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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Yolanda - Pablo Milanés 본문

음악이야기/월드음악-샹송,칸초네,탱고,라틴등

Yolanda - Pablo Milanés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28. 00:21

https://youtu.be/qCwLbI1IMog

 

Pablo Milanés - Yolanda (En Vivo Desde La Habana, Cuba)

 

Yolanda

Esto no puede ser no mas que una cancion / Quisiera fuera una declaracion de amor / Romantica sin reparar en formas tales / Que ponga freno a lo que siento ahora a raudales / Te amo Te amo / Eternamente te amo

Si me faltaras no voy a morirme / Si he de morir quiero que sea contigo / Mi soledad se siente acompañada / Por eso a veces se que necesito / Tu mano Tu mano / Eternamente tu mano

Cuando te vi sabia que era cierto / Este temor de hallarme descubierto / Tu me desnudas con siete razones / Me abres el pecho siempre que me colmas / De amores De amores / Eternamente de amores

Si alguna vez me siento derrotado / Renuncio a ver el sol cada mañana / Rezando el credo que me has enseñado / Miro tu cara y digo en la ventana / Yolanda Yolanda / Eternamente Yolanda

Yolanda / Eternamente Yolanda / Eternamente Yolanda

욜란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노래가 아니예요 / 차라리 내 사랑의 선언이랍니다 / 그 어떤 방식으로도 표현할 없는 낭만의 / 이제는 멈출 수도 없는 충만함으로 타오르는 그대를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그대가 없으면 난 혼자 죽을 수도 없어요 / 내가 죽는다면 그대와 함께 할 때 / 나의 고독 속에 숨쉬는 그대의 숨결 / 그래서 나는 알아요 내게 필요한 건 그대라는 것을 그대의 손, 그대의 손 / 영원히 그대의 손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난 알았어요 / 나의 마음은 두려운 벌거숭이가 되고 그대의 눈길에 내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면 / 그대는 텅빈 나의 마음을 채워주었어요 / 사랑으로, 사랑으로 / 영원히 사랑으로

삶에 지쳐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 그래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조차 날 깨우지 못할 때마다 / 그대가 가르쳐준 기도를 드려요 / 그대 얼굴을 떠올리며 창가에서 당신을 불러요 / 욜란다 욜란다 / 영원히 욜란다

욜란다 / 영원히 욜란다 / 영원히 욜란다


Yolanda <욜란다>는 파블로(You밀라네스 Pable Milanes 가 자신의 아내 욜란다 베넷Yolanda Benet에게 바치는 연가(戀歌로, 1970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사랑받는 노래이다.. 경기장에서나 작은 카페에서나 혹은 길거리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모두 이 노래를 따라부른다.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사랑의 감성이 시적으로 표현된 가사가 완벽할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의 형식을 빌려 밀라네스의 조국인 쿠바에 바치는 노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고 밀라네스 스스로도 그렇다고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 밀라네스가 쿠바 혁명의 대의에 조응하는 누에바트로바Nueva Trova, 새로운 음유시 운동에 헌신적이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렇게 짐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비오 로드리게스 silvio Rodriguez, 노엘 니콜라 Noel Nicola 등과 함께 쿠바 누에바 트로바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밀라네스는 1943년 바야모Bayamo에서 태어나 하바나에서 성장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하나음악원 Conservatorio Municipal de La Habana에서 공부를 했고, 보헤미안음악과 필링 feeling* 음악을 하는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혁명을 지지하고 지원했음에도 '비열성분자'로 분류되어 1966년 일종의 재교육 시설인 노동교화수용소 UMAP에 수감된다.

