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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빨간 자전거 본문
빨간 자전거
정말이지 그 빨간 자전거는 그해 겨울 내가 절실하게 원하던 단 하나의 물건이었다 자나 깨나 눈앞에 삼삼하게 돌아다니던 빨간 자전거!. 수원 큰 외삼촌댁에 다녀오고부터 그렇듯 졸라대고 칭얼거려도, 자전거는 위험하다는 말씀으로 초지일관하시는 어머니는 요지부동 그 자체였다.
6학년 겨울방학이 끝 날 무렵 어머니께서 수원 큰 외삼촌댁에 볼일이 있으시다며 함께 가자고 하여 따라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대문 옆에 버려지듯 놓여있던 빨간 흥아 자전거는 어린 내 눈에 보기에도 약간 큰 듯했지만, 그런대로 타고 놀만하여 당시 세류동 쪽에 사시던 큰 외삼촌댁 근처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녔다.
자전거의 소유욕에 불을 지핀 것은 돌아오는 길에 스치듯 지나가며 말씀하신 큰 외숙모의 " 현관이가 가져가서 타면 되겠다"는 말씀이었는데, 위험하다며 도리질 한 어머니 때문에 그 자전거를 놓아두고 돌아서던 발길이 너무도 안타까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전거 사 달라고 졸라대던 단초가 된 것이다.
거의 한 달 여를 졸라대던 끝에 중학교 입학식 약 2주전! 내 성화를 못 이긴 아버지의 승낙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내키지 않아 하시면서 큰 외삼촌댁에 전화를 하셨고, 결국 삼촌이나 관수형의 관심 밖에 있던 그 빨간 흥아 자전거는 졸업과 입학 선물을 빙자하여, 나의 품에 오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청량리역에 가서 그 자전거를 찾아오던 날! 수화물로 부쳐온 빨간 자전거를 본 나는 즐거운 함성을 지르고 그 자전거를 타고 오며 자전거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전부 내 것 같아 마음은 마냥 하늘로 떠오르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곧 나와 그 빨간 자전거는 골목의 명물로 떠 오르게 되었다. 백 오십여 집이 넘는 동네에 짐 자전거 외에 승용 자전거는 내 것 딱 한 대 뿐이었으니, 골목 아이들의 관심과 선망의 대상이 된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무렵 지금의 신답초교 앞으로 널찍하게 4차선 도로가 닦여지고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약 1.5킬로 정도의 뻥 뚫린 도로에 차도 안 다니는 아스팔트 길이 휑하니 뚫려 있으니 얼마나 좋았던지, 그 긴 길을 열댓 번씩 왕복하며 하루해를 보냈다
당시 세살박이 막내 남동생은 어머니께서 부업 하는데 매우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으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생을 자전거에 태워 밖으로 나와 놀아 주는 게 부업일을 도와주는 폭이 되어 나와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져, 무시로 방석으로 자리를 만들어 막내를 태워 돌아다니곤 했다.
하루는 평소와 다름없이 막내를 태워 큰 도로로 들어서던 순간 경계석 턱을 내려서는데, 허술하게 매어진 방석 끈으로 인해 막내가 뱅글 돌며 아스팔트에 꽂혀 버린 일이 생겨 버렸다. 왼쪽 이마가 풀빵처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도, 막내는 신기하게도 울지 않고, 외려 어머니한테 혼날까 걱정이 된 내가 더 울먹인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우리 막냇동생과 얼굴을 맞대고 있을라치면, 몰래 이마를 쳐다보곤 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는 나만 아는 비밀이다.
하지만 빨간 자전거와의 인연은 너무 짧았고, 자전거는 위험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진리였다. 빨간 자전거와 헤어지게된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자전거를 끌고 큰길로 나와 공연한 객기로 핸들에서 손을 떼고 갓 길 쪽으로 실룩거리며 타고 가던 중, 새로 난 길이라 거의 통행량이 없던 그 길에서 별안간 “빵빵” 거리며 휑하니 지나가던 자동차의 서슬에 그만 핸들을 놓치며 때마침 앞 쪽에 걸어가던 동네 아저씨를 치어 버린 사건이 터져 버렸다.
운도 없지, 바로 뒤에서 순찰 중이던 순경에게 목도되어 아저씨는 병원으로, 나는 파출소로 끌려갔다. 다행하게도 아버지와 동네 술친구셨던 아저씨가 별로 다치질 않아 나를 데리러 오신 어머니와 함께 무사히 풀려 나오긴 했지만, 경계석에 쓸어 박힌 내 빨간 자전거는 제 형상을 찾지 못한 채 고물장수 아저씨에게 팔려버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 나의 빨간 자전거! 고교 졸업 후 부평으로 통근하려고 샀던 검정 무광택 삼광 경기용 자전거를 소유해 보고는 아직까지 난 자전거를 가져본 적이 없다 ( 2006.10.3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