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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사진 위에 흩어진 스무 살의 겨울 본문
사진 위에 흩어진 스무 살의 겨울
긴 시간이 지나면 희로애락의 감정은 퇴색되고 스러지며, 수많은 기억들을 망각 속에 담아둔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세월의 한 귀퉁이가 옛 수첩의 기록과 잠자던 앨범이나 우연히 마주친 사진 한 장으로 되살아 날 때가 있다. 그 되새김들로 인해 떠오르다 이내 흩어지는 추억들이 몽글몽글 떠 오른다.
구유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여물을 붓고 계시던 외할아버지의 자글자글한 주름.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고 계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콧잔등이 시큼해지고, 어스름 저녁 골목길 어귀에 걸어오는 까만 실루엣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 하굣길에 교문 앞에서 팔던 노랑 병아리와의 이별도 기억한다.
그리고,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픈 순간도 떠 오른다. 우연히 t.v 다큐에 스쳐 지나가던 솔방울이 담긴 흑백 사진 한 장이 아팠던 그 겨울의 내 마음을 보여 준다. 비에 젖은 황톳길 위에 떨어진 솔방울 가지가 도도하게 고개를 쳐들어 세상을 치켜보고 있다. 사철 푸른 자존심만이 유일하게 자의식을 구원할 힘이었으나 둥지를 벗어나며 말라비틀어지고 나서야 세상의 차가움을 깨닫지만 변색되는 자신의 몸을 보며 때 늦음을 후회하였다..
갓 20살의 청춘은 그 자체로 축복받을 나이였으나, 축복보다는 절실하게 다가온 등록 마감일과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등록금 때문에, 정신없이 동분서주하느라 존중받고 행복해야 할 젊은 영혼은 갈팡질팡 방향을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 20살의 나는 그 당시만 해도 돈이 주는 현실적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았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보여준 어정쩡한 조소로 인해 상처 입은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운마저 차가운 겨울바람에 실어 허공에 날려 보내며 울분에 찬 포효를 질러야만 했다. 그날! 나의 순결한 사춘기는 사라졌다.
그날 이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돈을 마련하느라 친구와 함께 시작한 포장마차 속에서 보낸 그 해 겨울은 혹독했다. 한 달여 마지막 희망을 좇느라 친구의 집 골방에서 웅숭그리며 쪽잠을 자면서도 웃음은 입가에 차고 새벽 수산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가볍게 온 정성을 다 쏟았지만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욕지기 나는 어른들과 알량한 푼돈마저 호시탐탐 노리는 추한 패거리들과 뒤 섞이며 자아는 흔들리고 점점 나의 마음도 어른이 되어갔다.
나의 스무 살의 겨울은 비에 젖은 황톳길 위의 청청했던 솔가지가 시나브로 누렇게 말라비틀어지듯 그렇게 흘렀다..
2011 - 5 - 24
"태어나서 소년은 청년이 되기 전에 사춘기가 온다. 그때 생각한다. "나는 왜 사나? 이렇게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나? 집안이 불행하면 왜 나도 불행한가? 이 우주는 얼마나 넓은가? 허공은 어디서 끝이 나는가? 이런 물음들을 던질 때가 사춘기다.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면서 사춘기적 물음과 멀어진다. 그런 물음을 끝없이 갖고 가는 사람들은 70-80세가 돼도 사춘기다. 그런 물음이 없으면 청소년기라 해도 사춘기가 아니다." <명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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