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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본문

가족이야기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6. 00:09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새벽녘 나지막이 들리는 바스락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쫑긋하게 세워보니 밖에서 바르르 처마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 바람 소리구나."  창밖은 부옇게 밝아 오는데, 아내는 한 손에 리모컨을 그러잡고 새~애액 코를 골며 곤하게 잠들어 있다. 볼륨이 낮춰진 채 꺼지지 않은 T.V에서는 코미디언들이 모여 앉아 연신 키득대고 있다.

병환으로 돌아가신 철원 처 이모부님에게 다녀와 초저녁부터 곤하게 잠든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피부가 깨끗해 결혼하고도 화장을 거의 안 하며 살아온 아내의 얼굴에서 어느새 처녀적 귀여움은 사라지고 아이들 엄마 모습만이 눈앞에 희뜩하니 다가온다. 내년이면 나와 결혼한 지 30년인데, 무심한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을 하며 지내느라 잔 고랑이 파이고 까칠해진 얼굴 모습을 보면서 공연히 콧날이 시큰해진다.

요즘 아내가 잔 부탁을 해오는 일이 잦아졌다. "여보! 빨래 좀 널어 주... 현관 옆에 양파 한 개 가져오고.. 아 참! 생수도 한 병 꺼내와요. 당연한 부탁이라 보통 군소리 없이 움직이지만 어떤 날은 귀찮아서 모른 체하는데, 아들 녀석들까지 그런 아비의 행동거지를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아내의 몸상태나 심기가 조금 불편한 날에 눈치 없이 뺀질거리다 호되게 야단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에도 아내의 심중을 모르고 개개다 나와 작은 녀석이 쌍으로 한 방 먹었다.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는 아내는 부활절을 앞두고 저녁마다 성가 연습을 하러 가는데, 그날은 성당에 가기 전 잠시 동창회 임원 모임이 있었나 보다. 아내 나름대로 집안일과 외출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을 혜량 하고 움직이다 예기치 않던 불청객이 찾아와 시간을 빼앗는 통에, 작은 녀석에게 빨래 좀 널고 쌀 좀 씻어 놓으라 했건만 소통이 잘 안 되었는지 작은 녀석이 야단맞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고, 빈들거리면서 책을 보고 있던 나까지 표적이 되어 그 화살이 옮겨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억울한 생각에 눈치 없이 한 마디 하다 이전의 잘못까지 들춰가며 다다다다 쏘아대는 통에 그저 잘못했노라 백기를 들고 말았다.

올해 아내가 하는 일이 많기는 하다. 구청일도 그렇고, 성가대 활동하는 일도 녹록잖은 데다가 올해에는 동창회 총무의 일을 맡아 (무슨 동창회 모임에 시간이 그리 많이 소모되는지 나는 영 마뜩잖다) 집안일을 꾸려 나가기가 벅찬데, 치매 초기인 어머니마저 아내에게 필요한 집안일을 전혀 돕지 못하는 몸상태여서 혼자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내가 좀 도와주고 위로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찌 도와주는 시늉은 하는데,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언 발에 오줌 눈 격밖에 안 되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을 터이다..

우리 집은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네 식구 모두 바깥일을 하는 처지여서 서로 손에 닿는 일은 함께 챙겨 가며 살아야 마땅하지만 곰살맞기는 아예 글러버린 사내들뿐이라 아내를 대하는데 소홀하기도 하고 서툰 면도 많다. 두 녀석 중에 하나가 딸로 태어났으면 어미를 살뜰히 챙기며 말 벗도 되어 줄텐데...(글쎄~ 지금 하는 모양새로 봐 가지고는 어째?) 그저 쓸데없는 생각뿐이고, 결국 아내의 눈에 비치는 우리 집 사내들은 집안일에 거의 도움되지 않는 존재들일밖에...

오래전 아침 출근길에 한 동안 마주치던 노부부의 모습이 떠 오른다. 아침 산책을 하는 듯, 거동이 불편한 아내의 손을 잡고 손 시릴까 연신 손을 비벼주고 귀마개도 고쳐주면서 내 앞을 지나던 할아버지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 은연중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함께 의지하며 행복한 아침 산책을 하는 부부가 되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 겨울이 지나며 어느 날부터 그네들의 모습이 안 보였지만, 그때 서로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노부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껏 그 노부부를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보면 ,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히 애틋한 듯한데, 단지 그 마음이 평상시에는 심장 속 깊이 묻혀 있어 전혀 티가 안 나고 있다. 늘 묻혀 있는 마음이 굳기 전에 자주 꺼내 애정을 표현하면서 살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행동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서 여전히 아내에게 야단도 맞고 핀잔을 들어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아주 간혹 오늘 새벽녘처럼 곤히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볼 때에야 묻혀 있는 마음이 슬며시 밖으로 솟아 나와 애틋함을 툭툭 건드리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제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 보게 된다. 오늘은 문득 나도 참 바보 같은 짓을 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냥 저 노부부처럼 살갑게 아끼며 살아가면 될 것을 왜 이리 무심하게 살아 가는지..

이거 안 되겠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덜 남은 이 내 인생이 아깝구나.. 이제는 매일 새벽녘 잠자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을 덥혀 하루하루를 살갑게 살아야겠다. 작심삼일이나 안 되었으면...

201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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