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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아주 떠났거나, 멀리 있거나, 소식을 모르거나. 본문
아주 떠났거나, 멀리 있거나, 소식을 모르거나.
교정을 떠난 지 어느덧 삼십여 성상이 흘렀다. 꿈 많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니 개똥철학에 빠져 옹알이를 하던 치기들도 그립고, 그룹 농구와 막걸리 내기 찜뽕도 하면서 좁은 운동장을 휘젓던 친구들의 몸짓도 그리워진다. 한강 백사장에서 야구를 하던 4대 독자 용옥이가 머리에 야구공을 맞아 실신을 한 아찔함도 그립고, 남부지구 R.C.Y. 의 일을 맡아보면서 동분서주하는 신광의 정양과 상명의 오양의 풋풋한 미소까지 단번에 그려지니 그 또한 그립구나. 모두 함께 한 시절을 공유하며 젊음을 불태우던 그 친구들이 이제는 흰머리 날리며 하늘의 뜻을 이해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모든 친구들의 면면이 그려지면서 그네들과 함께했던 옛날의 추억들이 내 가슴에 살아서 퍼덕이고 있다.
# 아주 떠났거나
동창 중에 제일 먼저 고인이 된 이 병택군의 죽음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시대적 숙명이고 광주의 아픔을 함께하는 슬픔이기도 하다. 형제간의 비극이 이 나라에 다시는 있으면 안 될 이유를 뼈아프게 남기고 간 친구이기에 더욱 애달프다. 성실한 군인의 길을 가다 졸지에 세상을 등진 연 안희군의 떠남 역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하였다. 진급이라는 삶의 명제로 산골로 들어가 근무를 하다 뇌출혈로 손도 쓰지 못한 채 가버려 아픔을 배가시켰다. 이제 두 친구는 동작동과 대전에서 우리가 올려보는 세상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언젠가 함께 할 친구들에게 미소 짓고 있으리라..
# 멀리 있거나.
우리 친구들은 유난히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들이 많다. 신 익현, 이 병훈, 이 세원, 서 기배, 김 영준, 김 용진, 송 방회... 아마 소식 모르는 친구 중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을 걸로 생각된다. 나와 함께 덕일 탁구장 앞에서 패널을 만들어 팔던 익현이의 곱상한 얼굴이 떠 오른다. 학생 시절의 낡은 앨범에는 월미도에서 어깨를 겯고 함께 찍은 익현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청바지와 체크무늬의 남방이 참 잘 어울렸는데, 두 어번의 편지 왕래 후 소식이 끊어져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늘 그리워지는 얼굴이다.
파란 잔디가 아스라이 펼쳐진 영란 여상 앞의 기가 막힌 휴식처에서 기타를 치던 기배의 멍게 같은 옆얼굴이 붉은 노을과 겹쳐진다. 황 영식이 학생회장으로 있던 목동의 한 교회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열창하는 나의 반주를 맡아준 고마운 친구..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탁구 배트를 만들어 주던 손재간이 좋은 친구.. 우리보다 두어 살이나 나이가 많았어도 전혀 티를 안내며 친구들과 어울려 기타와 벤죠를 기막히게 연주하던 멋진 친구... 이민 가서 아주 소식이 없더니 서너 달 전 한국에 들러 아무도 안 만나고 훌쩍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다. 이제 언제 또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영준이는 L.A에서 큼직한 쇼핑몰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는데, 그 소식만으로도 너무 좋다. 학창 시절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감성 어린 사연을 적어 슬그머니 내게 놓아주던 까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인 영준이.. 연안부두에서 함께 찍었던 한 장의 흑백사진이 그를 늘 생각나게 한다.
이민 가서 이십여 년 고생 고생하던 용진이는 라이선스를 취득해서 안정적인 노후를 장만했다던데, 불과 열흘 전 일요일 새벽녘에 한국에 온 김에 친구들 좀 볼 수 없겠냐고 취기를 담아 전화를 해 왔다. 용진이는 전화 한 통화로 새삼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과 친구를 대하는 예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친구다. 비록 얼굴을 못 보고 미국으로 되돌아갔어도 항상 그를 기억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농구장의 땅개 병훈이! 드리블이 일품이었던 병훈이는 어떻게든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은 친구이다. 이민 간 후로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어 안타까운 친구이다. 그의 선한 눈동자와 싱그런 웃음을 나이 들어서도 지니고 있는지 진실로 확인해 보고 싶고, 그의 소탈함을 다시 맛보며 소주한 잔 하고 싶다.
얼굴이 하얘서 귀공자 타입이었던 세원이는 학창 시절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진관사에 소풍 가서 찍은 사진에 남아있는 인연이 그 이름을 늘 기억하게 한다. 두열이가 그 사진을 보고 세원이가 아니라 반박을 했지만 정말 세원이가 맞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두열아! 내 말을 믿으렴..”
# 소식을 모르거나
이렇게 아주 멀리 있는 친구들이야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고, 졸업 후 아예 소식을 모르는 친구들은 만나 보리라는 기대조차 접고 있으나, 제대 후 한두 번 만나며 소식을 접하던 친구들이 어느 날 연락이 안 되고 있어 그네들을 못 보는 마음이 아쉽다.
