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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가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2. 21:37

출근길의 가을

세탁소집 김씨네 바깥 화단에 활짝 핀 분꽃과 채송화가 하늘거리며 출근길을 반긴다. 그동안 훅한 더위에 가려 눈에 띄지 않던 모습들이다. 무성이네 집 앞에 핀 천사초는 자취를 감추고 도톰한 꽈리 열매의 자태가 단아하다. 모퉁이에 요란스레 피어나던 장미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빈 가시덩굴만이 지난 영화를 추억하고 있는 듯 아직도 졸고 있다.

에어컨을 안 켜도 더운 기운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의 선선함을 느끼며 출근하였다. 차 안으로 헤집고 들어오는 제법 시원한 바람 덕분에 이제야 제대로 가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느낌이 피부에 와닿고 있다. 지독스레 더운 지난여름 내내 꺼지지 않던 폭염경보와 함께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열대야로 인해,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최고조로 치솟은 인심에 심심찮은 오보로 인하여 동네북이 되었던 기상청이, 처서라는 계절의 변화를 내치지 않아 그나마 제대로 된 예보를 하였으니 그동안 누진제 폭탄에 에어컨 스위치 한번 제대로 누르질 못하며 전전긍긍하던 시민들의 눌려 있던 미소가 모처럼 파란 하늘로 시원스레 흩어지고 있다.

길가의 가로수에도 어느새 노란빛의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동인천 역 앞의 프라타나스 이파리가 다그닥 거리며 인도 위를 달려가던 모습이 눈에 떠올랐다. 이미 자연스레 계절의 흐름을 눈앞에 봬 주었는데도 매일 내리쬐던 35도 이상의 강렬한 태양 열기 속에 찌들었던 심신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쳐 버렸나 보다.

어느새 공항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동편 주차장을 따라 심어 놓은 느티나무에도 은근하게 단풍이 들기 시작한 모습을 보인다, 역시 그간 무심코 지나치며 감지하지 못하던 모습들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는데 내년이면 한 갑자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는데도 아직 계절의 변화를 알아 채기에는 조금 더 연륜을 쌓아야 할까 보다.

오늘따라 주차장에 빈자리를 표시하는 녹색 등이 두 개나 켜져 있다. 날이 좋아 운도 따라 좋은 출근길이다. 터미널로 가는 순환 셔틀버스에는 3 4일 여행객이 가득 찼고, 출국장 안에도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인파들이 여기저기 똬리 줄로 서있는가 하면 갈 곳을 찾아 바쁜 걸음들을 옮기고 있다. 세상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곳의 풍경은 늘 풍요롭고 활기차 보인다.

어제 입국심사를 받으러 오는 승객들 중에 마침 리우에서 돌아오는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단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멋진 아우라를 보이며 심사대로 들어오던 손 연재 양도 있었다. 반가움에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자 감사하다는 짤막한 답인사를 하며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이 지나가는 올여름 더위의 마지막 선물인 듯 싶어 혼자 빙긋 웃어 보았다.

그리고,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공항 고속도로의 하늘이 잔뜩 흐려 있다." ! 이 정도의 구름이면 곧 소나기가 올 만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잠시 후 영종대교를 벗어나 한두 방을 내리던 빗방울이 주물공단에 들어서기 무섭게 후드드득 차창 밖을 두들기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 기세가 마치 지난여름의 광기에 들떠 있던 폭염을 잠재우며 지금부터 기울이라는 선포를 하는 맹수의 포효와 같이 세상을 울리고 있다.

" 그래, 진즉에 이랬어야지 이제야 가을이로다.! " 

2016. 8.25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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