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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연애편지(戀愛便紙) 본문

사람들의 사는이야기

연애편지(戀愛便紙)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31. 11:57

연애편지(戀愛便紙)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8-11-26 22:22:54

밤새워 써내려간 사랑고백 어느덧 시나브로 명필문장
연애편지(戀愛便紙)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 사랑의 편지를 연애편지(戀愛便紙)라 부른다. 짧게는 연서(戀書)라고도 한다. 연애편지라는 말은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말이 아니다. 우리 말로는 정서(情書)다. 중국에서는 남녀 사이 즉, 정인(情人)들 사이의 그런 편지를 두고, 동심결(同心結)이라 불러 왔다. 중국인들답게 꽤나 풍월(風月)스럽고 또, 멋스럽다. 남녀 두 마음을 한데 묶는다는 뜻이다. 우리 쪽은 사랑에 빠진 두 남녀를 서로 애인(愛人)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큰 일 날 소리다. 기혼부부 사이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들은 우리 뜻의 애인은 정인이라 부르고 있다. 문제는 그 연애편지다. 그 공헌이 한 때 너무나 컸다. 참으로 놀라웠다. 그 연애편지 때문에 한 때 우리 젊은이들의 학문의 넓이나 깊이가 너무나 넓고도 깊었다. 무슨 말인지 통 짐작이 가지를 않는가? 그렇다면, 말해 보자.

30년 전쯤에는 그랬다. 그 무렵 얼굴에 여드름이 더덕더덕 나던 고등학교 학생치고 연애편지를 써 보지 않았던 남학생은 드물었다.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통과의례라 할 만큼 모두가 그랬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참으로 낯이 선 이야기다. '촌스럽게 무슨 연애편지는?'이라고 고개를 갸웃 할 것이다.

요즘은 첨단 전자시대다. 집집마다 전화나 컴퓨터가 있어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스피드화되어 있다. 여드름투성이 고등학생이 학교를 오다가다 만나는 여학생이나, 옆 집 여학생이 마음에 쏙 들면 바로 전화통을 들거나 컴퓨터 채팅으로 사랑을 고백할 수가 있다. 참으로 간단, 편리하게 되었다. 머리를 써서 글을 쓸 기회가 조금도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지식이 얕을뿐더러 글씨마저 개발소발, 형편이 없다. 또, 그 프러포즈의 대답이란 것도 즉각적이다. 옛날처럼 몇 일이고 몇 달을 가슴을 졸이면서 기다릴 것도 없다. 그러니 성격도 느긋함이라고는 없고 언제나 불을 본 메뚜기처럼 조급하다.

자, 그렇다면 옛날 고등학생들은 어떻게 했던가? 연애편지를 한 장 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참으로 장엄하고도 힘든 일이었다. 또, 인내심도 대단했다. 신약 마가복음 속에 나오는 말씀 그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지극정성(至極精誠) 편지를 써 내려 갔다. 물론 그것도 만리장성(萬里長城)길이다. 그래야 정성이 더 있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종이마저 흔하지 않았다. 그 귀한 노트 장에다 밤을 꼬박 지새면서 편지를 썼다. 물론 사전이나 참고서들까지 곁에 놓고는 뒤지기면서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모두를 그 편지 속에 쏟아 넣었다. 편지내용이 유식해야 약발이 잘 받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글씨도 반듯하게 쓰려고 애썼음은 또, 물론이다. 그렇게 써 놓았지만 영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찢어 버리고 다시 쓴다. 온 방에 구겨진 편지 조각들로 가득 찬다. 물론 밤샘이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피 나는 노력을 하다가 보면, 그의 실력이 자신도 모르던 사이 엄청나게 늘어 있다. 글씨도 벌써 명필이 되어 있다. 그 무렵, 무슨 시험에서나 여학생들은 아는 것 많고 글 잘 쓰던 그런 남학생들의 상대가 되지를 않았다.

요즘은 어떤가? 남학생들한테는 옛날 그런 눈물겹던 자습(自習)이 없다. 실력이 떨어져 여학생들에게 판판 지고 있다. 의심스러운가? 그렇다면 요즘 신문지상에 발표되고 있는 그 많은 고시들의 결과를 한 번 보시라.

박철규 ·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