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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인천역 뒷골목 / 뱀골목 그리고 새우젓 골목 본문

내이야기

인천역 뒷골목 / 뱀골목 그리고 새우젓 골목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30. 22:40

인천역 뒷골목 / 뱀 골목 그리고 새우젓 골목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목발 짚은 사내가 시기에 안 맞은 고의춤을 추스르며 담배 한 대 피워 문다. 광장 한편에 볼품없이 놓여있는 붉은 꽃 한 다발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사내와,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쓸쓸히 졸고 있는 驛舍의 풍경이 그대로 어우러진다. 바로 인천역의 모습이다. 시작과, 오래된 낡음과, 어색함 그리고 끄트머리를 모두 품고 한때 누리던 영화로운 추억들을 되새기 듯 한가로이 앉아있다.

인천역의 뒤편에는 한 시절 인천 수산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어시장이 선창을 끼고 70년 초까지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어시장이 연안부두로 떠난 뒤 그 자리에는 " 경기 물산"이라는 냉동창고 시설이 자리 잡았고, 한참 뒤에  "동일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시장에서의 입지가 아직 하인천 쪽에 살아 있어 출퇴근하며 바다를 어우르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 港과 浦⼝ 船艙(부두) 각기 부르는 명칭은 다르고 의미도 다르지만 바다를 끼고 생활하며 사는 사람들 에게는 삶의 터전임을 인정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창고가 들어서기 전 엉성한 빈 터 움막에 살던 주정뱅이 강 씨도 그중 하나인데, 날 선 새벽에 경매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늙은 총각이다. 우연한 기회로 면[⾯]을 통하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생선토막을 날라 막소주를 안기는 통에 큰 곤욕을 치렀지만 그 인연이 나중 "심청 교육대"를 다녀온 강 씨의 억울한 하소연의 행패를 막아주는 유일한 소통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동일 아파트"를 좌우로 "뱀과 새우젓"이라는 묘한 명칭의 두 골목이 자리 잡고 있다. 아파트 정문을 바라보며 오른쪽 골목 이름이 "뱀 골목"이다. 좁디좁은 골목이 직선을 이루지 않고 삐뚜름 하니 자리 잡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히 뱀의 기어가는 형상을 볼 수 있다 하여 "뱀 골목"이라 불렀지만, 막상 그곳에 거처하는 이들은 이 명칭을 매우 싫어한다. 아마 나라도 그럴 것이다. 한동안 이곳에는 늙은 장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모양인데 업무상 그곳에 드나들며 마지막 장미의 실체를 보고 생활의 궁핍과 그 아픔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으며 나의 누이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유독 선명하게 기억난다.

80년 어느 비 오는 날! 전달할 서류가 있어 김 씨를 찾아갔다. 빈대떡을 부쳐 혼자 막걸리를 마시던 김 씨는 처음 본 내게 술친구가 찾아왔다며 반가이 맞고는 막걸리를 가득 따른 양재기를 건네더니, 묻지도 않은 자신의 살아온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해방둥이인 김 씨는 동란 때 어머니와 단 둘이 해주에서 인천으로 내려와 살았는데 , 열 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어렵게 살다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지만 늘 마음속에는 고향을 그리며 살고 있었다 한다. 그날 넋두리에 취하고 술에 취해 풀어젖힌 남색 저고리 밖으로 비죽하니 튕겨져 나온 그녀의 젖무덤 위로, 살아오며 수 없는 배반과 고통을 받은 한 여인네의 너무도 슬픈 처연한 인생살이가 이 뱀 골목에 녹아 떨어져 있음을 보았다.

" 동일 아파트" 왼쪽으로는 "새우젓 골목" 이 있다. 당시에도 여기저기 집 앞에 주욱 늘어서 있는 새우젓 드럼통을 볼 수 있었다. 새우젓으로 호황을 보았던 시절이 있음을 보여 주던 현장이었다. 이곳은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살림살이는 거의 고만고만하지만,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도시 속의 시골 같은 분위기가 넘쳐 나는 곳이었다. 짭짤한 소금과 새우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향긋하게 삭은 새우젓의 냄새가 동네에 늘 흐르고 있어 골목에 들어 서면 바닷속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듯한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거주하며 각자의 오롯한 삶들을 풀어 가고 있다.

내가 느꼈던 당시의 삶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내가 알며 지내던 시절보다 많이 좋아졌음을 보여주기는 하나 아직도 주거환경으로는 열악한 면을 보이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결국 저 안에서 삶을 꾸려오던, 꾸렸던,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 하나하나가 어느 날 유니콘 같은 굴삭기의 뿔에 스러질 수도 있으리라..

" 새우젓 골목 " 바로 입구에는 얼큰하고 시원함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매우 맛있는 "오징어 찌개"를 내오는 식당이 하나 있다. 부두 노동자들의 함바식 식당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입소문이 나고부터 끼니때에 맞춰 가서는 얻어먹기 힘든 식당이 되었다. 오늘 그곳으로 해장하러 다녀오는 길에 선연히 눈에 들어오는 두 골목을 보며 남 다른 소회를 짚어 보고, 쇠락한 동네에 살고 있는 동질감을 느껴보는 마음 한쪽에 헛헛한 바람이 들어온다...

2010 - 03 - 28 

62년 인천역

하인천 어시장과 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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