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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본문

가족이야기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12:25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꽃샘추위가 절정이다. 세상을 삼킬 듯 매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가르릉 거리며, 길가의 마른 낙엽들을 긁어 보아 하늘에 흩뿌려 희롱을 한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낙엽들은 어느새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웅얼대는데, 그 소리가 이제 막 세상에 나서려는 내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부모만의 기우가 아닐까 싶다.

열흘 남짓이면 공익근무가 해제되는 작은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꽃샘추위가 한창인 창밖의 풍경처럼 황량하다. 덩치만 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는 아이는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지난 2년간 옹골지게 이룬 것 없이 태평하게 세월만 흘려보냈다.

본인이야 앞날에 대한 고심을 안 했을까만 아비의 입장이라는 게 인지상정이라 하루빨리 세상의 무서움을 자각하며 인생의 청사진을 그려야 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어찌 내 마음을 읽었는지  바로 어제 단 둘이 앉은 밥상머리에서 자기의 심중을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아빠! 저 복학 안 할라고요.."
첫마디가 충격이다.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어떤 계획이 있느냐 조심스레 물어보자 이참에 다짐을 받아 둘 요량으로 세상 살아 나갈 공부를 하겠다며 조곤조곤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보인다. 아직 단단히 마음을 그러잡은 모양새는 아닌 듯해도 태어나 처음으로 제 인생의 설계를 보여 주니 대견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대학을 나와도 살아가기 팍팍한데 과연 이 아이가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 풍진 세상을 살아 나갈지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큰 아이도 같은 학교엘 다니다 복학을 안 하고 이러구러 자리를 잡는 듯 해 한 시름 놓았건만, 아직은 형의 길을 내켜하지 않는 아비의 마음을 읽고는, 본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믿어 달라길래 도리없이 열심히 해보라는 말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한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지 어미에게는 당분간 비밀을 유지해 달라는 의뭉스러운 말까지 눙치는 여유를 보인다. 어미의 평범하고도 당연한 희망을 꺾으려니 비상한 작전이 필요한 터이다. 이제 나는 아내에게도 말을 하지 못할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며 새삼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름대로 현명한 길을 선택했는지는 아이가 살아가며 느낄 것이지만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생각이다. 아이의 생각을 곱씹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을 요모조모 되짚어 봤는데 그리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비록 넉넉하지 않았어도 긴 시간 무탈하게 지냈고, 고비가 되었던 낭떠러지에서 아내의 깊은 사랑으로 회생하였으며, 아비를 선택을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행복해하기도 하였으니 그것으로 족하였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쓰느냐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게 주어진 매일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쓸까 크고 작은 판단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듯, 작은애는 성인이 된 이후 자기의 인생에 대하여 첫 번째 선택을 하였으니 앞으로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커 나갈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그 답을 사랑이라 하였다. 가족과 주변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평범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런 삶이 괜찮은 삶이고 잘 사는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작은 애의 결정을 환영하고 가족의 사랑으로 감싸 안을 것이다.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2012. 3. 11

얼마 후 작은애가 다시 마음을 돌려 이번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아이가 언제 다시 저런 마음을 먹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내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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