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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봄 앓이 본문
봄 앓이
봄 탓이다...
내 탓은 아니라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몰염치로 치부해 둬야겠다. 아니 몰염치도 있지만 봄 탓도 다분하다. 올 해에는 유난스레 겨울이라는 친구가 봄과 실랑이를 심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포근하고 다정한 눈에 대한 마음까지 바꿔놓는 등 굉장한 심술을 보여 주었다. 낼모레면 청명이고 한식인데도 일교차가 심해, 저녁 무렵이면 바깥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결국에 가서는 겨울이라는 친구의 마지막 심술에 저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만 된 통 이런저런 병에 걸리고 있다. 춥고 긴 시간을 참고 버티며 보낸 사람들에 대한 얌통머리 없는 행동거지다
아내는 요즘도 바쁘다. 낮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단직 (선감단)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밤에는 부활절 성가 연습하느라 악보를 끼고 산다. 선감단의 일이 밖으로 나도는 일이라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데 그를 소홀히 한 데다, 성가대의 단장이라는 양반이 현장감을 살린다며, 난방도 안 한 휑뎅그렁한 성당에서 연습을 하여, 낮 밤 없이 몸을 보하지 못해 급기야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아내의 콜록거림은 아들과 내게 옮겨져 우리 집은 지금 감기 공화국이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든 봄을 직무유기로 고발할 생각이 여실하다.
감기도 병이다. 병에는 저항력이 약해서 생기는 병과, 외부의 사고와, 천형이랄 수 있는 타고난 병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뭐라 해도 병중의 병은 마음의 병이다, 울화병, 분노, 절망, 의기소침 우울증 등에 빠지게 되면 정신적인 피폐와 그로 인한 삶의 무력증에 빠지게 되니 말이다.
이즈음 자가진단 해 보니, 마음의 병중에 ⼼弱 의 병에 걸려있는 듯하다. 몸에 득 될 것 없는 상대방의 권유에 혹하는 게 다반사인 의지박약이요, 예전 같지 않게 감성이 넘쳐흘러 사소한 감정의 흐름에도 머리와 상관없는 눈물이 흐르는 주책에다가, 상대의 배려를 너무 쉽게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몰염치에, 다스리고자 하던 치기와 오만이 아직도 몸뚱이 한 구석에 좌정하고 자리 잡고 있는 모양새가 딱 그런 증세다. 이런 병에는 정신을 되돌려주는 자애로운 스승이나 마음을 다잡아주는 좋은 동무가 옆에 있어 치도곤과 훈계와 다정함으로 다스려 주어야 할 텐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 들 먼 곳에 떨어져 있어 자주 접하지 못함에 그 상심이 크다.
이 역시 봄 탓이다.,,,
나는 스무 살 봄부터 이 시기만 되면 공연스레 가슴이 답답해지고 콧속에 단내가 나며 몸이 나른 해지는 봄 앓이 체질이다. 그동안은 동무들과 어울리고 가슴 따스한 선배들이 나의 봄맞이를 함께 해주어 별반 그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곤 했지만, 몇 해전부터는 마음 앓이가 도를 더 하더니 내 마음의 반석이던 동석 형이 하늘 마중하고 나서부터 부쩍 심해졌다. 게다가 의지하던 봉환이마저 소식을 놓고 있어 올 봄맞이 동행이 더욱 그리워지는 중에 순상이의 헤아리는 마음의 다감함에 커다란 위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마는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나약함의 표현인 나의 봄맞이를 보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스무 살부터 시작되었던 봄맞이의 가슴앓이와,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는 시련의 찌꺼기들과 함께 지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의 때들을 정리해야 될 시기가 되었음을 알았고, 그 모두를 추억이라는 봄 보자기에 담아 소중하게 보관하는 봄 다스림의 마음으로 나를 키우는 계기로 삼아야 됨을 깨달았다. 그나마 너무 늦지 않은 깨달음이 다행스러울 뿐이지마는 기나긴 실행의 어려움을 어찌할까..
2010 - 03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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