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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염천[炎天]의 세상에서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30. 09:50

염천[炎天]의 세상에서

 올해 여름은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한반도에 갇히는 ‘열 돔’ 현상으로 폭염이 장기화될 조짐이란다. 벌써 근 열흘간 말 그대로 염천이다. 세상이 불덩이 속이니 가만있어도 염병을 앓듯 땀이 삐질삐질 온 땀구멍으로 솟아 나온다. 이런 날씨는 그저 피하는 것이 상수지만 염천의 여름 나기가 만만찮다. 낮이면 불가마 속이요 밤이면 열대야가 기승이다. 에어컨을 틀자니 그 돈이면 어디 물 좋고 경계 좋은 시원한 곳으로 달아나는 것이 외려 나을 지경이라 쉽게 리모컨에 손도 안 간다.

 두보의 조우고열(早秋高熱)이라는 시에 염천에 의관을 정제하고 앉았으니 미쳐서 소리를 지를 것 같다는 속대발광 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는 말이 있다. 비록 ‘속대(束帶)’까지는 하지 않는 백성에 불과하지만 복더위에 들어선 요즘 날씨가 가히 ‘발광(發狂)’하고 ‘욕대규(欲大叫)’할 만하다.

 그런데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의 옛사람들은 이 더위를 어찌 보냈을까? 옛 선조들은 유두절에 탁족을 하며 풍월을 읊고, 시원한 우물에 참외나 수박 한 덩이를 띄워 둘러앉아 나눠 먹는 것이 좋은 피서법이었다고 한다. 다산은 생선회 내기 바둑으로 구경꾼과 함께 나눠 먹으며 배불리 먹고 농지거리 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더위를 잊으라는 피서법을 "청점혁기"라는 시로 남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였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독서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하였고 " 허 균"은 "한정록"에서 "독서로 피서하는 것이 정말 좋은 방법의 하나인데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 하면서 독서와 술의 조화를 얘기하였으며, 정조는 "일득록"에서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독서하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생겨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왕과 재상들은 독서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피서를 하는 것을 권장하였는데 특이하게 허 균은 독서와 술을 함께 즐긴 것으로 보인다. 더위와 술은 상극인데 후한 말 유 송이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더위 중에 매일 술자리로 더위를 잊었다 하여 "하삭음(河朔飮)"이라는 음주 피서법을 만들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위나라의 정각도 삼복 무렵 연잎에 술을 담아 비녀로 잎을 찔러 줄기의 구멍을 통해 마시는 "벽 통음"이라는 음주 피서법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마는 중국의 피서법이 비록 내게 미소를 짓게 하고 운치는 있을지언정 권할만한 피서법은 아닌듯 싶다.

 이런저런 옛 피서법을 살펴보니 우리 선조들은 피서가 아닌 망서 즉 더위를 피하지 않고, 잊는 것으로 여름을 보내는 지혜를 보이고 중국의 옛사람들은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더위를 피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내가 찾아본 것이 옛 선조들이 사용하던 모든 방법이라 할 수 없지만, 물과 바람 그리고 음식과 정담으로 더위를 피하며 몸을 보하는 방법이 대부분의 피서법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친구 광진이가 불가마 같은 이 더위를 잊고자 돌아오는 일요일에 영흥의 십리포해수욕장에서 함께 지내기를 청하였다. 역시 물과 바람을 찾고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는 피서법의 범주에서 벗어 날 수 없는 평범한 나들이가 되겠지만 그동안 서로 바쁘게 생활하며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과의 만남이라 적이 기대가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낼 모레는 "하삭음(河朔飮)"이라도 즐기면서 염천의 짜증마저 바다에 훌훌 흩뿌리고, 다가오는 염서[炎暑]까지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겠다.

'지금 밤하늘에 달무리가 보였으면, 달무리 지면 다음 날 비 온다는데!'  

2018.7.20 그루터기

 

 

 

 

 

* 하삭음의 유래

무더운 여름에 피서한다는 명분으로 마련한 술자리를 말한다. 하삭은 하북(河北) 지방을 가리키는데 후한 말 광록대부 유 송이 하북의 軍을 전무하면서 원소의 자제들과 날마다 연음(宴飮)을 하고 특히 삼복중에는 주야로 통음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더위를 피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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