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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똥마당의 낡은 이층 집과 멋쟁이 해결사 본문
똥마당의 낡은 이층 집과 멋쟁이 해결사
전철을 타고 인천역으로 들어서기 바로 전에 동일 방직 앞의 고가 도로를 지나게 된다. 그 고가도로 위에서 북성부두 쪽을 바라보면 조그마한 둔덕 하나가 간신히 남아 있는데 그 둔덕을 포함한 주변 일대가 옛날 외국인 묘지였다.
개항기에 외국인 묘지가 터를 잡을 당시만 해도 바다를 향한 곶(串)의 지형으로 지세가 수려하고 공원식으로 조성된 탓에 한 동안 호젓함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의 데이트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였다. 1941년 철도부지로 면적의 반 이상 수용당하고, 6.25 전쟁 폭격으로 일부가 소실되어 존재의 유무를 가리기 어렵던 차에 주변이 발전되며 1965년 청학동으로 이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둔덕 뒤 북성부두 일대는 6,25 전쟁 이후에 바다를 터전 삼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피난민들이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하나둘씩 이주하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나. 400여 가구로 늘고, 이곳 주민들과 근처 미군부대에서 똥을 내다 버렸다 해서 한때 "똥마당"이라 불렀는데 점점 그 명칭을 아는 사람도 줄고 사용하지 않으면서 걸쭉한 그 이름은 이제 세월의 뒤켠으로 사라지고 있다.
세월의 뒤켠에 잠시 틈이 벌어지던 어느 날! 동구 만석동과 중구 북성동의 경계가 모호한 그 곳의 삼거리에 한 때 " 멋쟁이 해결사"로 불리던 분이 살던 낡은 이층 집이 한 여름의 뙤약 빛에 졸고 있다. 이층 집 처마 그늘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마에 솟는 땀방울을 닦아 내고 있자니 문득 옛 기억 속에 침잠되어 있던 그분이 떠 오른다....
백바지와 백구두를 즐겨 신고, 똥마당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던 훤칠한 키와 호남형의 멋쟁이 해결사 치선 아저씨! 환갑이 지난 연세에도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시원스레 처리해 주면서 대부분 어려운 처지의 그곳 분들로부터 신망을 한 몸에 받던 멋진 분... 12통장 치선 아저씨가 눈에 차 오른다.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은 동네지만 간혹 출장길에 얼굴을 알아 보는 분들이 손을 잡아끌며 막소주 대접을 안기는 정이 담뿍 담긴 곳, 이 곳 저곳에서 금세 따뜻한 밥 한 끼에 철 따라 잔 생선구이거나 혹은 우럭 찌개나 탕 등속을 차려 내는 시골 같은 인심이 푸짐한 이 곳이 북성동 1가 1번지 일대였다..
그 곳에서 당신을 어렵게 하는 나를 보면서도 껄껄 웃으며 주눅 들지 않던 보옥 아줌마의 넉넉한 인상도 떠 올린다.. 십여 년 뒤 우연히 누나뻘인 큰 딸을 만나서 아줌마도 건강하고 잘 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 가족처럼 즐거이 얘기꽃을 피울 수 있게 해 준 곳이다. 그 누나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 당시에 함께 즐겨 듣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경건함과 “벤쳐스 악단” 이 연주한” Pipeline” 의 열정적인 기타음이 들리는 듯하다.
북성부두 맞은 편! 지금은 8 부두의 일부가 되어 버린 곳에 "인일 제빙"이라는 어시장에 얼음을 제공하는 조그만 얼음공장이 있었다. 어시장이 연안부두로 옮겨 간지 십 년 가량이 지난 터라 많은 어려움을 겪던 곳인데 업무상 주인과 서로 얼굴 보기 민망한 지경이나, 어쩔 수 없이 자주 부딪다 보니 정이 들어 호형호제하며 서로 간의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까지 되었다. 모든 일이 잘 풀려 한 숨 돌리던 날! 주인이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며 냉동 갑오징어 한 상자를 사무실로 보내왔는데 누구 하나 손질을 할 줄 몰라 결국 사무실 근처 대폿집에 잡혀 놓고 막걸리 한 순배로 셈을 치르던 일도 추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어느해 가을날!
치선 아저씨 주선으로 젊은 직원들 몇 명이 북성부두에서 노 젓는 배를 빌려 망둥이 낚시를 나섰다. 꼭 물때를 맞춰 들어오라는 말은 귓전에 흘려듣고서는 당시 엄청난 체력을 가진 헐크 라 불리던 홍 씨에게 노 젓기 전담을 맡긴 채 낚시는 뒷전으로 뱃노래를 불러 가며 흥청망청 술잔만 주거니 받거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이윽고 뉘엿 해 떨어져 가는 것을 보며 이제 돌아가자 하였는데,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제자리였다. 그제사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 모두 겁에 질려 우왕좌왕 하던 차에, 다행히 도착해야 할 시간보다 훨씬 늦는 낌새를 잡은 치선 아저씨께서 동력선을 끌고 와 구출해 주었으니 바다를 우습게 본 젊고 오만방자한 혈기에 용왕께서 철퇴를 내린 아찔한 사건이었다.
이제 그런 노젓는 배는 적어도 인천 앞바다에서는 아무데서 빌려 주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런 수고를 하며 낚시를 하려 하지도 않으리라.. 그저 내게 일어 난 한 때의 사건이자 교훈이며 추억일 뿐이고 바닷가를 즐겨하며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 즐거움과 수고를 알리라..
세월은 흘러 나를 기억할 사람도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두 떠난 이 곳에는 아파트촌이 들어서고,하늘을 가리는 고가도로도 세워졌지만 그래도 삼거리 한 귀퉁이에 아직도 쇠락한 채로 졸고 있는 낡은 이층 건물에서 그 날들의 자취를 그려보며 짧지 않은 수 십 년 전의 세월에 묻은 추억 한 토막을 반추해 본다. 2011.8.12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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