그러나 1967년 그의 음악성을 아끼던 쿠바공산당 간부이며 음악가이자 영화예술과 영화산업 연구소' 간부인 후안 레오비힐도 Juan Leovigildo의 도움으로 밀라네스는 연구소를 중심으로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쿠바 정부는 쿠바혁명 이후 이 연구소를 세워 각지의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창작활동을 지원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연대와 문화적 토대 마련을 목적으로 '아메리카의 집 Casa de las Américas'을 설립하였다. 아메리카의 집에는 라틴 아메리카전 지역에서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이 쿠바 정부의 지원 아래 문학, 미술, 음악, 출판, 연극 등 여러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필링 feeling* 음악
*낭만주의 전통을 기본으로 쿠바의 전통음악에 재즈와 블루스가 가미된 쿠바음악의 한 장르. 1940년대 말, 호세 안토니오 멘데스(José Antonio Mendez), 세사르 포르티요 델 라 루스(Césarr Portillo de la Luz), 타니아 카스테야노스(Tania Castellanos) 등을 통해 누에바 트로바 운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 필링은 기타 반주 하나만으로 노래하는 형식인데, 당시 라디오 방송을 점령한 밴드나 오케스트라 음악에 밀려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노동교화수용소 UMAP
**2015년 한 인터뷰에서 밀라네스는 “UMAP(Unidad Militar de Ayuda a la Producción)에서 당한 고통에 대해 쿠바 당국이 자신에게 사과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밀라네스는 1968년 평생의 동지인 실비오 로드리게스를 만나게 된다. 당시 청년 화가이던 로드리게스는 1967년 하바나의 예술극장에서 열린 '시와 음악의 만남 공연'에서 라틴 아메리카 시인들의 시에 자신의 곡을 붙인 열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이로써 새로운 음유시 운동의 태동을 알린 셈이다. 밀라네스와 로드리게스는 쿠바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기존의 트로바를 더욱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누에바 트로바 운동을 창시하고,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1972년 공식적으로 누에바 트로바 운동본부를 결성한다. 누에바 트로바 운동본부는 쿠바 혁명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 음악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1년만에 3천 명의 회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발전했다. 

쿠바의 전통음악은 16세기 스페인의 강점과 흑인노예의 유입에 따른 결과로 스페인음악과 아프리카음악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19세기 후반 미국의 대중음악과 유럽음악의 영향을 받아 매우 다채로운 음악들이 탄생하게 된다. 유럽음악의 영향을 받은 아바네라 havanera, 아프리카음악의 영향을 받은 룸바 Junba, 맘보 mambo, 차차차 chachacha, 카리브 토착 민속음악이 중심인 필링 feeling과 손son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마누엘 사우멜 Manuel saumell, 이그나시오 세르반테스 Ignacio Cervantes, 호세 우르페José Urfé 등이 주축이 되어 손, 과히라 guajira, 과차라guachara 등을 전통음악 형식으로 확립한다. 이어 20세기에 들어와서 기타 반주에 전통음악 형식의 노래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트로바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트로바도 쿠바 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기존의 트로바는 새로운 미래와 그 이상에 관한 내용들을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누에바 트로바의 태동을 알린 사람은 쿠바 혁명의 음악적 대표자로 불리는 민중시인 카를로스 푸에블라 Carlos Puebla였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와 주요한 정치적 사건들을 민중들의 삶과 연관시켜 노래로 만들었는데, 친숙한 전통음악 형식에 쉽고 편안한 시적 가사를 붙여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푸에블라의 영향으로 1966년 젊은 예술인들은 월간지 《수염난 악어》를 창간하고 시와 음악이 만나는 '누에바 트로바' 운동을 선언한다. 여기에 쿠바 정부의 지원과 밀라네스와 로드리게스의 등장으로 누에바트로바 운동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누에바 트로바운동은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음악들을 세상에 내보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는 고유의 미성과 아름다운 선율, 은유와 상징이 뛰어난 시적 가사의 노래로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밀라네스는 쿠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시인 호세 마르티와 흑인문학의 거장 시인 니콜라스 기옌Nicolas Guillen등의 시를 노래하여 역시 대중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밀라네스는 1970년대 말부터 퇴색한 쿠바혁명의 이상에 비판적인 생각을 품고 국내보다는 브라질 등 국외에 거주하면서 음악활동을 계속했다. 간간히 쿠바의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해서 그 때문에 노동교화수용소에서 2개월간 재수감되기도 했다."

밀라네스는 전처 욜란다 사이에 린 Lynn, 리암 Liam 수일렌suylen 등 세딸을 두었다. 장녀인 린은 아버지를 이어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밀라네스는 재혼한 스페인인부인과 함께 2004년부터 스페인 비고 vigo 에서 살고 있다.


#스페인 일간지 《El Mundo》 2010년 3월 19일자 인터뷰에서 밀라네스는 "국가는실수를 인정하고 개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인간의 관점에서 나는 그것을 비판한다. 카스트로는 변해야 한다"고 쿠바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

 

밀라네스의 아내 욜란다 베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