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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는이야기

호드기

김현관- 그루터기 2023. 4. 18. 00:10

호드기

이렇다 할 장난감이 없던 시절 어린이들은 전해 오는 놀이를 배워서 그나마 무료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기차기, 자치기를 하였고 그보다 더 공이 드는 것으로 연날리기를 하였다. 연 만들기에는 소도구와 연장자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그런 것 말고 널리 퍼졌던 것은 풀피리나 호드기 불기였다. 누구나 쉽게 만들어서 쉽게 불어댄 것이 호드기다. 우리말큰사전"물오른 버들가지를 비틀어 뽑은 통 껍질이나 밀짚 토막 따위로 만든 피리"라 풀이되어 있다. 우리 고향 쪽에서는 주로 미루나무 가지를 사용해서 호드기를 만들어 불었다.

시골에서는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하모니카를 사주는 법이 없었으니 어렵던 시절 흔히 만들어 불었다. 버들피리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오래전에 중학 동기생의 빈소를 찾기 위해 부평엘 갔다가 어떤 할머니가 굵직한 호드기 여러 개를 목판 위에 올려놓고 육교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처음 보는 호드기 장수여서 한참 그 앞에서 서성거렸다. 요즘 누가 이런 것을 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괜스레 할머니 보기가 민망하였다. 초등학생도 리코더를 불지언정 호드기를 불지는 않을 것이다. 풀피리, 들피리, 보리피리는 더러 동요나 시에 등장하지만 호드기는 의외로 드물다.

벽초가 서문을 쓴 박숭걸) 시집수록의 누나의 집이란 작품에 나오는 호드기가 드문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 박승걸은 대학생 시절 경향신문에 시를 발표했으나 첫 시집을 낸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6·25 전후에 흔하던 신상 변화와 연관된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수원 길 백 리 빈 오후에

햇빛이 외로워라

보리밭 사이로 진흙을 밟고

진흙을 밟고

호드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언덕 위 초가집 울타리에

"누나 내가 왔다오"

 
 

#사라지는 말들 / 유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