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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추억과의 만남 본문

내이야기

추억과의 만남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30. 23:23

추억과의 만남

친구는 지난 모든 세월의 공간까지도 가슴으로 함께 느낍니다. 무심히 지나던 긴 세월의 느낌도 금세 알아채는 마음의 블랙홀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친구라 하고 동무라 합니다.

칠팔십 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이미지의 그리스 여자 가수 "나나-무스꾸리"가 부른 " try to remember"를 기억할 것이다. 요즈음에는 홍콩배우 "여명" 이 리바이벌해서 부른 곡이 종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나에게는 "나나-무스꾸리"의 감성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그녀의 노래를 듣던 즈음 내게 남수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아주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빛이 보이지 않던 나의 학창 시절에 한 줄기 광명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그에게는 젊음의 강한 자존심이 살아있고, 유머가 깃든 따스한 감성과, 친구를 위해 가당찮은 싸움까지 벌이는 돈독한 의리까지 갖춘 자랑스러운 친구이다.

그와 함께 지내던 몇 년 동안 차갑던 내 영혼이 훈훈해지고 문학과 음악에 대한 감성도 차츰 풍성해졌으며 매일 아침 아차산 정상을 정복하면서 미래의 동량이 되자는 호연지기를 키워갔다. 하지만 그와의 연결고리가 되었던 교회를 떠나게 되면서 서울과 인천이라는 지리적인 여건과 부대끼는 현실적인 삶으로 인해 차츰 만남이 뜸해지다가 친구가 외국에서 정착해 사업을 하는 도중에 아예 연락이 끊어진 후 늘 가슴 한 구석에 친구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만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잃어버린 친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시절 산동네 교회에서 함께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과의 인연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는데 단순히 추억을 그리며 써 놓았던 글이 헤어진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는 소중한 인연의 끈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니 기적이었다. 함께 교회에 다니던 진성이의 사촌동생이 우연히 내 글을 보고 이미 4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남수를 연결시켜 준 것이었다.

* 수화기에 흐르는 기쁨과 떨림의 목소리에서 근 이십 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껑충 뛰어넘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친구의      음성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뒤, 만나기로 한 동인천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무슨 말을 꺼낼까 고민하던 내 모습은 마치 연인을 기다리는 심정에 다름 아니었다. 이윽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친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역시 나를 바라보며, 안경 너머로 친근하게 눈웃음 짓는 모습과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어깨를 으쓱하는 그만의 변하지 않는 추임새로 나를 반긴다. 오랜 시간이 주는 어색함도 없었고 굳게 움켜 쥔 두 손에서는 그리움과 우정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울림은 오래된 옛 친구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진솔한 감정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생맥주 한잔 마시며 학창 시절의 에피소드와 헤어져 있던 시간이 주는 공간의 여백을 채웠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월미도와 차이나타운을 활보하며 오래전 친구들과의 추억과 가족 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지만 반나절의 시간은 그 간의 우리들의 회포를 나누기에 너무 짧았다.

그동안 사업실패와 건강을 잃어 힘들던 시절에도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을 친구를 추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는 함께 있지 않아도 늘 힘과 용기를 주는 친구였기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그가 귀국한 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 심정에 변화가 일어나 세상을 넓게 보기도 하고, 포용과 이해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동동거리던 조바심도 사라졌다. 모두가 친구 간에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주는 우정의 영감이 작용한 탓이라 믿고 싶다.

이제는 언제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되찾은 희열이 온 감성을 휘젓는다. 깊게 잠들었던 추억의 일기장에서 기적처럼 걸어 나온 내 소중한 친구는 더 이상 애잔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한없이 기쁘고, 죽음이 우정을 가를 때까지 옆에서 만지며 느낄 수 있는 현실 속의 내 친구라서 고맙다.

오늘, 아차산 기슭에서 친구와 함께 살모사를 잡고 즐거워하던 위험천만한 치기 어린 옛 생각을 생각하고 거울 속에서 혼자 낄낄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모처럼 기분 좋은 행복에 잠겨 있다.

2010 - 07 - 23 

서울지구 그리스도의 교회 체육대회 참가 기념사진 [등촌동] 아래 가운데가 남수 오른쪽 옆이 진복이 그 옆 교모 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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