마지막 선물을 주셨다. 살아생전 많은 담배를 태우시다 결국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당신이 증상을 느껴 어머니에게 알릴 무렵에는 이미 폐암 말기를 지나고 있어 손 쓸 사이도 없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의 회갑이 돌아와 큰맘 먹고 어머니 회갑잔치를 치르는데 도와주십사 청했다. 살아 오시며 무던히 어머니의 속을  썩인 터라 떠나기 전 마지막 선물을 어머니께  드린다며  힘든 몸인데도 목욕재계까지 하시고 집 앞  "수봉관광호텔" 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치른 뒤 두 어달만에 돌아가셨다. 당시 욕창으로 등에 구멍이 나있어 눕기도 힘든 몸인데도 어머니를 위해 잔치내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꼿꼿이 자리를 지키시던 아버지의 엄청난 의지력을 보면서  뒤돌아 흠흠대던 일을 생각하니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음료수를 손에 들고 정육점 모퉁이를 지나자 불꺼진 고향여관이 보인다. 며칠 전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영업을 안 하는 모양이다. 아주머니께서 이제는 좀 편안하시겠다. 그동안 아저씨 병구완하시느라 동네 마실도 못 다니시고 그 곱던 얼굴도 많이 상하셨는데 이제 노년에 평안한 삶을 누리시길 빌어드린다. 아주머니를 생각하니. 언뜻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공장집 선경이의 어릴 적 귀여운 얼굴이 기억난다. 눈망울이 유독 까맣게 빛나 사랑스럽고 , 쌍갈래 머리를 찰랑이며 동네 어른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내게 오빠 오빠 하며 까르르 웃던 환한 얼굴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시집가고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아직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선경이를 그렇게 예뻐하던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상심이 크리라.

귀에 익은  거칠은 머플러 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큰 아들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언덕 너머로 밝은 빛이 보이며 아들 녀석의 차가 보인다. 늘 그렇듯이 매매단지의 불빛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나의 평안한 오늘 하루가 지나간다... 술 한잔에 잊고 지내던 동무들을 기억해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물도 되새겨 보았다. 거기다가 새삼스레 아버지란 이름의 생경함도 느껴보니 세월의 한 순간이  내 앞에 잠시 멈추어 나를 살피며 지나가도  느끼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잡아 담아두는 항아리를 하나 사야겠다.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을까?       2009 9, 10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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