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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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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티피 ‒ 쵸코볼과 도라지 그리고 신앙촌 캬라멜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 12:57

티피 ‒ 쵸코볼과 도라지 그리고 신앙촌 캬라멜

화폐개혁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일 원짜리 동전 하나면 아이스- 께끼 2개를 사 먹을 수 있었다. 엉성한 파란색 나무통에 " 氷 " 자를 적어놓고 어깨에 메고 다니며 "아이스- 께끼 1원에 두 개 "를 외치며 다니던 형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환과 원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었는데 내 손에 십 환짜리(일원) 동전이 쥐어지면, 동전의 푸른 녹이 손에 묻어 나올 때까지 꽉 쥐고 놓지를 않아 동네 어른들이 "저 놈 크면 돈 좀 만지겠다"며 부모님께 농담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수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만 원짜리 한 장 쉬이 쓰지 못하는 처지를 보면 돈이라는 게 움켜쥐기만 한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닌 듯싶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서, 어머니께서도 동네 아낙들과 모여 늘 부업을 하셨다. 종이봉투 붙이기, 옷 솔기 따기 등을 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중 오래 하셨던 게 도라지 다듬기였다. 밭에서 막 캐온 도라지 껍질을 벗기고 채를 치는 일인데, 어스름 새벽녘 골목 어귀에 트럭이 오면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가 커다란 빨간 고무 대야에 도라지를 한 가득씩 들고 와 삼삼오오 모여 하루 온종일 씨름들을 했지만 워낙 양이 많아 저녁 늦게까지 전봇대 아래 켜진 야경 불 아래서 깔깔대며 작업하는 게 다반사였다
.
수년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집집마다 손이 비는 식구들이 으레 매달리고, 꼬맹이들까지도 한몫씩 거드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동네 풍경이 되어 버렸다. 비록 궁핍함이야 잊고 싶어도 어려움을 함께 즐기며 나누던 그 시절의 조그만 행복의 정경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한 장면이다. 하지만 일의 힘듦에 비해 노임은 매우 박하여 그저 반찬값에 약간의 가욋돈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다른 부업보다는 수입이 조금 나은 듯하고 저울질하는 양반의 마음 씀씀이 덕에 한 주먹씩 장에 내다 팔아 뒷 돈을 챙기며 반찬거리도 신경 안 쓰는 재미로 다들 구시렁대면서도 손을 놓질 않고 일감을 조금이라도 더 달라며 차에 매달리는 모습들을 되새겨 보니 참으로 사는 게 피곤했던 나날들이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 파하기 무섭게 도라지 껍질을 벗기고, 앙증맞은 도루코 칼로 채 치는 일을 거드는 게 자연스러운 하루 일과가 되었지만, 놀기 좋아할 어린 나이라 종종 꾀도 부리며 부러 친구네 다녀온답시고 느지막이 집에 돌아오곤 했어도,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운 맘에 한 번도 싫은 말씀을 안 하셨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어린 마음이 하루하루 옹골져 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와 동갑인 먼 친척 아이가 집으로 놀러 왔다. 아버지가 은행에 다니는 비교적 넉넉한 집이라 부모님은 은근히 그 집안에 주눅이 들어있는 듯한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어렴풋 느껴졌다. 그 아이만 오면 분에 넘치는 용돈을 주며 우리 집도 그리 기운 편이 아님을 은근히 과시하는 모습이 보였으니.. 참 세상사 어렵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판단했을까? 의문이다.. 그날도 예외 없이 군것질이나 하라면서 선뜻 100원짜리 지폐를 건네는데 10원짜리 한 장 받기 힘들었던 나도 그 기회를 놓칠세라 은근히 눈짓을 하니 난감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는 체념인가 두고 보자는 표정인가 모를 미소를 지으시며 치마 속 깊숙이 간직한 꼬깃꼬깃한 오십 원짜리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무튼 그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말이 어머니 주머니 앞에 떨어지기도 전에 가게에서 새로 나온 과자를 한 봉지 사 가지고 왔는데, 당시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비싼 가격에 감히 사 먹을 엄두조차 못 내던 과자였다. 이름하여 " 티피 쵸코볼! " 반짝반짝 빛나는 알루미늄 은박지로 감싼 포장지의 호사는 차치하더라도 갈색의 빛나는 색깔이 너무도 예쁘고 혀끝으로 돌려먹는 초콜릿의 황홀한 맛과 마지막에 아삭하니 씹히며 초콜릿의 끝 맛과 어우러지던 땅콩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 아이는 맛있다며 나에게 빨리 사 가지고 오라지만 그 과자를 살 수가 없었다. 50원이면 도라지 한 관을 다듬어야 하는데 그 수고가 만만찮음을 알고 있는 나는 이미 돈에 관한 한 어린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끌리듯 간 가게에서 한참을 저울질하던 끝에 결국 달콤한 '티피 쵸코볼' 의 유혹을 물리치고 비닐봉지에 든 5원짜리 신앙촌 미루꾸(캐러멜)로 냠냠한 입맛을 달래키고 말았다. 나머지 돈은 어머니께 돌려 드렸는데, 그 돈을 받아 들던 어머니의 착잡한 미소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 가슴에 박혀있을 그 안타까움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냥 그 과자를 사 먹고 욕 한 번 들었어야 마땅했다.

나는 그 당시 질리도록 먹었던 도라지나물을 좋아하질 않는다. 같은 이유로 동태찌개도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어려웠던 생활이 남겨 준 묘한 입맛의 까탈스러움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오늘 구내식당의 점심 반찬에 먹음직스러운 도라지나물 무침이 나왔다. 빨가니 맛있게 보여 몇 점을 집어먹고, 식당 밖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후식으로 나누어 준 조그만 봉투를 열어보니, "주황색 2알... 노란색 2알... 그리고 초콜릿 갈색의 빛나는 1알... 그렇게 알록달록한 초콜릿 땅콩과자가 5알 들어 있었다. 그리운 색깔! 무심코 잊고 지내던 추억의 과자였다. 문득 쌉쌀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돌며 그 옛날 어린 시절이 눈앞을 스쳐 흐른다....
 

2010 ‒ 06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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