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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간이 지난 호의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2. 21:53

유통기간이 지난 호의

오늘은 입국 대상자들이 평소보다 매우 적어 근무 시작부터 오후까지 편안하게 심사가 진행되었는데. 마지막 휴게시간이 되기 얼마 전 입국 게이트 쪽 복도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리길래 혹시나 하고 항공편을 찾아보았더니 역시 중화항공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잠시 후 대련에서 온 중국인 승객들이 입국 심사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세상의 많은 나라 중 심사대 앞에서 제일 크게 떠드는 이들의 으뜸이 중국인인데 그네들은 워낙 큰소리로 얘기를 하며 여러 명이 동시에 자기들 주장을 쉬지 않고 말하는 데다 목청이 기름지고 억양이 독특하여 불과 몇 명이 얘기를 하여도 심사 구역 전체가 시끌거리면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게 한다. 그다음 시끄러운 사람들이 자랑스럽게도 관광을 다녀오는 대한민국의 아저씨 아줌마들인데 정말 저들이 밖에 나가서도 저렇게 떠든다면 내가 시끄럽게 떠드는 중국인을 얕보듯 외국인들 역시 한국 사람들을 싸잡아 얕볼 것이라 생각하니 그 추함의 끝을 표현할 서술어를 찾기 힘들 지경이겠다.

아무튼 그나마 백여 명이 채 안되는 승객들이라 심사 줄이 금세 줄어드는 중에 무엇인가를 오물거리며 내 앞을 지나던 젊은 중국 처자가 멈춰 서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간식용 중국 소시지 두 봉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며 맛있으니 먹으란다. 본인도 먹어 가면서 꺼낸 봉지를 스스럼없이 내게 건네주길래 얼결에 고맙다고 받아 들기는 했는데, 간식용 소시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번죽 좋게 받아 들기도 남우세스러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점심을 일찍 먹은 터라 꽤나 출출하여 휴게시간이 되면 무어라도 챙겨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꼴을 처자에게 들켜 버린 것 같아 괜스레 무안해졌다.

그렇지만 생면부지의 외국 남자에게 선뜻 먹을 것을 건네주는 성의가 고마워 직원들과 나눠 먹으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잠시 뒤 휴게가 시작되어 봉투를 개봉하다 보니 유통기한이 보름이나 지나고 있었다.

" , 이런~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오물오물 맛있게 먹어 가며 선물해 준 처자는 이미 공항 밖으로 나가 제 갈 길을 갔으니 되돌려 줄 수도 없겠고, 그렇다고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 줄 수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먹을 수도 없어 결국 처자의 호의만 받아들이고 말았는데 이것 참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얘기를 잠시 주위에 알리며 그저 농담 삼아 예쁜 아가씨라 용서를 해야겠다고 했더니 예쁜 아가씨에게 선택받아 좋겠다거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거나 심지어 소시지도 예쁘게 생겼다며 빈정대는 소리까지 들었는데, 이곳은 워낙에 많은 젊고 예쁜 처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적어도 신데렐라 정도는 되어야 예쁘다고 명함을 내밀 정도가 되는 곳임을 전제해 두어야겠다.

본시 음식을 나눌 마음이 있을 때는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신선하고 맛나고 좋은 것을 나누어야 감사의 말도 듣고 선물의 의미도 있는 법인데 자칫 잘못된 음식을 나누다 상대가 탈이라도 나면 호의가 악의가 될 수도 있어 음식 나눔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오래전 큰 처제가 지방으로 이사 갈 적에 아는 이삿짐센터에 부탁을 하였더니 이삿짐센터 주인을 잘 알던 아내가 정성스레 김밥을 싸 주었으나 마침 매우 더운 날이라 간식시간이 되기도 전에 벌써 김밥이 쉬어 먹지도 못하고 내가 미안할까 몰래 버려 의도치 않게 배를 곯게 한 큰 실례를 범하였던 바, 음식 나눔의 중함을 아는 나로서는 그 처자의 호의가 고맙기는 하지만 유통기간이 지난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이름 모를 중국 아가씨, 베푼 호의에 대해 정말 고맙지만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함이 매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
国女孩,我不知道这个名字,但做了这么多亏了商誉不接受弧感到很遗憾
“Zhōngguó nǚhái, wǒ bù zhīdào zhège míngzì, dàn zuòle zhème duōkuīle shāng yùbùù bù jiēshòu hú gǎndào hěn yíhàn.

2016.9.12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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