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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일상적 사랑 본문

가족이야기

일상적 사랑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9. 15:59

일상적 사랑

아내의 뺨을 어루만질 때 그 보드라운 살의 느낌이 손끝에 묻어난다. 촉촉하고 말랑한 젤리 같은 입술의 감촉마저도..

"여보! 등 좀 긁어 줄래!"
아내의 등이 따듯하다. 여린 살 아플세라 손톱을 감아 쥐 듯 부드럽게 긁는다. 이내 연붉은 고랑이 가로 세로로 이어질 때, "그래 거기 거기! 아이 시원해..!"

아내의 고로롱거리는 고양이 소리를 듣는 순간 짜릿한 행복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내 손이 가장 아름답게 쓰이는 순간이다. 아내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찰나이기도 하고..

이때만큼은 아내가 좋아하는 구수한 칼국수도, 한 여름의 시원한 바람도 뜨거운 숨결도 다 소용없다. 오로지 등 긁는 부드러운 손길만이 아내를 가장 흐뭇하게 만족을 시키는 순간이다.

간혹 집에서 목물을 해 줄 때 만족스러워하는 아내의 미소가 새삼스럽다. 같은 등이라도 긁어 주는 등과 목물시키는 등에서 느끼는 내 손의 감촉은 많이 다르지만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 주는 남편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마음이 흡족하니 그로서 행복하다.

아내의 등을 긁으며 그 옛날 부드럽고 뽀얗던 살 속이 서서히 거칠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두 지나간 세월과 나의 무심함으로 인한 마음고생 탓이리라.. 더욱 미안한 것은 삼십여 년을 살아오며 흔한 영양크림 하나 아내의 손에 쥐어 준 기억이 없음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때까지 이런저런 화장품을 쓰지는 않았어도 피부가 좋아서인지 아직까지는 또래보다 젊어 보인다는 것인데 들어가는 나이에 시들어 가는 피부를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여보 석민 아빠! 조금만 돌아 누워 봐.!"
" 으-응... 왜 그래!"

오늘도 아내는 곤히 잠자고 있는 나의 손을 살짝 그러 쥐며 한마디를 던진다. 나의 요란한 코골이에 잠을 깨었는데도 저리 부드럽게 말한다, 잠결에도 투덜대는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은가 보다. 아무리 오래되어도 적응이 힘든 게 코 고는 사람 옆에서 잠자는 것이라는데 아내는 툴툴대기는 하여도 그리 모질지 못해 오늘 역시 날밤을 새울 모양이다.

이렇듯 화장품은커녕 피부가 거칠어지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직 입으로만 생각하는척하는 일상은 결혼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이렇게 글로만 아내를 위하는 의뭉스러움이 더하고 있으나, 내 글을 보지 않는 것을 알기에 그리 괘념치 않는 뻔뻔한 자기 위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간혹 "내가 아내를 사랑하기는 하는가?"라는 자기 성찰까지 하게 된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잇몸이 좋지 않아 작년에 임플란트 시술을 하려 했으나 마련해 둔 돈이 아까워 우선 임시변통을 하고 수술을 미루고는, 한동안 내 앞에서는 불편한 티를 안 내더니 얼마 전부터 다람쥐 도토리 갉아먹듯 힘들게 음식을 먹는 것을 보다 못해 용하다는 치과를 찾았으나 그동안 상한 잇몸 때문에 이제부터 잇몸 치료를 시작하여도 근 일 년은 고생을 해야 된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며 몸의 이곳저곳에서 고장이 났으니 빨리 수리를 해서 쓰라고 아우성이다. 옆구리에 버티고 있는 지방덩어리도 도려 내야 하고, 피로하면 발에 경련이 일어나는 현상도, 음식 트러블로 인한 두드러기의 원인도 찾아 치료를 해야 하는데 마치 남의 몸처럼 신경을 안 쓰고 병을 키우려는지 다른 병이라도 나타날까 걱정되어 그러는지 병원에 가기를 한사코 마다하며 전전긍긍하는 아내가 답답하다. 삐걱거리기는 해도 임시변통을 하며 사용하고 있는 신체의 각 부분들이 병원에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탈이나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남편 된 나의 솔직한 입장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내의 성격이 활발하고 긍정적이라 주위분들과의 관계가 도타워 위아래로 두루 사랑을 받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음울하거나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잔병들이라 할 지라도 몸과 마음이 금세 무너질 수 있겠지만, 건강한 정신을 갖고 별것 아닌 농지거리에도 기꺼이 시원하게 웃어 주는 여유로움이 있어 지금까지 평안한 가정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지난 세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남편을 만나 여유 없는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살림을 꾸려 온 아내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2014.2.8 

입춘이 며칠이나 지났는데 영동지방에는 나흘간 폭설이 계속되고 진부령에는 85센티의 눈이 쏟아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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