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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지] 세 친구와 가을여행을 ...(3부:아버지의 눈물) 본문
우리는 여행 내내 쫓아다니는 흐린 날씨를 어쩌지 못하고 "독봉산 "자락 "고현 계곡" 속에 평화로이 자리 잡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찾았다.
친공과 반공이라는 이념의 대립으로 포로들끼리 생사를 가르는 처절한 전쟁을 치르던 유적지를 둘러보다 전쟁통에 미처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해 부역자란 멍에를 짊어지고 사셨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주름살과 , 연좌제의 그늘에서 절규하던 내 젊은 시절의 한 그림자가 오버-랩 되며 무겁게 다가온다.
항공사와 방산업체의 합격소식에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던 마음은 연이은 신원조회에서의 탈락이 주는 실망으로 세상을 원망하기에 이르렀고, 애통해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비감을 그때는 몰랐다. 얼마 뒤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하자 내 손을 부여잡고 "이제 되었다.. 이제 되었다.."를 되뇌던 완고한 아버지의 눈에 매달린 조그만 이슬방울의 의미를...
그 가슴에 한이 맺혀 서린 이슬방울은 당신의 젊은 시절에 어쩔 수 없이 겪었던 비운의 사슬이 자식대에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자책하며 타들어가는 심장을 적셔 준 방울이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당신에 대한 죄책감에 사무친 독기를 그제사 스러지게 한 가뭄의 단비였을 터이다.
이후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눈가에서 이슬을 볼 수 없었다.
이제야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아버지 같은 소시민이 살았던 삶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돌아가실 때까지도 아버지를 원망하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를 깨닫고 묘지로 달려가 한껏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서야 내가 비로소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포로수용소에서 생사의 전쟁을 치르다 자유를 얻게 된 반공포로들과 그 자손들의 삶을 나와 비견해 보면 그들 역시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대를 거치며 이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았으리라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남수와 은찬이는 실향민으로서 아픔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저들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다.
유적공원의 마지막 관람지인 포로수용소의 잔존 건물터를 바라보며, 17만여의 포로들 중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생존자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빌고,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빌면서, 또다시 이념에 의해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2011 - 10 - 29 - 그루터기 -
6.25 한국전쟁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 만에 함락이 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먄여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 중에 늘어 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 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 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 살상이 자주 발생하였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 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3년 한국 정부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기회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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