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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와 새 친구의 교집합의 기능)
옛 선비들은 술을 마시다 흥이 도도해지면, 정자의 한 편에 멋들어진 흥취를 적어놓고, 먹이 없으면 물로, 종이가 없으면 흙과 바위나 주변의 자연에 자신의 마음을 토하고, 술값을 기생의 치마폭에 옮기는 풍류까지 지녔으니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멋진 술 마시기의 取함이라 할 수 있다. 이 몸은 그저 한 잔술과 , 대작하는 좋은 옛 친구가 앞에 있으면 더없이 행복한 술자리가 되는 편이니 그도 옛 선비의 취흥과 짝 매김해도 좋을 듯싶다.
근간에 술을 마실 일이 간간이 도래하여 아내에게 투정을 받고 있다. 예전 같지 않은 몸이 걱정이 되어 그러는 바를 너무도 잘 아는지라 그저 잘못했다 달래는 게 술 마신 뒤의 일과이다. 하지만 아내의 실제 걱정은 건강도 건강이지만, 친하게 지내는 이들 외에는 거의 술자리를 안 하는 나의 옛 술버릇을 아는지라 잘 모르는 이들과 술을 마시다 실수라도 할까 걱정이 되어 타박을 하는 것이라 나도 그리 된 것이 신통하고 방통 하다.
정말 요즈음의 나와 술자리를 함께 하신 분들의 면면을 헤아려 보니 , 사귀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 심지어 처음 보는 분에다, 성함도 아닌 별명만 알고 있던 분까지, 그분들을 제대로 알지는 못한 채 그분들이 쓴 글이나 작품에 반해서 친구 되기를 청하여 만나는 분들이었으니, 아는 친구만을 찾던 나의 예전 성품으로는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판이라 아내의 걱정도 무리가 아니다.
며칠 전 함께 한 두 분의 경우가 그러하다 한 분은 오래전에 딱 한번 모임에서 만나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던 터인지라 아주 호의적인 사이였으나, 다른 한 분은 이름도 모르고 그분의 독특한 종이모형 작품과 갯벌생물에 대하여 펴낸 책의 희귀함만 관심을 주던 분이었다.
두 분과는 우연히 함께 인천지역에 대한 교육에 참석하고 집으로 향하던 길에 입이 맞아 동인천의 유명한 삼치구이집에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서로 관심 사항을 토로하면서 머릿속이 그득해지는 풍요로움도 느끼고, 모처럼 술자리의 즐거움과 나아진 건강에 대한 행복감까지 가득 담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내의 핀잔을 들었고 또다시 잘못을 고하였으나 두 분과의 술자리가 매우 유쾌하여 아내의 투정마저도 괘념치 않을 정도였다.
그날 함께 한 노 선생은 굵고 검은 안경테가 너무 잘 어울리는 분인데, 소년 시절에 살던 자유공원 자락에서의 아련하고도 잔잔한 기억들을 따스하게 간직하며 그 추억들을 하나하나 유려한 문체로 그려낼 줄 아는 감성이 매우 풍부한 청년 같은 중년이다. 비범한 기억력으로 영화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솜사탕과도 같이 달콤하게 표현해 내면서, 폐업하는 비디오 가게를 순례하며 1000원의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쎈스와, 갖고 싶은 DVD를 딸에게 생일선물로 받기를 원하는 참으로 영화를 아끼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다음 날 "형님 속 괜찮아요?" 하고 전화를 해 주는 다정함에 있다.
문 선생은 실제 보기 전까지 그의 실체를 짐작할 수 없던 특이한 재능을 지닌 분이다. 개항기 건물들의 모습을 종이모형으로 제작하며 엄청나게 세간의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60년대의 인천의 모습을 고증하고 복원하여 새로운 작품들을 선 보이고자 한다. 다시 한번 인천사회의 지대한 관심거리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놀라운 일은 갯벌 생물들에 대하여 책까지 발간한 것이다. 해양생물학자도 아닌 분이 취미로 그림과 글을 작성하느라 5년간의 시간과 땀을 담아내었다 하니 그 모든 것에 쏟는 정성과 끈기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분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버텀 라인은 인천에서 꽤 유명한 재즈카페이다. 카페가 위치한 건물 자체가 개항기의 양품점 건물로 인천의 개항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다 아는 카페이다.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재즈음악과의 만남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재즈를 즐기기에 더없이 펀한 분위기를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음이 그 두 번째 즐거움이며, 그 주인이 정기적으로 알찬 공연을 선 보이는 기획인으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상당한 연배인데도 20대 초반의 그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그 세 번째이다.
노 선생이 예전에 한 번 가자하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킨 곳이어서 그 즐거움이 더했다. 대저 내게 있어서 친구라 함은 오래됨이 그 축을 이루고 있어서 서로 그 마음들을 잘 헤아리는지라 수십 년 친구들은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술자리의 권유를 거의 하지 않아 그 우정에 고마움을 느끼고 지냈다.
그러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분이 작년에 돌아가시고, 역시 수십 년을 함께 즐기던 또 한 분은 현재 아주 어려움 속에 있어 함께 한지 반년이 넘어, 건강도 건강이지만 좋은 친구들과의 자리가 너무 뜨악하여 삶의 즐거움을 놓고 있던 차에
이렇듯 색다르고 기분 좋은 술자리도 있음을 가르쳐 준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건강만 허락된다면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새삼스런 삶의 재미를 느껴보는 일상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래된 습관에 대한 작은 변화가 색다른 관점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행하는 바가 새 친구들과 오래된 친구들에게 기분 좋은 인생의 자극이 될 것을 한 번 믿어본다.
200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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