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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강원정선] 정선 나들이 본문

여행이야기

[강원정선] 정선 나들이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24. 00:50

https://youtu.be/NKMoZp1_h14?si=lwS0LQzbG-sw8iAS

 

정선 나들이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내를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라리라 불리는 정선 아리랑이다. 간단하고 무심하지만 바람결 같은 토속적인 삶의 시간으로 풀어낸 듯한 가사이다. 하지만 단순한 가사의 내면에 흐르는 불사이군의 충절까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저 꾸물한 날씨에 장을 보고 돌아 가야 하는데 빗물에 떨어질 올동박을 걱정 하며 강 건너 뱃사공을 애타게 불러보는 아낙네의 심사를 한의 정서로 풀어 낸 그대로 우리 민초들의 노래로 받아 들일밖에.. 정선!

인천에서는 참 머~언 곳!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그저 산밖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장 대형이라는 친구가 살고 있다. 정선에 터를 잡고 살아온지 근 삼십여 년... 초창기에 텃세가 유독 심하고 우악스러운 정선의 택시사업장으로 자리 잡기까지 무던한 고생을 한 정착기를 듣노라면 누구든 친구의 오진 뚝심과 강직함에 혀를 내두르며 경외감을 표할밖에 없을 터이다. 그런 그의 큰 딸내미는 눈만 뜨면 보이는 그 산이 그렇게 싫어 시집을 가서도 잘 오질 않는다나.. 시원스러운 성격의 여자아해가 허구한 날 눈앞을 가로막는 산들이 그렇게 싫었나 보다. 그래도 언젠가 나이 들다 보면 제 나고 자란 풍경산수 좋은 그곳을 그려 할 날이 있을 테지. 딸내미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곳은 눈앞에 가린 게 산등성이만이 아니니까! 그 산으로 인해 오고 가는 이들이 드물어 외로움을 느끼는 그의 아비도 있으니까..

그 외로움이 가슴을 치고 들 때면 여기저기 친구를 찾아 전화를 하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언제고 짬을 내어 해후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모처럼 그 친구와 술 한잔 하고자 아내와 함께 정선으로 향했다.

 떠나기 전날만 해도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바람이 몰아쳐 날을 잘못 잡았나 싶었는데, 차를 타기 무섭게 따가운 가을햇살이 차창밖에서 사정없이 내리쬔다. 쪽빛하늘은 드높고 풍성한 솜털 구름이 그림처럼 파란 하늘의 배경이 되어 넘실거린다. 경향각지의 친구들도 연실 사진들을 찍어 보내 주고 있었다. 평일의 영동고속도로는 시원스레 거칠 것이 없다. 적당하게 시원한 기운의 에어컨 바람이 여행준비에 설친 잠을 재촉하며 솔솔 눈을 감겨 준다.

 어느새 우리의 처음 목적지인 태백에 도착했다. 태백은 몇 년 전 세 친구와 함께 가을여행을 다녀오면서 슬쩍 지나치기는 했어도 발을 내딛기는 처음인 아주 생소한 도시지만 3 대강이 발원하는 국토의 젖줄이 되는 근원지로서의 지리적 특성을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대형이가 마중을 나오기로 하여 잠시 터미널 근처의 황지연못을 들러 보았는데 황지연못은 낙동강 천삼백리의 근원지로서 매일 오천톤 가량의 물을 용출한단다. 마침 연못광장에서 낙동강 여성문화축제 개막식이 한창이라 잠시 연못이 생긴 전설을 각색한 "황부자 며느리 전"을 관람하고 인근의 황지성당을 들러 나오는 중에 대형이가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친구와 만나 태백을 떠나 정선으로 향했다... 작년보다 미소가 자연스러워진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환해진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는 일부러 황지의 진산으로 알려진 함백산의 두문동재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도로인 만항재로 핸들을 돌렸다. 두 곳의 재를 넘나 드는 동안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진 장관을 품에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끝없이 늘어 선 봉우리의 높낮이에서 삶의 굴곡을 천천히 느껴 가며 오래전 써 놓았던 "세월"이라는 시를 나지막하게 읊어 보았다. 민항재로 가는 중에는 지장천계곡의 맑고 힘찬 물소리를 들었는데 계곡 중간에 5대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정암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정암사는 세 친구와의 여행의 끝무렵  동해 쪽에서 정선으로 들어서며 보았던 바로 그 절이었다.

본래 회사에서 내어 준 하이원 리조트를 예약하고 친구와 저녁을 먹은 뒤 그곳 카지노에 들러 슬롯머신으로 아내와 나의 운을 시험해 보면서 하루를 유하려고 했으나 친구가 자기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일정을 변경하고, 미련 없이 리조트엘 들러 체크인- 아웃을 하고 나서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예미에 도착하자 환하게 맞이하는 그의 아내와 맞장구치며 얘기꽃을 피우는 아내를 보면서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 한편에 피아노와 기타가 보기 좋게 놓여 있어 한번 연주를 해 보라 했더니 악보를 꺼내 김 민기의 친구를 부르기 시작하길래 함께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치는 친구의 얼굴을 다시 한 번 가만히 보았다. 역시 작년보다 훨씬 편해 보인다. 한바탕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나서 저녁을 곁들인 술 한잔을 하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 정착하던 지나간 이십여 년간 피 말리는 생존경쟁으로 인하여 가정에 소홀하였는데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 지나간 시절을 뒤돌아 보면서 그래도 앞으로 인생을 같이 꾸려 나갈 사람은 가족밖에 없음을 깨달았단다. 그로부터는 늦었지만 청년시절 즐겨하던 책과 음악을 접하면서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갚아 나가느라 온화함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는데 자연스레 얼굴빛이 좋아진 이유가 그로부터 연유한 듯하다.. 나이 든 사람의 표정은 내면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옛말이 하나 그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겠다.

