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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아빠도 아프다 본문

가족이야기

아빠도 아프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7. 10:40

아빠도 아프다 [2012년 월간 샘터 11월호 게재글]

작은 애가 돌아 올 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돌아왔다. 왜 늦었냐 물었더니 "그냥 볼 일 좀 보고 왔어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잠시 후! 일하다 발목을 접질려 진찰받고 오느라 늦었는데 엄마한테 말하면 걱정하실 테니 아버지만 알고 계시라며 넌지시 귀띔한다. 다행히 힘줄만 살짝 늘어나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데 한동안 통증이 심했다면서 배시시 웃는다.

"이 녀석아! 네가 다치면 엄마만 아프고 이 아비는 무덤덤할 줄 알았더냐? 이 아빠도 아프단다..!"

작은 애는 심성이 착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남다르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절로 깨우쳐 사회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을 보면 아비 된 입장에서 그저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지난 3월에 병역의무를 마치고서 그저 게임과 밥 먹는 시간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길래 하루빨리 자각해서 제 인생의 청사진을 꾸려 나가야 할거라 걱정을 했는데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녀석은 한 달여를 푹 쉬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학비 좀 벌겠다 선언을 하기 무섭게 생산공장에 취직을 해서는 지금껏 다니고 있다. 그저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알바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돈이 안 된다며 아예 연장근무와 휴일근무까지 자청을 하면서 알찬 저축을 하고 있다.

마약 같은 게임의 세상에서 단번에 손을 털고 일을 하러 나가는 녀석의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지만, 새벽에 꼬박꼬박 일어 나 공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 여름 땀을 흘리며 일한 덕에 바지가 터질 듯하던 허벅지살과 늘어진 뱃살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턱선도 날카로워지며 잘생긴 원래 미남형의 얼굴로 되돌아온 것이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는데

"아빠! 일부러 돈을 들여가면서 살을 빼는 사람도 있는데 돈을 벌어 가며 살을 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큰소리치는 녀석의 부모에 대한 배려의 심성이 고마울밖에..

이제 두 어달 정도 다니면 한 해 학비와 가고자 하는 여행 경비가 마련된단다. "아버지! 나머지 학비 좀 부탁할게요".. 미소 짓는 이런 녀석을 어느 부모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복학하기 전 추운 날씨를 감당하면서 전국일주를 해 보고 싶다는 녀석! 당초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나! 원하는 것을 속으로 감추는 녀석의 커 버린 마음이 가슴에 와닿는다.

오늘은 벌겋게 줄 그어진 왼쪽 팔을 불쑥 내 민다.

"아빠! 아빠! 여기 좀 봐요".."아니! 왜 이렇게 된 건데?"

정색하며 긴장하는 아비에게 장난이라고 놀려대며 깔깔대는 녀석에게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도 나무 모서리에 스쳐 긁힌 자국인가 보다.."

"사랑하는 내 아들 경민아!"

2012.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