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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사라진 인천의 극장들 본문

내이야기

사라진 인천의 극장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1. 01:10

사라진 인천의 극장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 봐도 사라져 버린 인천의 극장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복합 영화관이 생기면서 불과 10년도 안돼 인천에 있던 그 많은 영화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겨우 애관극장만이 살아 남아 홀로 고군 분투하고 있다. 혹시 또 다른 극장이 있는지는 모른다. 난 극장에 대해 연구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천에 어떤 극장이 있었는지 정도는 스스로 알고 있어야 될 것 같아서 기억력이 없어지기 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인천 사람이 아니다. 중학 2 년때인 1971년 봄 방학 즈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인천의 영화관람료가 서울보다 엄청 싸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자체도 서울에서 개봉하기 전의 영화들이다. 당시에는 서울 위성도시에서(수원, 의정부, 안양 등지) 먼저 개봉을 하고, 판세를 보아 서울 개봉관에서 상영할지 말지를 정했던 것 같다. 학생요금은 어른의 반 값인데 개봉 영화 한편당 관람료가 50원으로 기억 된다

 그 시절에 주로 다니던 영화관은 지금의 신포동 외환은행 뒤 호프집자리의 “동방극장” 과 내동에 있는 “애관극장” 배다리 헌책방 골목 안에 덩그마니 자리 잡고 있던 “ 문화극장, (나중 피카디리로 상호 변경하여 운영하다 폐관했다) 그리고 중앙시장의 주변에 있던 “미림극장” 과 양키시장 초입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오성극장” 정도였다. 동방극장 바로 앞에 아주 옛날의 "표관"자리(지금의 외환은행)에 있던 “키네마극장”은 내가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없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동인천 쪽에 "인영 극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난 그 실체를 보지 못했다.

 "동방극장"의 옛 주인이셨던 분이 바로 진 대제 전 정통부 장관의 아버님이라는 소문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냥 가십거리로 넘겨도 무방한 내용이지만, 소소한 정보 하나라도 나중에는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애관극장의 주인이셨던 돌아가신 탁 선생님의 모습도 생각나고 애관극장 스크린 절단 사건도 아직 뇌리에 선하다.

 위의 극장들은 주로 외화 개봉관들로 학교 친구들과 많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극장들이다. 집은 인천이지만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녀 동창들은 토요일만 되면 영화구경 가자고 난리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와서 , 영화 보고 짜장면 한 그릇 사 먹고 돌아가도, 서울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금액보다 적었고 덤으로 기차 여행과 인천 구경까지 하게 되니 개봉 영화가 맘에 들라치면 서로 가자고 아우성을 칠 정도였다 학교가 용산에 있어 기차표는 동창들 집의 방향에 따라 영등포나 서울역으로 끊고 제물포역 개구멍이 워낙 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출입이 가능한 터라 영화 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서울에서 끊어 타고 내려온 기차표를 내고 내리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걸 써도 되나 모르겠다)

 그 외에 인천체육회관 옆에 “도원 극장”이 있었고 숭의동 “장안 뷔페 웨딩홀” 자리가 “장안 극장”이었다. 또 신흥 로터리에서 연안부두 나가는길 좌측에 “ 세계극장 “ 이 있었고 신흥로타리에서 숭의로터리 나 가는 길에는 최근까지 “자유극장”이 있었는데 그곳도 얼마 전 없어지고 말았다. 용현시장 쪽에 있던 “용현 극장”도 빼놓을 순 없다(솔직히 이 극장은 난 구경한 적 없다. 인천에 오래 살고 있는 친구가 알려줬다. 다른 카페를 찾아보니 용현시장 안에 한일극장이라고 있었다고 한다 용현이건 한일이건 시장 근방에 극장이 있던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또 동인천 화평 철교 옆 인천시장 맞은편에 “인천 극장”이 있었으며, 송림동 로터리에서 인천제철 들어가는 초입 좌측에 “ 현대극장 ”이 있었다. 이 극장들은 거의 재개봉관들로 동시 상영이 주를 이루는 극장들이다. 조금 이후에 생긴 극장들로는 주안 4거리 못 미처 중앙극장(당초 주안, 아폴로 극장이었나?) 이 있었고, 한동안" 애관극장"과 쌍벽을 이루던" 동인천 길병원 " 옆의 “인형극장 ”이 있었으며, 현재 인천에서 매우 유명한 사진작가 김 보섭 씨가 한때 운영하던 동인천 제일은행 5층인가에 “동인천 극장”이 있었다.

 이 외에 부평은 당시 인천 외적인 도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어 택시 기사들도 부평으로 가자고 하면 꼭 시외요금 타령을 하던 터라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부평역전에 “대한극장”과 부평시장 쪽에 "부평 극장"이 있는 것만 알고 있다. "학산문화원" 유제환 원장님의 말에 의하면, 백마장 쪽에 "백마 극장"도 있었다고 한다. 참 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주안 의" 시민회관 "에서도 종종 아이들 만화 영화도 상영하고 계몽영화나 홍보영화들을 상영하곤 했으니, 반쯤은 영화관으로 봐줘도 무방 하겠다.

 인성여고 체육관 자리에도 "시민관"이라는 극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내가 인천으로 이사 오기 전의 극장이라 존재에 대한 확인 정도로 대신한다. 한 때 영화배우 이 순재 씨가 국회의원 할 때 소극장의 활성화를 부르짖으며 법을 새로 발의하여 소극장들이 한창 득세를 한 적이 있었으나, 다들 아시다시피 당초 이 순재 씨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 필름 상영이 아닌 비디오테이프 상영의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그런 허섭스레기의 극장들만 난립하였다가 지금은 이곳저곳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그런 소극장들이 있다

이 글을 쓰며 인천의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고 연구하시는 분들과 인천 사람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조금 더 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누구든 다 아는 사실이지만, 영화산업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 영상문화는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예술로 관광산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는 매력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체계적인 학문적 접근과 총체적 지원이 필요한 것이 그 때문이다. 속이 깊은 인프라가 있어야 다양한 발전방향이 제시될 터인즉 모든 인천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그중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전국 최초의 극장이라는 "애관극장"의 위상을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도록 함이 필요한 당면 문제인 듯하다.

 극장 얘기만 하면 아직도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동방극장"에서 보았던 “대부” 의 잔혹함 과 “에덴의 동쪽”에서의 ‘’ 제임스 딘“의 눈빛 " 애관극장"에서 본 ”선생님에게 사랑을 “ 에서의 루루의 감성적인 목소리 와, 속칭 삼류극장인" 세계 극장" 에서본 ”벤허“의 지축을 흔드는 마차 바퀴의 울림이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옛 극장들은 꿈과 낭만을 주었는데 지금의 복합관들은 우리의 청춘들을 얼마나 잘 가꾸어 줄까? 지금은 극장 자체가 주는 그런 낭만을 찾기는 힘들어졌다 그 점이 아쉽다. 2006.05.31 22:47 (끝)

 

# 인천 초기의 영화관에 대한 자료는 "인천시사"나"격동한 세기 인천이야기(상)권 인천서 뜬 공연예술의 선구자. (하)권" "척박한 무대... 격정과 애환의 여로 " 에서 찾아볼 수 있다.

alzade57@hanmail.net

 

60년대 영화관을 접은 아버지의 뜻이 안타까워 동인천 극장을 개관했던 김 보섭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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