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성묘 가는 날 본문

가족이야기

성묘 가는 날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7. 11:10

성묘 가는 날

투명한 파란색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자니 눈이 시리다. 간간 흐르는 뭉게구름이 푸르름을 강조하여 섧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색의 농담이 주는 그라데이션으로 인해 어느 곳으로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세상의 물감으로는 도저히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고운 색이다.

어제 미국 고모님께서 근 6개월만에 전화를 하셨다. 석준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겨 홀로 석준이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던 것 같다. 그간에 오로지 주님의 힘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신 이야기와 세 형제 중에 가장 정이 든 나를 사랑한다는 말씀과 컴퓨터를 사용하기 힘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게 너무 힘드셨다는 말씀을 근 30분간 쉼 없이 꺼내 놓으셨다.

사실 그동안 전화도 불통되고 메일도 안 받아 혹시 건강에 이상이 생기신게 아닌가 걱정을 하였는데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 하니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다. 이제 새로운 전화번호와 내가 새로 개설해 드린 메일 계정으로 소통을 개시하여 그동안 밀렸던 얘기들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동생과 두 아들과 함께 할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러 백석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할머니의 묘에는 이번에도 칡덩쿨과 온갖 잡초들이 봉분을 덮고 있다. 할머니 양 옆으로 전혀 관리가 안 되는 묘 때문에 잡초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제대로 된 대비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정 4명이 땀을 흘리며 칡과 잡초들의 뿌리를 뽑고 단장을 하니 그제사 할머니 집에 화기가 돈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담배 한 대 놓아 드리고 고모님의 안부를 전해 드리니 할머니께서 그 옛날 특유의 고운 미소를 지으며 대견해하신다. 사랑스러운 내 할머니...

이웃에 계신 아버지의 묘는 할머니보다는 덜하지만 낯선 잡초가 기승을 부리고 바늘끝으로 콕콕 찔러대는 엉겅퀴까지 사초 작업을 방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조그만 풀벌레들이 물어 대는 통에 부랴부랴 제초를 하고 그동안 비바람으로 바랜 비석의 글자에 새로 덧칠도 하였다. 석민이가 할머니와 아버지의 비석에 덧칠을 담당하였는데 음각마저 닳아 꽤 고생을 하였다.

매번 할머니의 묫자리 아래 석축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늘 생각에 그치고 만다. 석축을 새로 한 사람에게 공임을 물어 보았는데 꽤 많은 금액이 들었단다. 사실 석축공사를 미루게 된 연유는 할머니의 유골을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고 싶은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 한 군데에서 꼼짝 못하는 매장보다는 화장이 좋다. 게다가 납골당보다는 한 줌 재로 세상에 뿌려지길 원한다. 간혹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네지만, 아이들은 내 말에 신용을 두지 않는 것인지,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아내는 화장이 좋다는 내 말에 펄쩍 뛰며 반대를 하는 입장이라 설혹 지금 죽는다 해도 내 몸 하나 내 의지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묫자리에 대한 소유여부를 물어보는데, 이미 아이들에게 밝힌 생각처럼 자리에 대한 관심도 없거니와 굳이 생전에 내 묫자리를 챙기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나 죽으면 화장을 하여 아내와 내가 다니던 곳 중 경치 좋고 전망 좋은 곳에 한 줌씩 뿌려두고 저희들 여행 다닐 때 근처를 지나며 한 번씩 안부를 물으면 그것으로 되지.

그러면 때찾아 하는 번거로운 성묘는 필요 없을 것이요. 나는 나대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동가식 서가숙을 하며 사후 세계를 즐기게 될 것이고, 아이들도 격식 없이 편한 대로 나를 찾는다면 그것이 더 좋은 부자지간의 관계로 익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조그만 내 소망이다.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마전리에는 지금 코스모스의 들국화 그리고 소소한 들꽃들이 기을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들꽃 향기 속에 멋진 백발을 휘날리며 아버지의 은은한 얼굴이 파랑 하늘을 배경 삼아 조용히 떠오른다. 무엇을 말하심인가! 아직 때는 아니지만 아버지를 찾아뵙고 나니 이제 나도 죽은 뒤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게 편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한가위 따라 가을은 깊어간다... 

2012. 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