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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박제가 된 후투티 본문

내이야기

박제가 된 후투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01:38

박제가 된 후투티

창 너머로 벌써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동그랗게 말려 가을바람에 사각거리며 날리는 낙엽들이 잘 구운 생과자를 닮아 군침이 돌아요. 말이 살찌는 게 아니라 식욕 좋은 내가 살찌게 생겼습니다. 잔디밭 사이로 낙엽을 헤치며 조그만 후투티 한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후투티는 여름철새로 벼슬의 장식이 발달해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요. 어찌 보면 인디언 추장을 닮았어요. 검정과 고동색의 멋들어진 조화 속에 가냘프면서 한편으로 우아함을 느끼게 해 주는 새입니다. 카메라가 없어 아장거리는 저 귀여운 모습을 담지 못해 아까울 따름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삶은 후회하기 마련입니다. 찰나의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하면 후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의 내게 있어 후투티를 렌즈 안에 담지 못한 것은 그다지 후회할 거리가 아니지만, 만약 저 새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더라면 차 한잔 마시는 시간에 눈앞에서 기회를 놓치고 아쉬움을 토로할 것이 자명하겠지요..

후투티라는 새는 오래전 섬에 근무할 때 처음 보았습니다. 해수욕장 횟집 뒤편에 황 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근무를 하던 분이었죠. 주사는 있어도 대체로 온순한 분이라 자주 어울리곤 했습니다. 어느 초여름 한낮에 집으로 오라더니 쓰지 않는 다락 속에 살고 있는 후투티를 구경시켜 주었어요.. 자그마한 몸에 군더더기 없이 벼슬 장식이 멋진 새를 처음 보자마자. 불현듯 길러 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군요..

" 저 새 한 마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 날! 저녁 퇴근 시간에 황 씨가 조그만 상자 하나를 주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파르르 떨고 있는 후투티 한 마리가 있었지요. 하지만 집에서 들새를 키우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결국 내 욕심에 후투티는 죽고 그 새는 박제가 되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삶은 꼭 후회를 하고 가치 없는 삶이 됩니다. 생명을 중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 오랜 질책을 하기도 합니다. 잠시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두었더니 결국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부쩍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집니다. 이런 현상은 나뿐만이 아니겠지요. 남자들이 가을을 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라 할 수 있어요. 유치한 감정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가을이 되고 낙엽이 구르는 장면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옛날 이발소에 걸린 싸구려 유화 그림 속에 써진 이런 시구가 생각날 테니까요. " 시몬, 나뭇잎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 구르몽 -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 푸쉬킨 -

올해는 낙엽을 헤치며 종종거리는 후투티에게서 별스런 가을을 느껴봅니다. 거리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찍 단풍이 들어 버린 가로수에서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고, 따가운 가을 햇살에 달구어진 벽돌 위에 떨어진 낙엽은 금세 또르르 말려버립니다. 바람에 쓸려 한 곳에 뭉쳐진 낙엽을 밟아 보니 " 아사삭" 하는 부드러움이 귀를 타고 흐릅니다. 1년 만에 낙엽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엊그제부터 가을의 느낌이 완연하게 느껴지면서 선뜻한 밤바람이 팔뚝에 소름을 돋우었습니다. 상쾌한 가을의 감촉입니다. 거기에 어젯밤 하늘에는 맑은 공기 탓인지 무수한 별들이 눈에 가득 차 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보는 장관이었지요..

가을이 되면 눈과 귀와 피부와 그리고 마음으로 계절을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굳이 계절이 주는 영향만은 아닐 겁니다.. 그간 심고 가꾼 결실이 주는 풍요로운 사고의 계절이며 하나라는 완성의 기준에서 4분의 3 정도가 지나는 시점이면 깊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특히 인생의 가을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늘 좋은 생각만 하며 지내야 할 테지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세월을 흘리며 나이 들어가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2011 - 09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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