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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어느 국가대표 부부의 이야기 본문
어느 국가대표 부부의 이야기
며칠 새 보슬비가 내리며 개나리와 진달래의 꽃잎을 가만히 쓰다듬어 투명한 고운 자태를 가꾸게 하고, 잎을 앙다물던 목련의 눈부시게 하얀 속내를 부끄럽게 내비치게 하더니, 환한 햇살은 공항동로의 분홍빛 벚꽃들을 어루만져 활짝 피워놓으며, 살랑이는 봄바람에게 꽃비를 한 줌씩 흩뿌려 이 봄을 축복하라 한다.
이런 화사한 봄의 정취를 호사스럽게 느끼던 날 오후! 부부가 함께 나를 형님이라 칭하는 [?] 후배를 만났다. 배다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펜싱을 가르치고 있는 후배인데 공교롭게도 전국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 가지고 오는 날 만나게 되어 그 기쁨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후배는 87년부터 내리 3년간을 펜싱국가대표로 활약을 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다 10년 넘게 맡았던 구청 펜싱 감독직을 사퇴한 이후 지금의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로는 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선수들을 육성하느라 보이지 않는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보느라 그랬는지 요 근래 아주 호성적을 보이고 있어 바라보는 내 마음도 가벼운 중에 기분 좋은 소식을 들으며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아내도 국가 대표로 활약하다 지도자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친 후 은퇴한 뒤에도 한국 여자 펜싱계의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 과연 부창부수라 할 수 있겠다.
이제 50줄에 들어서는 후배는 성격이 과묵하나 불같은 성격을 갖고 의리를 중요시하며 천상 운동선수가 제격이다. 얄팍한 속셈은 할 줄 몰라 젊은 시절에는 의로운 혈기로 파출소의 나무 의자에도 앉아보고 지금도 지인들에게 간간 손해를 보며 살지만 허허대며 모른 척 넘어가는 배포 큰 그런 사내다운면이 좋아 그와 지금껏 호형호제하며 교우하고 있다.
만나자마자 "형님!" 하며 와락 끌어안는 그 아내의 쾌활한 인사는 언제 받아도 유쾌하다. 모처럼 본 그네들과 즐겁게 얘기하는 중에 언뜻언뜻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그녀의 태도가 기이하여 후배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시간이 갈수록 귀가 안 들리는 난청으로 상대의 입술을 보며 대화를 해야 한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 사실을 티 하나 안내며 의연한 웃음을 짓는 그녀의 마음씀이 고맙다. 그래도 치료가 된다니 다행이지만 수술비용이 만만치 않아 살아가는데 돈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하지만 이 날! 이들 부부에게서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혀 느끼질 못했다. 오히려 예전보다 인상이 더욱 편해지고 종종 남편을 사랑스러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서 넉넉한 여유를 느꼈고. 후배 역시 무뚝뚝 하긴 해도 다정함이 묻어 나오는 걸진 목소리로 아내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물씬 느끼게 하면서 어려움 가운데서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맑은 심성만을 보여 주었다.
물론 이들 부부에게도 당연히 삶이 주는 부담감이야 있겠지마는, 가만가만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니 자식과 선수들에게 쏟는 블랙홀 같은 애정의 깊이가 눈에 보이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후배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챙기며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서 자신들이 아끼며 평생을 지켜 온 펜싱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네들의 집에는 늘 사람들이 넘친다. 이웃들과 친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음은 그들의 인간적인 따스함을 알 수 있게 하고, 아름다운 얼굴 표정에서 풍요로우며 깊이 있는 삶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목민심서"를 가슴에 품어 스스로 절제할 줄 알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이를 배려하며 나눔을 일상의 지표로 삼은 이들 부부의 소금과 양초와 같은 삶이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은 진정 살만한 가치가 있는 행복한 곳이리라. 오늘! 그네들을 봄꽃과 같은 아름다운 국가대표 부부라 일컬어 나를 비춰보는 거울로 삼고자 한다.
2010 ‒ 04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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