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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소설인가, 역사인가 / 삼국지 본문

철학,배움,지혜

소설인가, 역사인가 / 삼국지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1. 11:20

소설인가, 역사인가 / 삼국지

 

소설인가, 역사인가

어린 시절 나를 열광하게 만든 것은 빨간 비디오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범생은 결코 아니었으니 학교 공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읽은 책 가운데 강하게 뇌리에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엉뚱하게도 만화책이 머릿속을 맴돈다.

책 제목은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손에 잡아봤을 삼국지. 그런데 무더운 한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누가 볼세라 읽은 책은 소설이 아니라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 삼국지였다. 당시는 장발단속이 이루어지고 미니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던 시절이었고, 간혹 만화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벗은 몸뚱어리나 욕설에 가까운 언어는 공산당이 싫다고 외쳐야 할 어린이가 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이 소설에 아직까지 저작권법이 적용될 리도 없고, 그 뒤에도 이문열이나 황석영 등 당대의 글쟁이들이 남의 소설을 자기 마음대로 개작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지금도 최고의 삼국지는 고우영의 <삼국지. 이런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서양의 호메로스가 인간을 끊임없이 싸우는 싸움꾼''언제 끝날지 모르는 목적지 없는 여행을 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리아드오디세이를 남겼다면, 나관중의 <삼국지는 이것이 한꺼번에 녹아 있다. 실제 역사에 근거한 책이고 탁현 누상촌에서 돗자리나 짜던 몰락한 황손 유비가 도원결의를 한 의형제 관우, 장비와 함께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갖은 고초와 수모마저 감수하는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들이 싸움을 벌인 지명과 이들을 도와주거나 때로는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실존인물들의 이름까지 나오니 소설이 아니라 역사가 아니냐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오늘날 삼국지가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리아드><삼국지를 동일선상에서 본다면 단연 아킬레우스에 해당하는 사람은 여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방천극을 들고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와 동시에 싸워도 뒤지지 않는 체력, 적토마라는 명마를 타고 물 위를 뛰어다니는 용기, 간혹 간교한 꾀까지 써서 위기를 벗어나는 능력 등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 인물도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니 바로 절세미인 초선을 양아버지 동탁에게 빼앗기고 결국 동탁을 죽여 폐륜아의 길로 접어든다.

나관중은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에 살았던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그가 명제 원년에 산시성루링에서 태어나고 명나라혜제 2년에 죽었으며, 최하급관리였다고 하나 정확하지는않다. 이름은 본, 자는 관중, 호는 호해산인湖人이다.그는 송원시대유행한강기초로 해서 구을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살았던원나라 말기에는 정치가 부패하고 백성들은 궁핍하게 살았다. 나관중도 어지러운 세상을바꿔 보려고 정치에 참여했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여러 곳을 방랑했다. 그 후 명나라가 들어서자 글쓰기에 전념해서 삼국지를 집필했다.

서양의 고전이 적과 나의 싸움이나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불리는 싸움인데 비해 삼국지>는 내용이 훨씬 정교하다. 내가 화를 참지 못하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이를 이용해서 이익을 보거나 나와 네가 아닌 제3자가 우리끼리 싸우는 것을 핑계로 이유없이 싸움에 끼어든다. 싸움이라는 것이 적과 나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난데없이 제3의 적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여포에게 반기를 드는 장수들도 동탁과는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여포가 아버지를 죽인 폐륜아라는 점을 강조해서 반란의 정통성을 찾는다. 그것도 모르고 여포는 초선이라는 미인 때문에 아버지를 죽일 때도 일말의 갈등도 없으니 호메로스가 묘사한 파리스나 헬레네와 같은 처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복잡한 사정을 이용해서 인기를 얻는 사람도 있다. 아들인 아두를 구출하고 온 조자룡 앞에서 이런 놈 때문에 천하의 명장을 잃을 뻔했다" 며 아두를 내동댕이치는 유비의 모습을 보면,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지도자의 위신을 택해 아들을 내치는 냉정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유비는 조자룡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다. 아들보다 부하를 생각하는 장군으로 각인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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