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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개(犬) 이야기 본문
개(犬) 이야기
2022-06-19 10:42:17
개(犬) 이야기
개는 인류와 인연을 맺은 가장 오랜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구석기 시대 후기 집터에서 개뼈가 나와 이 무렵에 개가 사람과 가까웠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중석기 시대에 기르던 개를 땅에 묻어준 자취까지 나타난다. 그때 사람들도 개의 죽음을 슬퍼하였던 모양이다. 한편 우리네 신석기 시대의 함경 북도 웅기군 굴포리 유적(2,500~3,000년 전)에서도 개 머리뼈를 거두었다.
개처럼 슬기로운 집 짐승도 드물 것이다. 우리네 무속 신화에는 흰 강아지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며 민담에서도 죽은 이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걸린 외나무 다리를 강아지를 따라 건너간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중앙 아시아 일대에도 퍼져 있다.
1994년 초에 전라 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의 어떤 이가(이병수, 39살, 농업) 1993년 5월 다섯 살박이 '백구'를 대전의 어떤 이에게 팔았던 바, 같은 해 10월 집으로 되돌아왔다는 기사(조선일보 1994년 1월 15일자 색연필)가 나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른바 ‘미확인 보도’였음이 드러났다. 진도의 개장수가 '백구'를 해남에서 대전 번호판을 붙인 차를 타고 온 또 다른개장수에게 넘겼던 까닭에 사람들은 모두 대전에서 되돌아왔다고믿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월간조선 3월호에 자세히 밝혀졌다. 글을 쓴 이(소설가 박원식)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진돗개가 제 집을 찾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험해 보여 주었다. 1993년 한국 진도견 품평 대회에서 챔피언으로 뽑힌 두 살박이 수캐 '향동(소유자 명갑춘)'이와 또 다른 암캐를 대상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쌀미봉, 회동산,초산의 세 멧부리를 구불구불 넘는 도로를 따라 12km를 달렸으며, 이 동안 개들은 차 바닥에 엎드려 있어 일부러 눈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날 안으로 돌아온다는 개 주인 명씨의 장담이 빗나가기는 하였지만 '사흘하고도 4시간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낳았다. 자동차에 실린 채 산을 세 개나넘은 30리 밖에서 사흘 넘어 헤맨 끝에 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 거리가 '대전'에서 '30리'로 줄어들어 아쉬운 느낌은 없지않으나 '과연 진돗개로구나' 하는 찬탄을 금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 나라 개 가운데 진돗개(53호)와 경산의 삽살개 (368호) 두 종류만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이 밖에 제주도 개와거제도 개 그리고 함경도의 풍산 개도 이들에 뒤떨어지지 않는 씨들이다. 그런데 1993년 11월에 우리네 진돗개와 제주도 개가일본 개의 할아비라는 사실이 밝혀져 흥미를 끈다.
일본의 한 학자(田名部雄一)가 진돗개와 제주도 개의 두 유전자(Hb, Gmo)를 일본 개의 그것과 견준 끝에 “고형(型)의 개가 남아시아에서 류큐 열도를 거쳐 일본에 들어와 홋카이도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 새로운 개가 조선 반도에서 일본 열도의 중앙부 곧, 시코쿠·규슈로 건너왔으며 이들의 피가 섞여 오늘날 일본 개의 조선(祖先)이 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일본인의 성립이 이중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들어 "일본인의 첫 조상인 조몬繩文)인은 남아시아에서 들어와 홋카이도에 이르렀으며 그 뒤 야요이 시대(彌生時代·서기전3∼서기 3세기)에는 야요이 사람이, 고흥 시대(古墳時代• 서기 3~6세기)에는 고흥 사람이 조선 반도에서 건너와 본토에서 혼혈이 일어났지만, 홋카이도나 오키나와에서는 이 같은 피섞임이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우리 개가 일본으로 처음 건너간 시기는 적어도 서기전 3세기가 될 것이다.
