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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영월기행 본문
https://youtu.be/GNo9UsrtQM0?si=GDQCqHVEyWbg1tYB
영월 기행
2월 어느 날 해거름 녘! 지난 혹독한 추위에 하얗게 얼어붙은 주천강 자락의 "산이실 마을"을 찾았어요 어스름 저녁 하늘이 주는 차가운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 주고, 해발 300미터의 나지막한 산골마을이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음까지 차분해집니다. 반가이 맞아 주시는 형님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먹고 감로주로 대작을 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벽난로에서 장작이 내는 자작거림이 잦아들 즈음 내일의 여행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자 가슴속 하나 가득 투명한 눈가루가 날아드네요. 코스모스가 그득한 가을의 풍경과 , 흰 눈이 희끗한 겨울의 풍경이 주는 분위기는 역시 다를 수밖에 없더군요, 겨울 눈 속에 잠든 하얀 새벽 정취가 또 다른 산이실의 멋을 보여주었어요.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며, 새롭고 경이로운 정경을 보는 나그네의 눈은 가득 찬 호기심에 초롱초롱합니다. 주천강과 평창강 두 강이 합쳐지기 전 강물이 휘돌아 치면서 서강변에 만들어진 특이한 "한반도 지형"이 그래요. 신기할 정도로 한반도의 지형을 닮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세월 동안 흐르는 강물이 빚어낸 자연의 신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릴 적 살던 개천가에 “사근다리”라고 불리던 엉성한 다리가 있었는데,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아 건널 때면 출렁거리곤 해서 매우 불안한 마음을 갖고 건너 다녔지요. 장마 때면 휩쓸려 내려가는 다리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는데 “선암마을”에도 그런 종류의 "섶다리"가 있어 유심히 살펴보며 지난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이 곡류하여 반도의 지형을 이룬 “청령포”는 슬픈 단종의 비사와 전설이 서린 곳입니다. 사약을 받고 짧은 생을 마감한 “단종”이 머물던 “청령포”의 강물도 얼었습니다. 나룻배도 얼음에 갇혀 한가로이 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미끌거리는 얼음 위를 걸어가는 관람객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네요. 강물 위를 걸어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문득 지금처럼 강물이 얼었다면 “관풍헌”으로 옮기기 전 단종께서도 유배지에서 한 걸음 세상 밖으로 나와 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린 나이에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대궐을 떠나와, 자신의 앞날을 예측 못하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생각하며 비탄에 젖어 “망향탑”을 쌓고 “노산대”에 서 있을 단종을 그려보니 욕심이라는 단어가 떠 오릅니다.. 세상사 누구나 욕심을 가지고 살지만 그로 인해 타인에게 해코지가 가는 일은 없어야죠. 다시는 욕심으로 인한 세조와 단종의 관계 같은 불행한 역사가 없길 바라는 마음을 적어 봅니다.
애달픔은 노산대에 그윽하고,
그리움 담은 돌무더기에 겨울 햇살 차갑네.
한숨짓던 관음송은 아직도 꿋꿋하고,
청령포 휘돌던 강물 하얗게 얼어
나그네의 마음에 돌을 던지는구나.
청령포를 뒤로하고 장릉을 지나 소나기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 미터 지점에 위치한 “선돌”을 찾았습니다. 약 70여 m 높이의 기암괴석이 발아래 장관처럼 펼쳐지고 있어요. 마치 호주의 “블루 마운틴” 대협곡 왼쪽에 서 있는 “세 자매봉”에서 한 개의 봉우리를 빼고 세워진 듯, 거대한 두 개의 탑 모양으로 솟아 있는 “선돌”은,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선돌” 사이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얼어버린 서강의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만드는 신비로움이 서려 있습니다.
짧은 겨울의 하루해는 어느덧 서쪽 하늘로 지고 있습니다. 이틀간 영월에서의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산이실 마을"에서 명칭이 바뀐 “핀란드 마을”에서도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는 아름다움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며, 한과 넋이 서린 “청령포”에서 권력을 향한 비극적인 왕조 역사의 일면을 배우고, ”한반도 지형”에서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였으며, 거대한 “선돌”을 보며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여행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가끔은 인간의 감정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더 깊고 의미 있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여행 속에서 만나는 인생의 순간들은 언제나 새롭고,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2011 - 2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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