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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선 희 이 야 기 본문
선 희 이 야 기
친구와의 등산 약속으로 타고 가던 새벽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전날의 과음으로 속이 쓰리고 머리도 지끈거리길래 추운 날씨에도 창문을 열어젖히며 '이러려면 무엇하러 등산을 가나?'라고 자문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데, 버스가 멈추고 아주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올라탄다.
마침내 옆자리에 걸쳐 앉은 아주머니의 물건들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까만 비닐봉지와 포개 들고 있던 체크무늬의 랜드로버 쇼핑백이 보였다. 간혹 길거리에서 무심하게 마주치던 백이었는데 그날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백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한 친구의 까르르 웃는 하얀 얼굴이 스멀스멀 시야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름은 지 선희! 이십 대 초반 성가대 시절에 만난 친구였다. 웃음을 지을 때 볼 우물이 움푹 패어 귀여움이 피어오르던 동갑내기 그녀는, 집이 같은 방면이어서 성가 연습이 끝나면 줄곧 동행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모 은행 경동 지점에 근무하던 그녀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나와는 이성을 느낄 충분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그냥 절친한 친구 사이로만 머물고 있었다. 선남선녀가 몇 년을 친근하게 지내면서 어찌 연애 감정을 못 느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도시 모를 일이다.
선희는 자기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소개해준 관계로 그네들과도 종종 함께 어울리기도 했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못 느꼈다. 외환은행 다니던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얼굴을 가진 영희는 결혼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고, 통통하며 건강미를 자랑하던 미연이도 사무실 근처에서 양품점을 하여 퇴근길에 종종 들러 차 한잔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던 그런 사이였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무덤덤하게 지내던 어느 해 가을쯤 사무실로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다. 저녁에 만나자면서.. 퇴근 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나더니 내동에 있는 랜드로바 매장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남자에게 줄 선물인데 어느 걸 고를지 몰라 물어본다 하여 하나 골라 보여 주었더니 뜬금없이 내 것이란다. 봉급을 탄 김에 내 생일 선물로 사주는 거라고.. 때는 못 맞추었지만 생일 축하한다면서 까르르 웃던 그녀의 모습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예뻐 보였는지..
이후로 서로 선물을 주고받은 기억은 없는 걸로 기억되는 바 그날 선희는 나를 남자로 보아서였을까? 아님 그냥 단순히 친구로서 생일 선물로 주었을까 하는 것이 이제야 의문점으로 떠오른다. 그 신발은 십 년을 넘게 아껴 신다가 석바위로 이사 가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내 인생에서 여자 친구에게 받은 최초의 선물이었는데..
선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우연하게 “백석 천주교 공원묘지”의 할머니 묘에서 두 계단 밑에 그녀의 아버지 묘가 있어 한식이나, 추석이면 빠짐없이 그녀를 떠 올리곤 한다. 어느 해 추석인가 한번 성묫길에 마주쳐 잠시 수다 떨 기회도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못 마주치고 지금까지도 못 만났다.
어느 날! 선희로부터 아주 난감한 부탁을 받았다. 자기 언니 결혼식에 내가 축가를 불러야 한다며 부탁을 하여, 기겁을 하고 거절하였건만, 막무가내로 우격다짐하며 조르는 통에 마지못해 승낙한 나는 큰 걱정으로 집 뒤 공원에 올라 꽤 많은 연습을 한 기억이 난다. 절두산 성당에서 치른 그녀의 언니 혼배미사에서, “평화의 주”를 축가로 부르던 나는 그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성당이 큰 건지 목청이 작은 것인지, 어휴... 동행했던 선배들이 그 정도면 잘 부른 거라고 치켜세워서 조금 안심은 되었지만 지금도 그녀의 언니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용서를 빌고 싶은 심정이다.
선희는 남자단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시원한 이목구비에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이 아주 매력적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심성과 자주 웃는 얼굴이 인기의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곰형이 선희를 좋아하는 티를 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심통이 난 걸 보면 그녀를 이성으로 보는 마음이 있기는 한 것 같기도 하다.
신발을 선물 받은 해의 초 겨울 어느 날! 그날 역시 저녁을 먹자는 약속을 했으나, 서로의 퇴근시간이 2시간 넘게 차이가 나 남은 시간 동안 그 시절의 술친구와 사무실 옆 모주 집으로 향한 게 실수였다. 모주 두 양푼을 비우고 내킨 걸음에 소주도 2병을 나눠 마시고는 얼근한 취기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정신은 말짱하였으나, 몸은 이미 취한 데다가 분위기 잡는다고 그 해 새로 나왔다는 마주앙을 주문한 것이 화근이었다. 건배를 하다 힘 조절이 안되어 잔이 깨어지고, 바꿔 받은 잔도 테이블에 놓으며 힘이 많이 들어가 잔의 목이 잘려 나가는 불상사 끝에 그럭저럭 저녁을 다 먹고 문을 나서다 유난히 좁은 '유지 경양식집'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순간 그녀의 그 큰 눈이 더욱 왕방울만 해지며 놀라던 모습에 내가 더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이게 웬일인가! 몸뚱어리가 멀쩡하고 옷도 별로 구겨진 곳도 없고 깨끗하여 서로 한참을 웃은 기억이 있지만, 그게 어디 웃을 일이던가!
그렇게 실수도 웃어주고 추억거리도 주며, 설익은 농담도 아주 재미있게 받아주던 선희는 결혼과 함께 은행을 그만둔 뒤로는 한 번도 못 만나 보았다. 꽤 오래전 궁금한 마음에 혹시나 하고 미연에게 물어보았으나, 전화도 안 오고 가게에 한 번 발길도 안 한다며 나쁜 계집이라고 투덜대는 모양새가 결혼과 함께 세상의 연을 모두 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고 싶어도 만나 보질 못하는 추억 속의 친구가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통문하면 찾아볼 수야 있겠지만, 어디 남의 처자가 된 지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친구라도 남정네가 찾을 일은 아니다 싶어 추억으로만 두고 있던 중, 새벽 버스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랜드로버 쇼핑백으로 인해 선희라는 오래된 친구의 존재를 다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즐거웠던 시절을 되새겨 보게 하였다. 그루터기 김 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