우리 개는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도 일본으로 건너갔다. 백제에서는 358년(일본 인덕왕대) 검둥얼룩개를 보냈으며 특히 신라 신문왕(681~691)은 천무왕에게 두 차례나 개를 선물하였다. 또 성덕왕 때(732)에도 사신 김장손이 촉구(蜀狗)와 엽구(獵狗)를 데리고 갔다. 촉구는 오늘날의 삽살개로 생각된다. 한편, 성덕왕이 당나라에도 개를 두 번 보낸 것을 보면 우리 개의 뛰어난 성질이 주위 나라에까지 퍼졌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에 건너간 우리 개는 저들의 신사(神社)를 지키는 영물 대접을 받았다. 오늘날 신사 문 앞 좌우 양쪽에 버텨 앉은 개 상(石이 그것으로 일본 사람들은 이를 '코마이누(한국 개)'라 부른다. 우리도 실상 삽살이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온 만큼 일본에 건너간 개들도 같은 종류로 생각되며 당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네 개는 어디에서 들어왔을까.
신석기 시대의 개 유적이 함경 북도와 평안 북도에 몰려 있고 중국의 경우도 동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어 이 지역을 통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헤모글로빈 유전자 함유율을 보면 중국 원산 개에게는 이것이 전혀 없는 반면 에스키모 개에는 100% 존재하며 진돗개, 제주도 개 그리고 일본 개의 순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네 개는 북방 에스키모 개와 중국 계통의 혼혈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의 충직함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고려사 충렬왕 8년(1282) 4월 기사에 다음 내용이 보인다. 개성 진고개에 부모를 일찍 여읜 눈먼 아이가 흰둥이와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개 꼬리를 쥐고 거리에 나가 밥을 얻으면 먼저 입에 대는 법이 없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우물로 이끌어서 아이 스스로 부모는 잃었으나 이 개가 있어 살아간다 하였고 사람들은 훌륭한 개(犬)라 일렀다는 것이다. 술 취한 주인을 개가 살려냈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듣는다.
전라 북도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의 의견비, 경상 북도 선산군 도개면 신림리와 평안 남도 용강군 귀성면 토성리, 그리고 평양시의 개 무덤(狗隊),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의 개탑들은 그 충직성을 웅변으로 알려 준다.
따라서 남을 낮추어 말할 때 '개 같은・・'이라고 하면 오히려 그를 높이는 것이 되고 '개만도 못한・・…' 이라고 해야 옳다.그러나 이를 굳이 기억할 것이 무엇이랴. 남을 높이면 자신도 저절로 높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개를 귀물로 여긴 민족은 많다. 중국의 주와 진나라 그리고 고대 로마에서는 개를 신령에게 바쳤고 시베리아의 골랴크족은 개끼리 뜀박질을 시켜서 진 놈을 악령에게 내주었다. 중국 동북부 흑룡강과 사할린 일대의 니히브족은 혼인 때 개를 예물로 쓰거나 신부값으로 치렀다. 강원도에서 근친 가는 며느리에게 이쁜이로 삶은 개를 주어 보낸 풍습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정조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1735~1815) 회갑상에도 개를 통새미로 올렸다.
우리는 예로부터 개를 식구처럼 아껴 왔다. 노인들이 어린 손자녀를 '내 귀여운 강아지'라 부른 것이 좋은 보기이다. 우리집 큰아이도 어릴 때 '똥개'였다가 자라면서 '개동'으로 앞뒤 글자를 바꾸어 불러 온다. 온식구가 개를 좋아하건만 범띠 아내만은 자주 눈살을 찌푸리고 목청을 높인다. 역시 '띠'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암놈 한 마리를 기르다가 얼마 전 짝을 채워 주었다. 동물도 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혼자일 때는 축 늘어지기만 하더니 짝을 만나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둘이 뒤엉켜 엎어지고 자빠지는 등 좋아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 한 가지 좋은 일을 하였거니 위로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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