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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흐르는 강물처럼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2. 19:03

흐르는 강물처럼

한밤중입니다. 사위[四圍]는 조용하고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 명료하게 밤을 자각시켜주고 있네요. 보던 책을 접으며 무심코 눈앞에 놓여 있는 탁상용 달력을 봤습니다. 은갈색의 하늘 아래 실루엣으로 처리된 부자간의 낚시하는 모습이 점처럼 흩어진 날짜 옆에 기다랗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러니하네요. 11월 한 달이 다 지나간 지금에서야 저 모습이 눈에 들어오다니, 작은 그림에서 익숙함이 떠 올라 뒷면을 돌려 보자 온전한 사진 한 장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과"노을 지는 황금빛 강가에서 시간의 이야기, 일생의 이야기가 익어갑니다. 늘 한결같은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라는 짧은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가 상영된지도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몬태나 계곡에서 플라잉 낚시를 하던 풋풋한 브래드 피트의 젊은 모습이 투영돼 옵니다. 맑은 빛과 낚싯줄을 날리는 장면에서 잠시 정적인 고요에 빠지기도 했었죠 자연 속에서 삶의 소박한 원리를 느끼며 순응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고 원하지 않는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랑한다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보여 주었던 가족영화였지요. 공교롭게 어제 백업용 외장하드에서 오래전에 다운로드하여 두고 보지 않았던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영화 "퓨리"를 보았습니다. 냉혹하면서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 든 서슴지 않는 군인의 모습과 이제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내는 총무를 맡고 있던 사진반에서 회장이 그만 두기를 종용하면서부터 심사가 복잡합니다. 믿음에 대한 배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원인을 제공한 아내에게도 온전히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친목 도모하며 즐기는 모임에서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 잡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회장이라는 분의 포용력 없는 마음씨도 그런 인사를 회장으로 앉힌 그 모임의 일부 선배들의 안목에도 문제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떠나 동창들 모임이고 아내가 막내의 위치에 있기에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평회원으로 사진을 즐기라고 언질을 주었으니 이제 아내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믿고 두둔하면서 고언을 아끼지 않는 사진반 선배들의 따스한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달력 속에 써진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흘러가기를 바란다는 단어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대사가 새삼스럽게 읊조려집니다.

올 한 해는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쓰다가 멈춘 글들이 감춰진 파일 속에 쌓여 갑니다. 간혹 마무리하지 못한 글들을 챙겨 보면서 이 글들을 온전하게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습니다 책장 옆으로 새책들이 쌓여 가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읽지 못한 책들이 늘어 갑니다. 도서관에 가 본지도 두 달도 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글도 못 쓰고 책을 덜 읽는 것에 대해 애꿎은 스마트 폰 탓을 해 보는데 일전 중사모 모임에서 만난 최 희영 작가가 많은 작가들이 창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블로그나 밴드와 카톡 등의 메신저를 접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 지금 이 시점에서 또렷하니 되새겨집니다. 사실 지속적인 생각을 단절시키는 스마트폰의 알림음을 무음으로 설정해 놨어도 수시로 소식을 확인하게 하는 중독성을 가진 SNS를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사용에 대한 빈도수라든지 어플 제거라든지 아무튼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해 봐야겠습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작년보다 움직임이 줄면서 게을러진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옛말이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심신을 다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결정은 해야겠네요. 글을 쓰고 못 쓰고 보다 건강을 잃게 되면 모두를 잃게 되니 정말 단단하게 마음을 그러잡아야겠습니다.

이제 한 해 동안 친밀하게 지내면서 통화도 하고 만남도 갖던 분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돈독하게 옭아 매기 위한 송년회가 시작됩니다. 가족과 친구와 선 후배들, 그리고 사회적인 만남을 지속시키기 위한 그런 모임들이 계속될 것입니다. 만나며 부딪는 건배사가 시작되면서 우리들의 우정과 삶이 돈독해지며, 마음과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마다 지난 내 삶 속에서 잊거나 잠재되었던 기억의 편린들도 챙기고, 가족의 행복을 아우르며, 흐르는 강물처럼 무리 없이 그렇게 올 한 해를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2015.11.26   -그루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