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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이 형 이야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15. 22:11

 

 

동석이 형 이야기

형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얼룩소였다. 얼굴 한쪽에 있는 붉은 반점 때문에 자연스럽게 ‘송아지’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 독특한 외모에 경계심을 느끼지만, 형의 넓은 마음을 알게 되면 선한 눈망울에 푹 빠지게 된다.

송림3동 부동 사무소에서 형을 처음 만났을 때, 잠깐의 어색함을 지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성가대원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금세 어색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 후로 형은 친형과 다름없는 존재로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형과의 만남은 곧 술과의 만남이었다. 성가대원들은 모두 엄청난 애주가들이었기에 성가대에 입단하는 것은 형을 포함한 주당들과의 술자리를 의미했다. 어느 해인가 이작도로 하기 수양회를 갔을 때, 배가 선착장에 도착해 짐을 내리는데 짐의 반 이상이 술 상자였다. 이를 본 동네 아저씨가 “술장사 하러 오셨는가?”라고 말한 것은 정말 걸작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를 고급 술집에 데려가 술 마시는 법과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술은 안주를 제대로 먹어야 취하지 않는다며 그때까지 못 먹었던 보신탕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사람도 형이었다. 아닌 밤중에 기수 형님 댁으로 쳐들어가 맥주 마시기 내기를 부추기며 호연지기까지 일깨워 준 고마운 형이다. 한 번 정한 술집은 계속 찾는 우직함 덕분에 스탠드바 17번 코너 정양은 형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며 고마워하기도 했다. 형은 술집에서 대우받는 방법까지 알려준 고마운 분이다.

형은 ‘가라사대’ 게임의 진수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후반, 일요일 혼배미사가 끝나고 석바위 수도사 옆 지금의 중앙공원이 된 딸기밭으로 놀러 가곤 했는데, 딸기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형의 현란한 언어 구사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곤 했다. 그때 그의 진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형의 진면목은 넓은 사교력과 친화력에 있다.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 사귀는 방법이 남달라서인지 인천 성당의 원로부터 다른 동네 성당 사람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상갓집에 가면 함께 이야기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한다. 이는 덕이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잔잔한 그레고리안 성가, 합창곡, 민요, 클래식 테이프 등을 한 주머니씩 챙겨가는 형 덕분에 여행에는 늘 음악이 흘렀다. 어느 해 여름 피서에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갔을 때, 형은 혼자 석유와 솜뭉치, 철사를 준비해 불꽃놀이를 펼쳤고, 아이들의 환호와 웃음으로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형은 참 준비를 잘하시는 분이다.

몇 년 전, 큰 교통사고로 한참 동안 병원에 누워 있던 형은 퇴원 후 근처의 청량산과 문학산을 자주 올랐다. 나도 몇 번 따라가 본 뒤로는 지금은 안 오르고 있지만, 형은 꾸준히 산을 오르고 있다. 집 근처 문학경기장 주변으로 산책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가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해야 하는 인사라는 것을 요즘 알게 되었다.

이젠 지쳐서 말을 안 하지만, 한때는 형에게 결혼을 종용한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중매를 서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요지부동으로 결혼을 거절하는 형의 마음이 돌아서기만을 바랄 뿐이다. 형이 결혼하면 형수가 해준 안주에 술 한잔 걸치는 게 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꿈이 그냥 꿈으로 끝나버릴 것 같다. 부모님들은 예전에 돌아가셔서 하늘에서나마 형의 결혼을 보고 싶어 하실 텐데 참 안타깝다.

형의 고향은 모도이다. 연말이면 기수 형과 국진 형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모도로 새해맞이를 간다. 강굴도 따먹고 바닷바람도 쐬고, 철망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도 마시며 하룻밤을 지내고 일출을 보고 오면, 한 해의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질 것 같은데, 아마 내년부터는 당분간 일출을 못 보게 될 것 같다. 기수 형이 필라델피아로 떠나고, 국진 형과 나는 껄끄러운 일로 당분간은 못 볼 것 같아서 아주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일은 기수 형이 참 박력 있게 잘 추진하곤 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반 백수인 동석 형! 하지만 아직도 술을 잘 산다. 형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인 것 같다. 아무튼 우리 동석 형에게 아름다운 마음씨 고운 형수님을 맞게 하는 일만 남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멋지고 착한 형수님을 어디서 찾을까? 요즘 들어 형을 만나본 지 오래되었다. 스케줄 근무한다는 핑계로 연락을 못 하고, 서로 통하는 마음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근 두 달은 족히 된 것 같다.

형! 미안하우! 오늘 한잔 할까요?

형과니이야기/내이야기들  2006-05-31 22: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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