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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는이야기

화촉을 밝힌다. 화촉은 무엇으로 만들까?

김현관- 그루터기 2023. 4. 27. 10:05

 

화촉을 밝힌다. 화촉은 무엇으로 만들까?

축의금 봉투에 '축 결혼'이라고도 쓰지만 '축화혼'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화혼(華婚)은 남의 결혼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입니다. 또 결혼한다는 말을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기도 하지. 화혼과 화촉에서 사용하는 한자 화()'빛날 화'입니다. 그리'빛날 화앞에 나무 목 변을 더하면 '자작나무 화가 되는데, 실제로 자작나무를 화나무, 혹은 백화나무라고 부르기도 해서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로 시작하는 백석의 시 제목 역시 <백화>입니다.

남녀의 아름다운 만남과 자작나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자작나무의 껍질은 하얗고 얇은 종이를 여러 겹 붙여놓은 것처럼 차곡차곡 붙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매끄럽고 잘 벗겨져서 옛날에는 여기에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렸습니다.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을 펴서 그린 것이라고 하지요. 또 기름기가 많아서 잘 썩지 않는데다 얇게 벗겨내서 불을 붙이면 기름 성분 때문에 불이 잘 붙고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오랫동안 잘 탑니다. 래서 전깃불이 없던 옛날에는 자작나무 껍질을 작게 잘라 끝에 유황을 바른 다음 부싯돌로 이 부분을 쳐서 불꽃을 만들고 등불을 밝혔습니다. 일종의 성냥 구실을 했던 셈이지요.

'자작'이라는 이름은 껍질이 탈 때 나는 '자작자작' 소리에서 따온 의성어입니다.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과 행복을 불러오는 일, 녀의 만남에 이만한 덕담이 없겠지요. 그래서 결혼을 '화촉을 밝힌'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자작나무는 닥터 지바고와 라라가 썰매를 타고 달린 설원이나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카이를 태운 썰매가 달렸던 설원의 배경처럼 이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작나무는 겨울에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는 북위 45도 위, 한반도의 개마고원과 백두산 일대, 그리고 러시아와 핀란드 등에서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이 북위 42도쯤이니 사실상 남한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없는 셈이지요.

그러다 최근 강원도 태백산 일대에 자작나무 숲이 생겼는데 사람이 심고 기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작나무가 자생하는 나라에는 우리네의 '화촉을 밝힌다'와 비슷한 믿음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슬라브족은 자작나무를 '사랑의 나무'라고 부릅니다. 하얀 껍질을 잘 벗겨 순수한 사랑의 편지를 보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또 자작나무를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신이 내린 선물로 여겨 많이 심으면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지요.

새하얀 껍질을 벗겨 글을 쓰고, 태워서 불을 밝히고, 태우고 남은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무로는 각종 생활용품과 가구를 만들…………. 북위 50도 이상 자작나무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조선 국적이든, 러시아 국적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북쪽이 고향이었던 백석은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라고 했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자작나무 타는 소리에 감동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자작나무 타는 소리, 화촉을 밝히는 소리, 사랑이 시작되는 소 자작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잎이 모두 떨어지고 하얀 기둥만 남을 때라고 하지요. 헐벗을수록 빛이 나는 나무라니, 여러가지로 사랑의 속성과 많이 닮았습니다.

출처 : 문득 묻다 유선경

Mozart :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편지의 이중창,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

https://youtu.be/YI210i__Z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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