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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치기 딱 좋은 나이…즐기자, 베이비붐 세대의 소확행 본문
당구 치기 딱 좋은 나이…즐기자, 베이비붐 세대의 소확행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오디세이(16·끝)
당구장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어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다.
당구는 환갑이 지난 친구들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 종목이다. [사진 pixabay]
이제 환갑이 지나 만나는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 종목이 당구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친구 중에는 일부 골프를 즐기기도 하는데 미상불 얄팍해진 지갑에 부담이 많을 뿐 더러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온전히 하루를 헌납해야 하는 시간적 불편함도 따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당구장이 있어 친구들과 커피 한잔하거나 식사를 한 후에 가볍게 당구 한판을 즐기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 접근성과 편의성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우리 친구들은 약속 장소를 커피숍으로 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당위성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다방이 중장년 남성들의 만남의 장소로서 활용 되었지만 요즘의 커피숍은 젊은 친구들과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실 우리 또래는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커피 전문점에서 비싼 돈을 내고도 커피의 풍미를 즐기지 못한다.
오히려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는 커피의 양에 배불러 하다가 커피의 이뇨 작용만 실감하면서 화장실만 들락거리게 된다. 반면 당구장에서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맥 머시기 믹스 커피가 공짜로 무한 리필이 되는데, 짜릿한 한판의 승리 후에 마시는 그 달달함은 ‘음, 이 맛이야 ‘라고 우리에게 진정한 커피맛을 느끼게 해줌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다 보니 당구장은 우리 같이 업데이트되지 못한 노친네들에게 딱 맞는 약속 장소가 되어 편안하고 느긋한 사랑방 같은 공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탁구 교실을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추천하면 대부분 힘들 것 같다며 손사레를 친다.
우리 나이 또래에는 익숙지 않은 것에 도전하기를 꺼린다. [사진 pxhere]
나는 은퇴 후에 동 사무소에서 주관하는 탁구 교실을 다니고 있는데, 몸을 제대로 움직여가며 치지는 못하지만 두어 시간 탁구를 하다 보면 땀도 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친구들에게 탁구를 권하면 대부분의 경우 나보다 체력이 좋으면서도,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손사레를 치는데 실제 이유는 아마도 다른 데 있지 않나 싶다.
우리 나이 또래에는 익숙지 않은 것에 도전하기를 꺼리는데 이는 우리가 도전 정신이 흐릿해진 꼰대 이기도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에 어색해 지고 무엇보다도 익숙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수 취급을 당하거나 초보로서의 통과의례를 감내하기 싫어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반해 당구는 배우고 시작 하는 데 있어서 장애 요소가 거의 전무 하다. 일단은 당구를 같이 치게 되는 친구들이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친한 친구들이라 하수 취급을 당함에 민망함이 없고 오히려 어쩌라구 하면서 대들어도 다툼이 있지 아니하다. 또한 다른 스포츠처럼 최소한의 개인 장비를 별도로 구비할 필요 없이 그저 몸만 가주면 당구장에 모든 용품이 구비되어 있다.
심지어 당구장에서는 복장의 불편함이 전혀 없어 와이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정장 바지를 입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뿐더러 일반 당구장에서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신발은 운동화가 아니라 슬리퍼이니, 이렇게 입문하기가 편한 스포츠는 당구뿐이다.
또한 어떤 스포츠 보다도 익혀 두어야 하는 룰이 지극히 단순하다. 캐롬 사구에서는 내 큐볼(수구)을 가지고 목적구 2개를 맞추면 되고 삼구 에서는 큐볼을 가지고 목적구 2개를 맞추는데 쿠션을 3번 이상 이용하면 되는 것으로 삼척동자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나이 들었다고 헛갈릴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당구는 별도의 신체적 조건이 필요하지 않아 다른 어떤 스포츠 보다 신체상의 유,불리가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
더욱이 당구 게임에는 개인별 치수를 정하여 자기 실력만큼 치면 되는 것이니 이처럼 입문하기 수월하고 누구와도 부담 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당구는 접근성, 편의성, 룰의 단순성, 신체적 범용성, 게임 방식의 합리성 등등에서 어렵거나 불편함이 없다.
나처럼 혼자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성정에 당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은 늘 기, 승, 전, 당구이다. [중앙포토]
당구는 이렇듯 나이 들어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을뿐더러 예전부터 당구를 즐기던 친구들에게도 새삼 더욱 깊은 재미를 깨닫게 해 준다. 소싯적에는 그저 게임비만 면하려고, 회사에 다닐 때는 내기에서 이기려고만 하다 보니 실력이 늘긴 했지만 왠지 정통파적 기본 실력을 착실히 쌓았다기보다는 그저 이기기 위한 사파적 기교가 늘었다는 느낌이다. 뭐, 현실적 전투력이 증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시간적 여유도 많아지면서 이전보다 당구 칠 기회도 많아지고 또 많은 당구 기술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예전에는 그저 운의 영역으로 넘겨 버렸던 kiss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되고 당점, 속도, 스트록의 중요성도 알아가게 되면서 당구의 매력에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된다.
나는 은퇴 후에 인생 2막을 시작하며 이제는 내가 바라던 것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보 여행도 한번 하고, 책도 많이 읽겠다는 생각도 하고, 색소폰도 배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심지어 글도 한번 써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배낭도 가볍고 튼튼한 것으로 장만했는데 몇 해 전 산행에서 무릎 관절이 아파지면서 도보 여행을 떠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또한 책을 읽다 보면 눈도 아프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이미 머리를 떨구며 졸기 일쑤이다.
악기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데, 이는 내가 재주가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 단지 남들이 바라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다면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그저 재미있고 즐거웠을 터이니 말이다.
나처럼 혼자서 무엇을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성정에 당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있어 당구는 경쟁심을 유발하는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웃고 떠들 수 있는 놀이이다. 내 주변에는 당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 모임은 기, 승, 전, 당구이다. 처음부터 당구장에서 모이기도 하지만 같이 등산을 하고 난 후에도 뒤풀이는 언제나 당구이며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당구장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이다.
당구 TIP
당구는 실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안전하며 다른 운동처럼 무리가 가지 않는다. 당구장에서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쳤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혹여 득점 욕심에 무리하게 허리를 비틀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제는 시늉만 낼 뿐 허리가 다칠 만큼 비틀어지지도 않는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후건강 연구소가 60~70 대를 대상으로 당구와 노년의 건강관계를 조사한 결과 주 4회 이상 당구 게임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중장년층 남성들이 당구를 즐기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높임으로써 삶의 질이 향상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구대는 중대 기준 외경 가로세로 1,5 M X 3 M 이다. 당구대 한 바퀴를 돌면 6~7m를 걷는 셈이다. 1시간 당구를 즐긴다면 적게는 1 km 많게는 2 km 를 걷는 것과 같다. 당구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지 모른다. 공을 칠 때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려야 해 머리를 많이 쓴다. 이로 인해 뇌와 관련된 질병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얻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떠들고 웃는 사이에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돼 노화도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입력 2019.10.12 13:00] 당구 치기 딱 좋은 나이…즐기자, 베이비붐 세대의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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