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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 뼈아픈 후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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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 뼈아픈 후회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21. 01:16

박정대 - 뼈아픈 후회

뼈아픈 후회*

(창밖에는 비가 오구 있어요, 비가 오지 않는다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글을 읽으세요, 세르주 갱스부르**의 이니셜 B·B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욱 좋구요, 갱스부르의 노래가 없다면 갱들이 부르는 노래두 괜찮구요, 노래구 뭐구 글을 안 읽으신다면 더욱 좋구요)

1 반복

보잘것없는 육신의 횡포, 하나의 천박한 영혼이 되었다. 아아 잔혹한 세월과 병든 의식들이 질병처럼 우리들의 온몸을 휩싸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늪지의 풍경 속에서 하나의 천박한 영혼이 되었다. 정처 없이 바람이 불고 사랑을 닮은, 결코 사랑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 페스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불온한 밤과 열병의 거리를 헤매며 그때 내가 읽었던 것은 무엇인가. 정처 없이 바람이 불고 열병을 닮은 하나의 페스트 같은 사랑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어느 시간에서나 비린내가 나고 내 청춘의 녹슨 물고기들은 상처의 급류를 따라 거칠게 흘러갔다. 잠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저마다의 심연으로 스스로 침묵해 가고 눈을 뜨면 버림받은 태양들만 몰락의 상징처럼 수고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죽을 수 있었으나 끝끝내 죽지 않고 버티었으므로, 살아가는 날들은 의무처럼 황홀한 고통으로 나를 감쌌다. 살아 있으므로 확인되는 그 많은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나는 진실로 단 하나의 사랑만을 원하였으나, 나 스스로 나를 사랑하지 못했으므로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2 픽션들

처음부터, 그 어떤, 그릇된 것에 관하여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포>, 아니면 <카를로바츠>였든, 나는 내 마음속에 하나의 환상의 도시를 갖고자 했고, 내 환상의 리얼리즘은 너로 인하여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부터, 뒤틀린 혓바닥으로 삶의 고난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몰락>이든, 아니면 <영겁회귀>든 고통스럽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러나, 처음부터 너에게 고통, 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고 싶지는 않았다. 항상, 언제나 내가 꿈꾸었던 것은 <완벽한 생애의 演技>, 그것 아니면 <>.

네가, 내 삶의, 내 추억의 경계선을 넘어, 아니 내가, 너의 그 경계선을 넘어 부단히 너의 추억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한때는 그것이, 아아 너를 만난다는 것이 내가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 유일한 변명이기도 하였건만 왜, 소설 속에서처럼 <그녀는 떠나고, 나는 텅 빈 천장의 심연 속으로 자꾸만 꺼져 들어갔다>의 한없이 유치하고 치졸한 이별이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던 것일까. 하나의 문장이 해체되고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어김없이 미세한 물질로 분해될 때 또한 그리하여 그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혼돈인가, 견고함인가.

물결처럼 어두워져서 더욱 깊게, 출렁거리며 나를 휘감는 너, 너는 아는지? 자꾸만 삶에서 도망치려는 한 나약한 사내를, 하여 더욱 빛나는 그 사내의 비겁함을. 하나의 위대한 文章.

처음부터, 그 어떤, <괴물 같은 고독>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언덕이 있었고 그 비탈진 언덕에서 나는 여러 번 굴러 떨어졌으므로, 그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을 뿐. 너의 따스한 입술로 내 속 깊은 상처를 위로 받고 싶었을 뿐. 너의 상처를, 그 상처의 푸른 무덤을 다만 위로하고 싶었을 뿐.

3 이륙한다는 것

어떠한 계기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붉은 입술의 노을 너머로 차갑고도 딱딱한 밤이 찾아왔다. 더 이상 내 입술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포도주 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가혹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작나무나 엄나무 숲에서 도마뱀들이 자꾸만 꼬리를 끊어 던지며 푸른 여름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안녕이었다. 그러나 또다시 아침이 왔다. 태양은 어김없이 내 머리 위로 떠올라 노예의 시간을 일어주었다. 홀로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다만 푸른 공기들 가운데 놓인, 아무도 만져본 적 없는 자유가 나에게 현기증을 일으켰을 뿐, 살아서 화석처럼 아득히 굳어져 가는 나의 육체는 오히려 마비와도 같은 평화로움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아아, 아득히 마비된다는 것, 그리하여 일체의 질투와 욕망의 혼돈 속에서 이륙한다는 것. 오직 그 단 하나의 시간을 향하여 내가 뛰어왔고 이제 막 그 도착 지점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내 속에 아주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황홀한 자존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4 바보들, 환생

완벽하게 모든 것을 포기한 뒤에 오는 막막한 자유, 푸르게 되살아오는 자유의 추억들, 순간순간마다 모든 것들이 그립고 모든 것들이 한숨처럼 무섭다. 육체에 대한 경멸, 거미의 죽음. 그리고 텅 빈 공간 속에서 오로지 홀로임을 느낄 때, 깊어져 가는 상념의 향기. 외부를 향한 고통이 스스로의 내부를 향해 그렇게 아득한 하나의 향기로 익어갈 때, 문득 너의 이름을 부르고 싶고, 너를 갖고 싶고.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한 뒤에 오는 막막하고 서러운 자유, 푸르게 되살아오는 자유의 추억들. 온몸이 하나도 힘이 없고 그리하여 죽을 여력마저 없을 때, 이렇게 막막하게 나를 휘감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평화와도 같은 것. 짐승들의 깊은 침묵과도 같은 것. 살아 있음에 대한 경멸, 그리고 거미의 환생.

- 박 정 대

* 황지우 시인의 시 제목.

**이니셜 B·B라는 노래를 부른 프랑스 가수. (Serge Gainsbourg)

*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같은 눈이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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