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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아버지와 함께하던 날들 본문

내이야기

아버지와 함께하던 날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9. 21:28

아버지와 함께하던 날들


# 1
해가 뉘엿뉘엿 지고, 골목길 모퉁이에 서있는 전봇대의 삿갓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하얀 불빛이 눈에 익을 즈음에 저 멀리서 자전거의 검은 실루엣이 다가옵니다. 집 앞에서 서성이던 어린아이는 긴 기다림의 수고에서 벗어나 “ 아버지~~ “ 하고 크게 부르며 힘차게 달려갑니다. 듬직한 아버지의 품에 안기려 달려가던 어린아이는 아버지보다 자전거의 핸들에서 건들거리는 “답십리 통닭”이라 쓰인 누런 봉투에 먼저 눈이 갑니다. 아버지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지만,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어린 아들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종일 골목길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종알거리는 아들을 보며 껄껄 웃음보를 터뜨립니다. 아이의 생일날입니다


# 2
전농 시장 가는 길에 쌍굴다리 못 미쳐 동대문 의원이 있습니다. 동대문 의원은 아이의 걸음으로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동대문 의원 옆에는 미닫이 유리창에 빨강 페인트로 생과자라고 쓰인 허름한 가게가 있는데 아이가 엄마와 함께 시장 가는 길에 늘 밖에서 침만 흘리며 구경만 하던 곳입니다. 오늘 ~ 아이는 아버지 주위를 돌며 생과자 가게로 걸음걸이를 재촉합니다. 그곳에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갈색 밤과자와 하얀색 땅콩모양의 생과자가 유리상자 속에 가득 담겨있고, 부채꼴 모양의 전병 과자도 있습니다. 가운데에 파래가 띠 둘려있는 전병 과자의 고소한 맛은 일품입니다. 오꼬시의 파삭거리는 느낌과 아다닥거리며 씹을수록 달콤한 맛이 나는 고구마 과자도 아이를 유혹하는데 한몫합니다. 입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녹아버리는 분홍색, 옥색, 하얀색의 조화가 멋들어진 부드러운 과자는 아이를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인지 아이의 조그만 가슴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술과 밥과 담배 외에는 좋아하는 음식이 별로 없는 아버지께서도 즐겨하시던 간식거리중 하나가 생과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월급날입니다.

# 3
언젠가 비 오는 날! 아버지 공장엘 갔습니다. 아버지의 섬세한 손놀림에 따라 뱅뱅 돌아가는 선반의 물림쇠에서 볼품없는 쇳덩이가 반짝이는 막대가 되는 신기한 모습과, 로봇처럼 얼굴에 보안경을 쓴 인수 아저씨가 지지직거리며 파란 불꽃을 내는 용접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깡깡 거리고 윙윙대는 울림들이 어느 순간 빗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커다란 공장 안에 그윽한 공명이 일어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어린 가슴속에 심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비 오는 날이면 그날의 그 소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함께 기름때에 절은 모자 채양 밑에서 나를 보며 빙긋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아버지는 기계수리공이셨습니다.

# 4
시간이 조금 흘렀습니다. 오늘따라 부엌에서 구수한 냄새가 많이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부엌에서 당최 나오실 생각을 안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찬바람에 서걱대는 라일락 나무 밑에서 마른 비질을 하시는데 왠지 어두운 표정입니다. 점심 무렵이 되어 수원 사시는 고모님이 석준이와 희주와 함께 인천에 오셨습니다. 석준이는 일곱 살이고 희주는 다섯 살인데 우리 집에 처음 왔습니다. 고모부께서는 일이 바쁘신지 오시질 않았습니다. 석준이의 바가지 머리가 눈에 설고 아버지품에 안긴 희주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립니다. 동생들은 그저 평상시와 다른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식사 후에 가족들 모두 “자유공원”에 갔습니다. 인천으로 이사 온 지 삼 년이 다 되었는데 내가 서울로 통학을 하느라 가족들 모두가 처음 가보는 “자유공원”이었습니다. 맥아더 원수의 동상 밑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얼마 후 고모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그날이 이 세상에 아버지의 한 분밖에 안 계신 혈육과 이별하는 날이었습니다

# 5
“동방극장”안입니다. 화면에는 눈 부신 빛이 가득합니다.”돈 콜레오네”로 분한 “말론 브란도“의 육중한 몸이 심장마비로 서서히 스러지는 모습과 손녀딸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클로즈-업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 의자에 앉아 패밀리의 인사를 받고 있는 “ 알 ‒ 파치노“의 젊은 시절의 앳된 모습이 보이며 “Speak softly love”의 비장함이 극장 안을 울립니다. “대부”는 청소년 입장 불가 영화였습니다. 개봉 당시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도 그 영화가 보고 싶어 아버지를 꼬드겨 함께 보았는데 아버지께서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에도 같이 오자고 하셨는데, 그 영화가 아버지와 함께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아이들과는 아직 한 번도 영화관엘 가보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가 본지도 꽤 되었으니 아마 아이들과는 앞으로도 영 못 가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6
제대한 날 밤입니다. 이제 머리도 커지고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것 같은 아들의 모습에 흡족해하시는 아버지는 그날따라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습니다., 어머니에게 술상을 봐 오라시며 석간신문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이는데, 시험일까지는 채 한 달도 안 남은 경기도 시행 5급을 류 지방행정공무원 모집공고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기계일을 하셔서인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근무하는 아들을 바라보길 원하셨나 봅니다. 우리 집의 앨범에는 아버지께서 양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거의 없고, 간혹 친지들의 결혼식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매우 어색해 보였습니다. 다행스럽게 몇 개월 뒤 하인천 관할의 동사무소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뒤! 자유공원 석정루 밑의 한국회관에서 벌어진 아들의 혼인식장에서 너털웃음을 지으며 하객을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양복을 입으신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 7
어느 날! 평생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으셨던 분께서 몸이 불편하다며 제물포의 의원에 다녀오시더니 큰 병원엘 가야 한다고 채비를 하셨습니다. 자꾸 혈색이 안 좋아지고 밭은기침을 하시던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구월동 길병원”에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퉁퉁부은 얼굴로 나지막이 폐암 말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듬해 봄! 암투병으로 욕창에 피폐해진 모습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바라는 마지막 소원을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어머니에게 호강 한 번 못 시켜 줘서 미안하다며,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벌이라 하셨습니다. 잔치 내 꼬장꼬장하게 앉아 옅은 미소를 짓던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자꾸 얼굴을 뒤로 돌리셨습니다. 잔치를 치르고 두 달 뒤에 아버지께서는 홀로 “마전리 공원”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2010 ‒ 05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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