 다음 날! 이제 친구들이 오면 술추렴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운동을 함께 하고 싶다면서 정선 동강의 래프팅 시발지를 구경시켜 주었다. 예미에서 동강으로 가는 10킬로미터의 길은 의외로 험해 보였다. 외방향 동굴터널을 지나자마자 가파르면서 구불구불한 언덕길이 마치 속리산의 말티재를 내려가는 기분이다. 지금이야 아스팔트를 깔아 차가 다니기 편하지만 예전 흙길이었을 때는 정말 힘들게 다녔다고 한다.

 언덕길 말미에 유난스레 빨간 사과나무들이 눈에 띈다. 개량종인 듯 보이는데 눈에 익은 나무에 달린 사과가 아니라 토마토 재배하듯 지지대를 버팀목 삼은 자그만 사과나무 한 그루에 4=5십 개의 열매가 주렁주렁 실하게 달려 있다. 온난화현상으로 어느새 강원도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으니 멀잖아 대구 사과는 못 먹게 되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다. 잠시 정선 동강 래프팅출발지인 제장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김삿갓 유적지로 향했다.

김 삿갓 유적지의 주인인 김 병연은 홍 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께서 투항한 죄로 인해 멸족을 당하였으나 그 사실을 모르고 조부의 잘못을 준엄하게 비판한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하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의식으로 하늘을 볼 수 없다 하여 죽장에 삿갓 쓰고 세상을 주유하며 방랑시인으로 살아가다 한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난고 김 병연! 뛰어난 그의 재주가 연좌제로 인해 너무 헐하게 쓰이고 가버린 것이 못내 아깝다...

손으로 잡는 것마다, 토해내는 숨결마다 시가 되었던 김 삿갓 시로 울고 시로 웃던 김 삿갓 세도가 안동문중에 태어났지만 평생 방랑시인으로 삿갓아래 얼굴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

 중학교 때 길거리 좌판에서 “방랑시인 김 삿갓”이라는 책을 사서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 직설적인 언문해학과 은유적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한동안 손에서 놓지를 못하였었다.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으면 앞날이 보장되었을 텐데 조부의 반역적인 행동을 알고 부귀영달을 팽개친 뒤 세상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살아갔으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연민의 정마저 들었다. 나 또한 한때 그와 비슷한 처지였으되 일견 그의 처지에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 선달의 흔적을 찾아보며 옛 기억을 더듬어 본 지금 묵혀둔 책장 속에는 아직 기담과 해학선집이 남아 있으니 다시 한번 그의 풍자를 느껴 봐야겠다.

막상 김 삿갓 유적지를 둘러보다 보니 유적으로 볼만한 거리가 별로 없음을 보고 아쉬움이 든다.. 기왕 유적지라 조성을 하려면 번듯하니 볼만한 사료나 스토리를 제공하여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상태라면 누구든 그저 지나는 길에 한 번 휑하니 둘러보는 것으로 족할 정도 밖에는 안 되겠다. 그나마 방송에 소개된 덕분에 평일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고 있으니  다행이라 할까?

방랑시인과의 만남을 끝으로 정선 나들이가 끝났다. 유적지를 떠난 차는 옥동천을 따라가다 고씨동굴을 지나고 팔괴터널을 지난다. 잠시 뒤에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 앞을 지나 어느덧 영월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배차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인천행 출발시간이 거의 한 시간가량 남아 친구와 마무리 회포시간을 배려해 준 듯하다.

 그래서 작년 겨울 친구와 만났던 "전망 좋은 집"이라는 카페에서 차 한잔씩 하였다. 실내에는 수 백장의 L.P 판이 창가에 병풍처럼 세워져 있다. 모두 2004년 10월에 폐국된 영월방송국에서 사용하던 앨범들을 카페 주인장이 사들여 보관하고 원하는 손님들에게 신청곡을 받아 틀어 주기도 한단다. 문득 오래전 박 중훈이 퇴물가수로 나왔던 영화 "라디오 스타"가 떠 오르고 그가 부른 "비와 당신"의 크라이 막스의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라는 애절한 가사가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일각도 안된 듯한데 순식간에 한 시간이 흘렀다. 카페창으로 비운의 왕 단종이 잠든 장릉이 보이고 능을 둘러싼 노거수의 이파리에 눈부신 가을햇살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꼭 잡고 악수하는 두 친구의 손에는 재회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서서히 작은 고을의 모습들이 뒤로 뒤로 흘러간다.  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