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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진주혼을 맞이하는 斷想 본문

가족이야기

진주혼을 맞이하는 斷想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8. 02:22

진주혼을 맞이하는 斷想

"딩동"~ 아내의 휴대폰에 뜬 메시지 하나가 동그마니 나를 쳐다본다. 슬그머니 열어 보니, 아내의 선배 부부가 제주 여행길에 계속 아내에게 소식을 중계하는 모양이다. 환하게 웃는 두 분의 모습에서 행복이 담뿍 담겨 보여 빙그레 미소를 짓는데, 화면의 조금 위 쪽에 부러움이 섞인 아내의 답글과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벅벅 긁고 있는 우울한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전화기의 화면이 흐릿해졌다.

"여보! 우리 알탕 언제 먹으러 갈 거야?"...
며칠 전 중얼대던 대화중에 흘낏 쳐다보며 물어보는 아내의 눈초리에 은근한 가시가 배어 있다. 그날만이 아니라 진즉부터 알탕 타령을 하는 아내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던 무심함이라니. 이제는 미안한 감정을 지나 죄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석바위 살던 시절부터 부실한 치아로 인해 거칠고 딱딱한 음식을 기피하고 빵과 아이스크림, 라면 등 밀가루나 부드런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 탓에 점점 몸이 난 아내의 모습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왜"! 얼굴에 뭐가 묻었어?"
머쓱하니 얼굴을 매만지는 아내의 짧은 행동에서 문득 백설공주라 부르던 처녀 적 귀엽고 환한 미소가 배어 난다. 나는 아직도 펑퍼짐한 아내의 모습에서 연애 시절의 설레는 감정과 고운 아내의 얼굴의 요모조모를 찾아내는 기분 좋은 재주를 갖고 있어서 지금껏 행복을 누리고 있다.

벌써 입하란다.! 모질게 사납던 지난겨울의 심통에 진저리를 치고, 봄인가 싶은 계절에도 심술궂은 추위와 비로 인해, 그 은은한 정적이며 아지랑이 나른한 봄의 정취를 채 느끼지도 못했는데.. 바야흐로 여름이란 녀석이 불쑥 명함을 내밀고 있다. 점점 계절의 순환이 비정상적으로 우리를 방문하는 것은 자연이 베풀어 준 은혜를 탐욕으로 되돌려 준 인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손바닥 안의 욕심을 쥐고 있을는지...

삼십 년 전! 지금은 없어진 자유공원 중턱 한국회관에서 아내와 내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신부대기실에서 백옥 같은 피부에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모습을 보는데 하나의 포인트가 되어 도드라진 빨간 입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지각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데 우연히 듣고 난감해하시던 장모님 모습에 섬찟했던 기억! 그 못난 젊은 날의 자화상이여..

그렇게 우리의 삶이 시작되었다. 한국중공업 사택에서 시작된 신혼생활, 보물과 같은 두 아들의 탄생과 성장.. 몇 번의 이사.. 내 집 마련, 동생들의 결혼.. 해외여행들, 아버지와 처 할머니의 운명.. 그리고 진급을 앞두고 IMF 한복판에 강행한 명예퇴직과 사업.. 솔잎을 거부한 송충이의 길 - 당연한 실패.. 또 사업.. 또 실패.. 그로 인해 잃어버린 건강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던 아득한 시간들.. 이어진 나락 같은 세월.. 지금 와서 가만 지난 세월을 되돌려 보니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세월에 즐거움도 많았지만 부침의 세기가 너무 커 보인다. 그러나, 평생 잊지 못할 아내의 긴 울림 있는 이 말..

"여보! 그동안 당신이 우리를 먹여 살렸으니 이제 좀 쉬어요.. 이제부터 내가 당신 몫을 할게..."

세상에서 내게 제일 용기를 주었던 이 말은 평생 가슴에 안고 가야 할 금과옥조이다. 나락을 헤쳐 나온 지금은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을지라도 희망의 끈이 보이는 생활로 인해 웃음이 많아진 아내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찾는다.

결혼을 하고 나면 서로에게 기억이 나는 여러 추억거리가 있다. 훗날 되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많아야 노년이 심심찮겠다. 나중에 변변한 추억거리 하나 생각이 안 난다면 그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참으로 기억되는 것은 가슴속에 쓰인다"는 스코틀랜드 격언이 있는데, 가슴속에 써진 이야기는 훗 날의 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면, 기왕에 사는 것, 슬몃슬몃 스토리 하나씩 엮어 가며 살아야지...

삼십 년이라면 참으로 긴 세월이다. 결혼 삼십 주년이 되면 서양에서는 진주혼이라 하여 사랑하는 아내에게 진주를 선물하며 그간의 삶을 반추하고 미래를 아름답게 꿈꾼다고 한단다. 서양의 격식을 따르자면 큼지막한 진주 덩어리 하나 준비해서 아내에게 안겨야 하겠지만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견물생심이라 그저 조촐하게 좋은 날을 잡아 여행이나 다녀오자 아내와 약조를 하였다.

공교롭게 결혼기념일 즈음에 아내는 통계청일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엊그제는 토요일이자 마지막 조사 날인데. 그동안 못 만나거나 비협조적인 가장 곤란한 조사 대상을 만나는 날이다. 예전의 경우를 비견해 보면 이런 날은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아이들과 내게 짜증도 부리고 불평도 하는 게 정석인데 자기의 감정을 추스르면서 내가 듣기 싫어할 말 대신 편안한 말로 골라 쓰느라 애를 쓰는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절로 눈에 보인다.

평상시에는 본인이 먼저 날을 세우고 신경을 곤두세웠을 부분에서도 과장되게 깔깔대며 웃어 주는 아내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그래! 아무렴~ 서로 말은 안 해도 자연스레 상대가 의도하는 바대로 표현해 주는 것도...,그런 의사에 적당히 대응해 주는 것도. 그게 모두 다 삼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 온 내공이자 대과 없이 살아온 부부가 받을 수 있는 삶의 조그만 선물일 테지. 오늘은 결혼 30주년 기념일! 아내의 마음에 꿈을 심어 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 먼저 사랑을 담은 입맞춤부터 시작해볼까!..

 

여보!

올핸 또 뭐라냐.
모니터엔 깜빡이고 마음속엔 넘실대는데
혓바닥만 천근만근이라


슬며시 말하지니 어색하고 
큰소리로 하자니 쑥스러
에라! 올해까지만..
소리 안 해도 알 거야.

십 년지나 나는 당신이요
또 십 년 지나 당신은 나요
십 년 더 지나 이제 한 가지라

백옥이냐 백설이냐 살결이 아직도 뽀얗구나
아모레 , 피어리스 없어도 보들한 손가락
등 바닥은 야들야들하고,

푸덕푸덕 싸워도 흥 뾰로통해봐도 흥
하루 지나 흥 이틀 지나 호호
이러구러 살아온 지 어언 삼십 년

여보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20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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