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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Panorama - La Buena Vida 본문
달콤한 음악의 파노라마
Panorama - La Buena Vida
앨범전곡감상
1. Melodrama (멜로드라마)
2. Arroz Amargo (쓰디쓴 밥)
3. Tormenta En La Manana De La Vida (인생의 아침에 지나가는 폭풍우)
4. El Largo Adios (긴 작별)
5. Odessa (오뎃사)
6. Despedida (이별)
7. Surquemos El Cielo Entero (저 하늘 전부를 헤쳐보자)
8. Bodas De Plata (은혼식)
9. Aquella Noche De Sabado (그 토요일의 저녁)
10. Guillermine (기예르미네)
11. Mi Punto De Vista (내 생각에는)
12. Metronome (메트로놈)
13. Todo Se Tambalea (모든 것이 비틀거리네)
무섭게 돌진하는 시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망각할 만큼 조급함에 빠져들지 않겠다는 의지,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 삐에르 쌍소는 이것을 '느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느림을 통하여 시간에 모든 기회를 부여하고 영혼이 숨쉴 수 있도록 하며,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는다고 말한다.
'느림'에 대한 에찬, '게으름'에 대한 열정, 그 안락한 휴식과 새로운 창조의 공간, 그 한 가운데에 스페인의 레이블 'Siesta'는 존재한다.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달콤한 낙관주의 정서를 간직한 밴드명을 갖고 있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6인조 팝밴드 La Buena Vida. 나긋나긋 여리게 속삭이는 여성보컬의 매력과 찰랑찰랑 거리는 기타 사운드를 조화롭게 휘감는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름다움. 그 깊고 아름다운 심연에 가라앉은, 가슴을 흔드는 보사노바의 수줍은 리듬을 타고 흐르는, 지중해의 강렬하지만 따스하게 감싸는 햇살같은 사운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증오와 갈증, 메마른 땅처럼 지쳐있는 우리의 사랑",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고통스러운 삶", "침묵만이, 슬픔만이 영원한 평행선을 이루는 관계의 단절의 지속을 메꿔주리라"는 부럽기만한 관조자의 시선. 20세기의 위대한, 하지만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혁명가 '트로츠키'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역설과 희망의 메시지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아름다운 음악이 이제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미덕으로 칭송받는 숨가쁜 속도의 나라에 소개된다.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빛내줄 'La Buena Vida'의 (Gran Panorama). 이제 당신의 자유로운 영혼을 행복하게 숨쉬게 하는 이들의 신비롭고 달콤한 열정의 파노라마를 펼쳐보자.
"여섯 번째 시간에는 오수를 즐겨라."
La Buena Vida의 'Gran Panorama'
진정 음악이 지닌 매력에 사로 잡히는 그 순간은 끝없는 세계를 향한 유영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다 보면 이내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는 곳으로 이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01년 초봄, 나는 단 한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는 이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는데 그 곳은 낯선 분위기와 낯선 언어로 가득 찬 곳이다. 단지 내가 그 곳에 대해 품고 있던 이미지는 정열적인 플라멩코, 검은 소와 대조적인 카포테의 붉은 색 뿐이다. 그것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자극적일 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이 시시한 나라에 흥미를 갖게 됐는데 그 연유는 이 뜨거운 나라에도 부드럽고 달콤한 정열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다. 그것은 뜻 모를 이름의 시에스타(Siesta) 레이블에서 탄생한 라 부에나 비다(La Buena Vida)로부터 연유한다.
가득한 시간, 서두를 것 없다
그러나 일전에 잠시 이 지중해 연안을 떠돈 적이 있었는데, 그 안내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섬"이었다. 남프랑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하나 둘 떠있는 섬과 그 속에서의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나간 그의 정갈한 문체는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라 부에나 비다를 만나게 되면서 그르니에를 떠올린 것은 결코 비약적인 상상이 아니다. "섬"의 행간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 아득한 충격은 라 부에나 비다에게서 재현된다. 현실에서 벗어나 지중해를 떠도는 그 향유의 시간을 이들로부터 되찾은 느낌. 세상에 급하게 허우적댈 것은 하나도 없다는듯, 이들 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만들어내는 여유 만만한 사운드는 지극히 당당해 보일 정도다.
"내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시간 못지 않게 내가 죽은 이후에도 있을 그 막대한 시간. 햇볕이 잘 쪼여주는 이 가득한 시간들이 내가 기대할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음을 가르쳐 준다."라고 점심 식사를 기다리던 그르이네의 찰나의 깨달음처럼 라 부에나 비다는 가득한 시간을 소유한 것 같다. 첫 번째 앨범 'La Buena Vida (1993)'부터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곡은 유쾌한 기타 팝 La Historia Del Senor Sommer (좀머씨 이야기)일 듯하다. 결코 느리다고 할 수 없는 적당히 빠른 템포의 이 곡이 과연 여유 만만하게 들릴까? 그러나 여유로움이 곧 느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드럼이 저마다의 악센트로 쪼개내는 비트는 앨범 자켓에 담긴 그림처럼 춤이라도 추거나 혹은 자전거라도 달리면 적합할 듯하지만 그 전편에 흐르고 있는 것은 여유로움이다. 특히 이란츠 발렌시아의 말랑말랑 상냥한 보이스, 그리고 그와 함께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일렉트릭 기타의 몽롱한 사운드는 더욱 그 인상을 짙게 한다. 그리고 이는 라 부에나 비다 앨범 전편에 걸친 일관적인 흐름이다.
게으름, 그것은 곧 창조를 위한 강렬한 열정
라 부에나 비다가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곳은 1992년 초여름 스페인 마드리드에 자리를 마련한 시에스타 레이블. 시에스타는 자신들의 상징적인 앨범 중 하나로 라 부에나 비다의 네 번째 앨범 'Panorama'를 거론하고 있는데, 이들은 시에스타의 첫 번째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 만큼 라 부에나 비다의 여유로운 사운드는 시에스타의 사운드를 대변한다 해도 무방하다.
아니나 다를까. 라틴어로 여섯 번째 시간, 즉 정오를 의미하는 Sexta를 어원으로 두고 있는 Siesta는 낮잠, 혹은 오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한낮에 때 아닌 잠이라니. 이 부정적인 의미로 충만한 게으름은 조금 과장하면 사회악으로 처우받는다. 매일 아침 우리는 선잠을 깨우는 어머니의 잔소리부터 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 정열적인 에스파냐인들은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즈음 마음껏 불태우기 위한 정열을 비축이라도 해놓기라도 하듯 실상 오수를 생활화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에스타 공식 사이트는 그들을 소개하는 첫 번째 문구로 다름 아닌 "게으름의 열정보다 더 강렬한 열정은 없다"는 사무엘 바켓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부지런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라면 게으름은 떨치기 어려운 본성인 것을. 그 본성에 충실한 시에스타는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져야 한다는 듯 게으름이 곧 창조적인 열정의 바탕이 됨을 몸소 실현하는 이들이다. 라 부에나 비다는 마치 그 게으름으로부터 그 창조적인 정력을 얻어내고 이를 통해 화려한 사운드를 빚어내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네 번째 앨범 'Panorama'에서 가장 극명하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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