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36년 만에 타 본 자전거 본문

가족이야기

36년 만에 타 본 자전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6. 20:10

36년 만에 타 본 자전거

내 자전거가 생겼다. 큰 애가 작은애의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사 주더니 한참 주무르며 변신을 주던 자기 자전거 수준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새 자전거를 구입하고는 어미에게는 미니벨로를, 내게는 제 자전거의 쓸만한 부속들과 새 부속을 끼워 맞추더니 며칠 전 완성을 보았다며 자랑스레 선물을 하면서. 졸지에 우리 집은 1인 1 자전거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햇빛 찬란한 일요일 아침! 함께 월미도를 가자는 큰 애의 꼬드김에 한참을 망설이다 동행을 결심했다. 사실 자전거를 타 본지가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 과연 올라타고서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으나, 흔히 얘기하는 자전거 타는 법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몸이 기억한다라는 말을 믿고 가 보기로 하였다.

훌쩍 올라탄 자전거는 그대로 내 몸에 반응하면서 페달을 구르기 무섭게 시원스레 달리기 시작한다. "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함인가. " 작은애가 앞서고 큰애가 뒤쪽에서 호위를 하며 제물포 방면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르르 흐는 톱니바퀴와 체인의 마찰음이 경쾌하게 귓전을 울린다.

숭의철교부터 시작되는 오르막길도 가볍게 올라간다. 기어가 없는 로드 자전거로 철마산을 힘겹게 오르던 청년시절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몇 번을 오르다 보면 체인이 늘어나고 허브가 앞으로 쏠리면서 체인이 벗겨지기를 수차례는 반복을 해야 간신히 정상에 오르던 그 시절에 비하면 비록 철마산에 비견할 수 없는 낮은 언덕길이지만 단 한 번의 기어 변속만으로 쉽게 올라가는 지금의 자전거가 새로울 뿐이다.

가볍게 도원역과 동인천역을 지나 송월동으로 향하는 길에 북성부두로 돌아갈까를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획을 변경하는 게 아니다 싶어 그대로 월미도를 향해 페달을 굴렀다. 이윽고 하인천역과 대한제분을 지나니 월미 은하레일이 보인다. 그곳부터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인도를 놔두고 자전거 도로로 걸어간다. 공교롭게 자전거 도로 쪽에 은하레일의 철로가 가려 그늘이 진 탓이라 할 수 없이 인도로 월미공원까지 달렸다.

월미공원을 가로질러 최종 목적지인 월미도 해안가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모습들이 내 맘과 한 가지인 듯 모두 밝고 환해 보인다. 전동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내년이면 서른 고개에 들어서는 큰 애를 언제 장가보낼 거냐는 주위의 얘기에 아이들의 방긋 거라는 모습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평소 운동을 안 해오던 저질체력의 실체가 그때부터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느라 친수계단으로 내려 서는데 다리가 고무다리 인양 흐느적거린다. 그것 참! 저질체력의 원조격인 부활의 리더 김 태원이나 국민약골 이 윤석이도 이러지는 않을 텐데 남우세스럽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간신히 수습을 했는데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마시고 사진을 찍은 뒤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자전거엘 올랐는데 안장에 돌덩어리를 얹어 놓은 것처럼 엉덩이가 배기면서 엄청난 고통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기타를 치려면 손가락에 통증이 수반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때부터 제대로 안장에 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서서 페달을 밟자니 핸들이 기우뚱거려,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엉덩이를 씰룩대며 오기 시작하는데 자전거 도로는 부실공사를 했는지 곰보빵처럼 우들두들거려 고통을 배가시켜 주었다. 그 모습이 안되어 보였는지 작은애가 전철을 타고 가자고 하길래 그러자는 말이 단숨에 나왔지만 인천역에 가까이 오자 아내의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조소 어린 표정도 떠 오르고 떠나기 전 내 자전거를 한 번 구경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월미도로 처음 자전거 라이딩을 떠난다는 얘기까지 한 터라 마음을 그러잡고 그냥 완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갈 때는 온전한 체력이라 언덕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바람처럼 내달리는 맛이 그리 좋았건만 올 때는 체력도 떨어지고 엉덩이에 돌덩이를 깔아 놓은 듯 아픔을 참아야 하는 데다 오르는 언덕길은 왜 그리도 많고 가파른지, 기어의 변속은 빨라지고 헛바퀴 도는듯한 발구름은 하염없이 계속되면서 자전거는 제자리에 멈춘 것처럼 나가지를 않는데 그것 참 대단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어찌어찌 제물포를 지나 집가까이 오자 그때까지 아비의 굼벵이 같은 속도에 참고 참으며 앞 뒤에서 호위를 하던 아이들이 "아빠 먼저 가요" 라면서 바람처럼 내 달리는데 그 멋진 뒤태들을 바라보니 내 아이 들이지만 청춘이 그렇게 부러울밖에..." 아! 옛날이여 "라는 말이 저절로 입안에 감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엉덩이의 열기가 홧홧하다. 그러나 비만 가족의 멍에를 벗어 버리자며 자동차 사려고 모은 돈을 모조리 자전거 사는데 투자한 큰 애의 무모한 용기가 고맙고, 항시 아비의 어려움을 마음속에 꿰뚫어 배려를 당연시하는 작은애의 듬직함도 고마운데 늘 세 남자의 뒤치다꺼리를 시원한 웃음으로 감싸 안는 내 아내의 통 큰 성정은 그중 제일이다. 나 오늘 이렇게 불과 왕복 20킬로 미터 가량을 힘들게 다녀왔지만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향한 일보를 내디딘 것으로 내일의 희망을 그린다..

2012. 6. 17

36년 만에 타 본 자전거로 월미도를 다녀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