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어머니의 입원 본문

가족이야기

어머니의 입원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01:52

어머니의 입원

그렇게 술을 마시지 말라 해도 황소 심줄 같은 고집으로 약주를 드시더니 기어코 병원신세를 지는 불상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가벼운 일과성의 입원이 아닌 듯싶다. 지속적인 음주로 간 기능이 약화되었고, 기력까지 쇠하여 며칠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여동생의 말이 귓전을 흐른다.

아버지 생전에는 술 한잔 안 드시더니 몇 년 전부터 입에 대기 시작하였는데 발그레 홍조 띤 모습이 보기 좋아 그러려니 했지만 얼마 전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불콰한 모습에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단내를 풀풀 풍기며 "나! 술 안 마셨어"를 입에 달고 대문을 들어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움이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 도가 지나쳐 술에 취해 동네에 쓰러져 계신 어머니를 아이들과 집사람이 모셔 오는 망신스러움에다 큰외삼촌과 연안부두로 식사를 하시다 술에 취해 행방불명이 되어 온 식구를 애태우게 하던 일도 아직 기억에 생생한데, 그도 모자라 행여자로 실려 가기까지 하여 병원에서 모셔 온 것도 그렇고, 신발을 신은채 현관에서부터 벌벌 기어 방으로 향하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모두 노년의 적적함을 술로 의지하고자 함이 크겠지만 추태들이 벌어진 데는 거의 이웃집 여자의 꼬드김이 가장 크다는 것을 어제야 알았다. 물론 그 여자의 탓이 아무리 크다 한 들 이렇듯 몸이 망가질 정도로 중독이 된 것이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다 나의 부덕함과 몸 생각 안 하며 술을 마시는 어머니의 아집으로 인한 귀결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거지를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께 그저 죄스러움에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이제 아이들까지 술 마시는 할머니에 대한 존중감은 이미 스러지고, 귀찮게 여기는 기색이 완연한데 그로 인해 아비로서의 위세 역시 삭풍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꼴이 되어 그 씁쓸함에 자괴감이 들 정도이니 내 처지까지 딱하게 되었다. 이미 동네에는 대낮부터 술 마시며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어머니에 대한 말들이 많고 친하게 지내시던 어르신들께서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니 무엇보다 나나 아내의 처지가 난감하다.

어제 식사도 못하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 때문에 이웃집 여자와 아내 사이에 큰 말다툼이 있던 모양이다. 방귀 뀐 자가 먼저 성을 낸다고 어머니에게 큰돈을 꾸어 가서는 어떻게든 돈을 안 갚으려는 갖은 요사스러움으로 어머니를 현혹하여 둘의 관계가 피붙이보다 나은 것처럼 위세를 떨며 아내에게 훈계를 한 것이 단초가 되었고 아내의 인내심이 폭발하게 된 이면에는 평시 이웃집 여자가 어머니를 꼬여내어 고주망태로 취하게 하는 작태에 부아가 끓고 있던 것이, 술에 취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아내의 흉을 퍼뜨리는 어머니의 어른답지 못한 행동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을 알 수 있겠다.

하지만 모질지 못한 아내가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혈압으로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한참 뒤 작은 애의 간호로 수습을 하고 일어 난 아내는 그동안 어머니로 인해 응어리 진 마음을 남동생에게 터뜨리기까지 하였으니 이미 쉽게 수습될 성질의 사태가 아니게 되었다.

거기다가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러 온 여동생이 아이들에게 푸념을 한 것까지 아내의 심중을 건드려 언젠가는 사소한 말 하나가 뇌관이 되어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내의 노여움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다. 어머니나 평시 어머니를 챙기는 동생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하는 아내에게도 곰살맞게 대해야 아귀가 맞을 터인데 집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자기네 집으로 오란다거나 몰래 밖으로 불러 내 대접을 하는 짓들을 하고 있고, 어머니 역시 그 짓거리에 박자를 맞추며 용돈을 받는 맛에 아내를 무시하고 있으니 어머니 역시 아내에게 좋은 대우를 받기는 힘들게 생겼다.

어느 날 여동생이 집에 들렀다. 마침 야간 근무 끝나고 쉬고 있었는데, 매제란 녀석은 집으로 들어오지도 않은 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동생만 들어와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는데, 어머니께서 하는 말이 가관이 아니다.

"아범아! 이 서방이 밖에 와 있는데 나가서 인사하렴..."

참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말이다. 내 입장을 아예 무시하는 것인지 밖으로 행차하는데 정신이 팔려 무심코 던진 말인지 몰라도 어머니의 태도가 이럴진대 아내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결국 어제 이웃집 여자와 한바탕 한 직후에 아내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좋건 싫건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동생들에게 모시고 살라는 통첩을 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아내의 노여움 서린 결정에 반박을 하지 못하겠다. 어차피 인정도 못 받는 가장의 체모야 던져 버리면 그만인 것을..

동생들은 모른다. 속으로 새길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습들을. 장남에게 시집을 와 그 모두를 보다 듣고 속 끓이던 시간 속에 담긴 아내의 애잔한 모습들은 더더욱 모를 터이다. 이제 아내는 어머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동생들에게 보내고 동생들이 하는 것처럼 가끔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고 용돈도 드리면서 어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나 살고 싶다 하니 말릴 명분도 없다.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 보면 어머니의 진면목과 맞닥뜨리고 그 속에서 속앓이 하던 사람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알 터이다. 아내가 시집온 것처럼 제수 역시 시집 온 남의 식구였으며, 매제 또한 장가 온 남이었다는 사실을 동생들이 깨달아 아내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현명하게 판단하기를 바랄 뿐이다

2011.09.29 12:14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을 기다리며  (1) 2022.12.05
술 한잔 마시면  (1) 2022.12.05
이번 추석  (0) 2022.12.05
5월의 소회(所懷)  (0) 2022.12.04
아내와 아들  (0)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