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봄을 기다리며 본문

가족이야기

봄을 기다리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12:04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온기가 없어 얼른 보일러 조절기로 가보니 여지없이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또 어머니께서 꺼 놓으셨나 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보일러 전원을 꺼 놓으시는 게 요즘 어머니의 일과 중 하나입니다. 덕분에 집안에 온기가 남아나질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근할 때면 아내보다 먼저 나서서 배웅을 하고, 퇴근 무렵이면 대문 소리만 들려도 방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시던 어머니였는데, 요즘에는 미닫이문 여는 것도 귀찮으신지 문안인사를 드릴 때까지 이불을 덮고 눈만 빼꼼하니 내놓은 채 "으~응 왔어?" 라는 가벼운 인사말만 하시고는 T.V. 화면을 응시하며 가만히 누워계십니다.

" 엄니~ 왜 보일러 꺼 놓고 그렇게 계세요 안 추워요?"
" 아니~ 안 추워.. 그냥 꺼져 있어서 그대로 놔둔 거야.."

당신이 전원을 꺼 놓고도 저리 말하십니다. 지난 10월에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치매"라는 병이지요. 아직은 초기 증상이라 심각함을 모르며 지나치고 있지만 이 병은 증세가 서서히 악화되기만 할 뿐 좋은 방향으로는 치료가 안되면서 온 집안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고약한 병입니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일어나 소세를 하고 동네를 산보하시고, 몇몇 아지트와 경로당, 그리고 성당으로 다니시면서 하루를 보내십니다. 하지만 용변 때문에 수시로 집에 오실 때마다 살그머니 보일러를 끄고 나가는 통에 집에 있는 아내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동네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저녁이면 저렇게 꼼짝 않고 T.V를 보다 주무시는 척 불을 끄고는 막걸리 한 잔씩 마시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술 때문에 심신이 피폐해져 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아예 잊으셨는지, 혹시는 마음을 다스리는지 모르겠으나, 한사코 말려도 저리 드시는 것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7년 전에 여읜 아버지를 그리시는 마음이 남아 있을 테고,.. 오래전 돌아가신 무뚝뚝한 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신 남동생(작은 외삼촌)을 그려 하실 것도 같고, 친목회까지 꾸려가며 다정다감하니 지내던 동네의 옛 친구분들이 모두 이곳을 떠나 한 분도 안 남아 적적 하실 테고, 오산의 어릴 적 친구들도 기억에 뚜렷할 텐데 아무 말씀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함께 살고 있는 자식마저 무뚝뚝하니 문안 인사만 드릴뿐 사근한 맛이 아예 없으니 술에 의지하시는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

예로부터 孝에 대한 좋은 말은 헤일 수 없이 많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글은 더 많지요. 하지만 막상 함께 지내다 보면 孝라는 개념을 자꾸 잊어버리곤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부분을 챙기는 것도 효가 될 수 있으나 매일을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감각이 무뎌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연세가 낼모레면 팔순에 들어서는데 막상 제가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다녀 본 게 언제인가 가물가물하네요. 어머니를 심심하게 하는 것도 불효인데 지금까지 그 사실을 잊고 지내고 있었지요.

밖에는 55년 만에 강추위가 문설주를 스치며 으르렁거리고 전깃줄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나는데도 내일은 벌써 입춘이라는군요.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때 맞춰 오는 친구 같은 계절의 순리가 우리를 희망차게 합니다. 이 추위가 지나 아지랑이 하늘거리는 시절이 돌아오면 무료하게 지내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월미공원으로 바닷바람도 쐬고 인천대공원으로 꽃놀이도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매일매일 집 앞에서 꽃처럼 활짝 웃으며 나를 맞아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뵐 수 있을 테지요.. 새삼 봄이 기다려집니다...

2012 - 02 - 03

'가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0) 2022.12.06
하늘은 청명한데, 그래도 바람이 분다  (0) 2022.12.05
술 한잔 마시면  (1) 2022.12.05
어머니의 입원  (0) 2022.12.05
이번 추석  (0) 202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