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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Swinging Cocktail Hour - Richard Freitas 본문
내가 타지 않아도 되는 비행기의 시간표들
가끔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 공항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이 할아버지는 비행기와 공항을 너무 좋아해 일주일에 두어 번 공항에 나와본다고 했다. 얼마나 좋아하면 산책길이 공항일까.
뭔가 헤매는 것 같아 보이는 나를 옆에 앉히더니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준 분이었다. 특이한 건 그 할아버지는 작은 수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수첩에는 각종 공항 정보와 항공사 정보, 항공 상식 등이 적혀있으며 심지어 간단한 외국어도 메모해두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산책하다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도와준다고 했다. 아마도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 곁에서 풍기는 묘한 바람의 냄새를 맡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야금야금 속으로 녹이고 있었다. 어쩌면 사탕의 그것처럼 아주 진한 단맛이 나는지도 몰랐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했다.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방법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비행기를 사랑하니까 나이 들면 그처럼 공항에 나가서 앉아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방이 꽉 막힌 네모난 상자 속,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 15 센티밖에 안 되는 새장 속에 갇혀 지내서일까. 공항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들은 떠났다가 돌아오는 걸까.
차가운 공간을 데우는 은은한 불빛, 향긋한 음료의 향기, 사람 좋은 웃음소리 섞인 통화 내용들…… 내가 타지 않아도 되는 비행기의 시간표들,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만드는 속도의 물결,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층, 굉장히 차가운 소재로 지어진 육중한 건물이지만 사실 엄청난 온도가 넘쳐나는 공항에는 버거워서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
내가 목격했던 공항의 명장면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아프게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서로가 많은 말을 아끼던 두 사람은 마침내 헤어질 시간에 이른다. 남자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여자는 홀로 남아야 한다. 둘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포옹을 하면서 서로를 감싸 안았던 팔을 푼다. 자, 남자가 떠난다. 그리고 여자가 남겨진다.
나는 그것이 끝인 줄로만 알았다. 나도 게이트 쪽으로 들어가야 했으므로 그 둘을 오래 지켜볼 시간은 없었다. 그때 이미 꽤 많은 걸음을 뗀 남자가 갑자기 여자의 이름을 부르더니 오던 길로 뛰쳐나갔다. 남자가 두개의 문을 지나, 그 문을 지키고 있던 여러 공항 직원들을 지나 여자를 향해 달려갔고 마침내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둘은 사람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이 같았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이 같았다. 그도 아니면 헤어질 때가 되어서, 멀어지고 보니, 그것이 사랑인 줄 알게 된 사람들 같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 같았다.
처음엔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이번엔 여자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누구나 뒷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사이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 뒷모습을 봤기 때문이었을까. 헤어질 때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걸까. 정말이지 뒷모습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세상의 경계에 서보지 않은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가져다줄 게 없다.
바람이 불다 당신이 좋다 / 이 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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