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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만남 본문
만남 / 윤태림
1941년 어느 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도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이를 막기 위해 관계도 없는 10명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아사餓死의 형을 선고했다. 바로 그때이다. 한 사람의 폴란드인이 앞으로 나와 가에프스키라는 처자가 있는 남자를 대신하여 형을 받겠다고 했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조용히 "나는 가톨릭의 신부"라 했다. 이 요청은 받아들어져 가에프스키는 살아 남았고 신부는 처형되었다.
콜베 신부였다.
오랜 동안의 주림(餓)이라는 싸움 끝에 8월 14일 독약의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두었으니 그때 그의 나이가 47세. 그 후 30년이 지난 1971년 지금은 백발이 다 된 가에프스키는 로마의 성 페트로 대성당 제단 앞에 나아가 의식용 잔을 들어 법왕 바오로 6세 앞에 올렸다. 이 식전에서 콜베 신부는 복자福者의 열에 끼이게 되었고 신도들로부터는 성자로서 숭앙을 받았다.콜베 신부의 순교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 이상의 더 큰 사랑은 없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조그마한 자기 행복에 만족하려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것만 같다. 조용히 죽음앞에 선 콜베 신부에게 공포와 고뇌가 없었을 리도 없다. 오랜 주림과의 싸움 과정에서 일초일초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죽음도 삶과 같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순교의 죽음은 삶의 집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단편소설에 <토니오 크뢰겔Tonio kröger>이라는 것이 있다.
학생 때 흥미도 없는 강의를 겉으로만 듣는 척하면서 노트 밑에 가리우고서 일본어 번역으로 읽던 때의 흥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춘기에 접어든 세 소년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한 평범한 사랑의 이야기지만 토마스 만의 자서전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예술과 삶이란 대립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고민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살아서는 안 된다. 창작 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을 즐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새롭게 인식하고 창조하려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화합해야 하는 생활인과는 별개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을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그를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의 문제이다. 대량 학살의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해 얼마나 인간이란 존재가 잔인한 것인가, 또 전통적인 가치가 하루아침 사이에 몰락하는가, 그리고 이에 따르는 방황, 고독 또 인간 내부에 숨어 있는 어두운 면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자 인간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이상주의라는 것도 허무맹랑하게 무너졌다. 실존주의 사상이 나오게 된 동기가 여기에 있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느끼는 것이라고 하고 인간에게는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욕구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철학한다는 것은 사변思辨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고 인생의 문제에 열정적으로 뛰어가는 것이고 인생이란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 生을 사는 것이라 했다.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 바득바득 애를 쓴다. 되지도 않을 것을 허우적거린다.불로불사약을 구한 진시왕을 비웃으면서도 자신은 예외인 것같이 믿고 싶다.
이곳 만남은 너와 나와의 관계 즉 네가 나를 만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진정한 생은 만남이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도 만남이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 스스로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인생의 의미를 캐내는 정열적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에 굴복 하지 않고 그의 견해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만남'이다. 학생 하나하나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것이 즉 만남이다.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이란 단 한 번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요새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몸이 다하도록 불태운 사랑이 한 번 타 버렸으면 그만이지 또 어떻게 다시 불꽃을 튀길 수 있을는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전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 번 다시 옮겨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 사랑이 열매를 맺었던 못 맺었던 간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불살라 버려 완전연소를 시킬 수 있던 그것 자체가 소중 할 따름이다.
일본의 어느 문인은 70이 지난 오늘날에도 삿갓을 쓰고 탁발을 1년에 꼭 40일간 하고 다닌단다. 그런 사실을 자기 아내도 모른단다.
진정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굶어도 보고 다리 밑에서 자 보기도 하고 온갖 멸시 모욕도 받아야 하고 인간 밑창의 생활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인지 모르나 진정한 삶과 죽음과 고독과 고뇌를 알기 위해서라면 이것도 하나의 만남이다.
참된 기독교인이란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으로서의 행동과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느냐를 걱정하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개인은 출발점인 동시에 궁극적인 목표이다. 사회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나'다. 내가 충실할 때 열등감, 시기, 질투, 과소평가, 남의 괴로움에 쾌감을 느끼는 잔인성, 남이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 자기의 무력함을 느끼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강하게 인식됨으로서 비로소 사회는 공동체의 인식이 강해지고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남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남을 돕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때로는 내 목숨까지 아깝지 않게 바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포애, 형제애, 휴머니티도 진정한 나에게서 출발한다.
[금주의 성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8월 14일)
https://news.cpbc.co.kr/article/111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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