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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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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는이야기

商道

김현관- 그루터기 2024. 7. 6. 00:14

商道

선비들이 지키는 사도(士道)가 있듯이 상인들이 지키는 상도(商道)가 있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장사를 천대했기에 상도의 전통이 일찍 끊겨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지금에 되살리고 싶고 되살려도 될 뿐 아니라 되살려야만 하는 상도가 비일비재하다.

엊그제 서울 한복판의 인사동 거리에서는 전통상가인 육의전(六矣廛)을 재현하고 등짐·봇짐지고 팔도의 시장을 떠돌던 보부상(褓負商) 놀이등 전통 상업문화가 재현되었다. 가시적인 외형은 재현되지만 그에 담겨 있는 불가사의 정신은 재현시킬 수도 볼 수도 없다.

이를테면 육의전에 오리계(五里戒)라는 상도가 있었다. 갓을 파는 갓전(笠廛)이 있으면 그 갓전 사방 5리 안에는 갓 파는 전을 낼 수도 없으려니와 행상도 해서는 안 되었다. 장사가 잘 되면 너도 나도 뒤따라 시장을 잠식하여 서로 망하거나 이웃에 같은 업종의 가게를 내어 원조싸움으로 서로 망하는 오늘날 같은 상도 타락은 있을 수가 없었다.

'종로의 점포는 상품을 진열해 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숨겨놓고 파는, 세상에서 이상한 점포들이다' 라고 써 남긴 것은 한말에 일본의 불의를 만국에 고발했던 미국 언론인 헐버트다. 옛 점포에서는 단골위주의 신용거래를 하기에 진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육의전의 장부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녹심첩(錄心帖)곧 단골 명단이었다. 단골 손님의 3, 5대 가계가 족보처럼 적혀 있고 외가, 처가의 가계까지 적혀 있어 신용거래의 혈연확대가 일목요연하다.

따라서 책장들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장책(長冊)이라고도 했다. 자손대대로 물려 번창의 밑천으로 삼는 이 녹심첩은 신주단지 옆에 높이 모셔놓고 불이 나면 비상반출 제1호였다. 상운을 비는 관운장 제사 때 들고 가서 제단에 올려놓는 신물이기도 했다.

오늘날 상업의 고객관리 허점을 찌르는 전통 상도가 아닐 수 없다. 등짐·봇짐 지고 팔도를 누비는 보부상은 자신의 단골구역이 정해져 있어 남의 지역을 지나면서는 방망이 하나 엿 한 가래 팔지 않았다. 낯선 보부상끼리 만나면 요즈음 운동경기 끝에 유니폼 바꿔 입듯 웃저고리를 맞바꿔 입음으로써 형제지의를 다지는 것이 관례였다.

한 도가의 동업자는 호형호제로 의사혈연을 맺고 친상을 당하면 3년 동안 술·담배를 삼가고 새 옷을 입지 않는 등의 심상(心)을 입었다. 인사동의 전통상가 재현과 더불어 기억하고 싶은 전통상도들이다.  <1997.10.1>

출처 이규태 코너 1996-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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