윤 건선, 서 상운, 하 헌익, 김 병학, 이 명용, 노 수호, 이 찬영은 졸업 후 한 번도 얼굴을 보거나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원래 점심을 안 먹는다는 전 재욱이는 어떻게 변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꼭 한번 보고 싶다. 죽은 안희와 친하게 지내던 재욱이는 운동장 화장실에서 나눠 피던 담배 친구로 자리매김되었을 뿐이지만 아무런 추억거리 하나 없는 친구들보다는 훨씬 마음이 당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 병철이는 동인천중학교 서무과에 있었다는 풍문이 있어 당시 교육청엘 알아봐도 흔적이 없고, 소 민형은 그래도 삼십 대까지 연락이 되었는데 남대문에서 의류 장사를 하고 난 뒤 어느 회사인가에 다닌다는 얘기를 끝으로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친구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았던 윤 석후는 시환이의 결혼식 날 얼굴을 보이고 동창들에게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으나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으니 어딘가에서 바람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이름이 비슷한 현만이는 수산중공업 다니며 잠시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그 등장이 아주 극적이었다. 사십 대 후반 즈음! 영등포 모임에 현만이가 나타났다. 시원한 머리 위에 널어놓은 흰 머리칼 몇 가닥이 그를 엄청 나이 들어 보이게 하였는데 쇼킹한 그의 모습에 다들 자기들의 앞 날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이후 대둔산 등산 가는 날 야무진 딸내미와 함께 참석한 이후 소식을 놓고 있어 그 역시 보고 싶은 마음 가득하다.
금촌에서 통학을 하여 친구들에게 임진강 물결에 추억을 젖게 했던 재훈이! 일산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 퇴직한 재훈이는 현직에 있을 당시에는 너무 바빠 전화로만 몇 번 통화하고 모임에 한 번도 참석을 못하더니 안 좋은 일로 옷을 벗고 난 뒤에도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한 친구에게 물건을 팔러 왔다는데 이후 전화도 안 되고 소식을 끊어 버려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다.
연락도 되고 친구들이 찾기도 하지만 지역적으로 먼 곳에 살고 있어 만나기 힘든 친구들도 있다. 신 흥균과 신 행철 두 신 씨는. 대구와 합덕에 살고 있어 모임에 거의 참석을 못하고 있다. "이 친구들아! 그래도 대소사라도 생기면 꼭 연락하려무나.. 세상 함께 살아야지.." 정선에서 택시사업을 하고 있는 장 대형은 기경이가 간혹 찾아가기도 하고 인천으로 보러 오기도 해서 멀리 있어도 함께 하는 친구지만 다른 친구들이 그의 근황을 잘 몰라 굳이 안부를 전한다. 정선으로 찾아가기만 하면 언제 어느 때든 한 턱을 낸다 하니 누구든 이번 휴가길에 한 번쯤 들러봄이 어떨까?
#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착하고 키 큰 녀석들이 똘똘 뭉쳐 다른 친구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던 "삐리 칠 형제"들! 황 영식(오퍼) 이 성범(교수) 노 용우(마사회), 김 광식(조선설계), 신 석균(교사), 송 형근(가구 관련), 서 기원(학원경영), 민 중기(교사), [중기는 우리와 함께 졸업을 안 하였다] 그들은 지금도 영식이 외에는 전혀 모임에 참석을 안 하는데 언제고 한 번 그들만의 리그에 초대되어 그간 하고픈 얘기들을 마음껏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 아주 떠났거나, 멀리 있거나, 소식을 모르거나, 함께 있거나
아주 떠났거나, 멀리 있거나, 소식을 모르거나, 함께 있거나, 우리 사회의 근간을 정립하며 묵묵한 희생으로 인고의 세월을 헤치며 살아온 우리 친구들! 너나없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웃음을 간직하며 지금까지 지내 왔는데, 어느덧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아웃사이더로 위치 이동을 하며 자신들의 노후에 대한 걱정과 현재의 묵직한 가장의 역할에 얽혀 마음 편히 쓴 소주 한잔 못 마시는구나.
"우리 앞으로 살아가며 몇 번이나 건강한 상태에서 만날 수 있을까?"
우려 섞인 한 마디를 던지던 영식이의 말이 기어이 내 가슴에 가시 되어 박혀 버린다. 그리며 보고 싶어도 저마다 덮여 있는 현실이라는 껍질이 우리들의 뜨거운 가슴을 막고 있는데 누구 하나 제 손으로 그 껍질을 벗겨 내지 못하니, 이제라도 우리 서로의 더께를 벗겨주며 숨도 틔워 주고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덥혀 남은 인생 더불어 살아야지.. 그게 친구로다..
2011 - 06 - 19
진관사 소풍 제 일위 왼쪽 서 완규 오른쪽이 이민 간 서 기배.. 가운데 줄 왼쪽부터 신 행철, 김 두열, 홍 성호 아래줄 왼쪽부터 이 두용, 조 광진, 주먹쥐고 활짝 웃는 나, 신 석균, 이 세원, 그리고 김 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