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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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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고려산의 진달래야 왜! 내게 수줍음을 타느냐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3. 20:13

고려산의 진달래야 왜! 내게 수줍음을 타느냐

오늘은 고려산의 진달래꽃을 구경하러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의 공기는 시원하고, 날씨는 맑다. 산행하기 아주 좋은 날이라 다행이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앓았던 질환으로 인해 폐가 협착하여 산을 오르는데 원활한 기능을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지만 정 힘들면 중간쯤에서 일행을 기다리리라 생각했다

지난 3월 말 지긋한 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서 직원들은 봄맞이를 해야겠다고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강화 고려산의 진달래꽃 구경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진달래 군락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와 근무 일정을 절충하여 대충 4월 20일 정도면 무리가 없으리라 합의를 보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진달래가 만개한 자색 바다의 장관을 보기에는 날짜를 잘못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영종은 섬의 특성상 꽃들의 개화시기가 육지보다 십여 일 늦는 편이다. 게다가 지난겨울이 혹독했던 때문인지 19일에야 개나리가 만개하여 울타리 곳곳에 진 노랑빛을 자랑하기 시작하였을 뿐 백운산 등성이에는 아직 미소를 가득 머금은 꽃봉오리와, 공항 곳곳에 산개한 산수유 역시 군데군데 꽃잎이 보이기 시작했고, 활짝 피면 4킬로미터에 이르는 하양 꽃 길을 자랑하는 공항동로의 벚나무도 꽃봉오리만 발그레한 채 좀처럼 개화하질 못하였으며, 목련도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 이제야 하얀 속살을 수줍게 내비치며 햇살 맞이를 하고 있다. 

다만 영종대교를 지나며 보이는 이름 모르는 작은 무인도 두 어곳에 활짝 핀 진달래만이 우리의 고려산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 주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꽃들의 상태를 주시하며 애태우던 모든 우려를 뒤로 하고 고려산으로 향했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군청 주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백련사 쪽으로 차 머리를 돌렸다. 길가에 군데군데 선홍빛 진달래가 우리의 걱정을 가라앉혀 주었고 결정적으로 백련사 입구에서 바라본 고려산 등성이의 붉은 자태가 모두의 마음에 흥분을 일으켜 주었다.

진달래는 고려산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봄이 되면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산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향연을 만들어낸다. 이토록 아름다운 진달래가 잡목 없는 군락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한 데는 전화위복의 사연이 있다.

1983년 어느 날! 하점면에 사는 어느 농부가 논두렁 불을 놓다가 산으로 옮겨 붙어 고려산 북편을 모두 태우는 일이 생겼다. 화마가 휩쓸고 간 곳의 모든 수목이 잿더미로 변하였으나 이듬해부터 자연의 끈질긴 복원력으로 진달래가 하나둘씩 자생하면서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60여만 평방미터의 자연 군락을 이루고 진달래와, 아우러진 갖가지 꽃들과, 이 꽃들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이 입은 옷 색깔의 현란함과 더불어 천자만홍 (千紫萬紅)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는 고려산의 유래가 담겨 있다. 고구려 장수왕 4년, 인도의 승려 천축 조사 가 고려산에서 절터를 찾던 중 정상 연못에 핀 다섯 색상의 연꽃을 날려 하얀 꽃이 떨어진 곳에 백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노란 꽃이 떨어진 자리에 황련사, 청색 꽃자리에 청련사, 적색 꽃자리에 적석사, 흑색 꽃자리에 흑련사를 세웠다. 청련사만 조사가 원하는 곳에 떨어지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원통암’이란 암자를 지어 현재 3개의 사찰(백련사·청련사· 적석사)과 1개의 암자가 16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평일인데도 꼬리를 몰고 등산객들이 고려산을 오르고 있다. 열에 여덟 가량이 여성들이다. 하기는 평일에 남자들이 산을 찾는다는 것은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 않지만, 왠지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명학과 원주와 내가 선두를 형성하여 오르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주차장에서부터 꽁무니를 잡은 여인네들과 농탕질 하며 설렁설렁 오르느라 근 두 시간여 만에 정상에서 모두 합류했다. 정상(해발 436m)에 오르면 북한 송악산과 연백을 비롯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시야가 트이지 못한 탓인지, 지형에 밝지 않음인지 당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시원한 정상의 산바람은 산을 오르며 흐르던 땀방울을 닦아주고 온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고려산의 진달래는 아직 수줍은 자태로 농염한 붉은 속살을 감추고서 우리의 성급함을 약 올리고 있다. 붉은 기운은 있으되 드넓은 산등성이의 불타는 선홍빛 너울거림을 볼 수 없음이 너무도 안타깝다. 땀 흘리며 산을 오른 수고로움도, 한 달여의 설렘과 기다리던 마음도 모두 아쉬움으로 변했을 뿐이다. 하지만 후회하면 무엇하나! 모두 지난 시간인 것을 산을 오르며 흘린 땀은 내 몸의 자양분이 되었을 테고 내가 못 본 선홍빛 너울거림은 며칠 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환희와 찬탄을 받을 터이니 그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올랐으니 내려야지.. 그게 산을 오른 자의 산에 대한 공경이고 산을 대하는 마음인 것을. 정 아쉽거든 다음 주에 다시 오면 될 것이다. 그제야 여기저기에 아기 진달래를 심어 놓고 안내 표식마다 써 놓은 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떠 오른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2011 ‒ 4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