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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영구차를 바라보며 본문
영구차를 바라보며
겨울이 깊어가는 모양이다. 한 동안 아침 출근길에 보이지 않던 검은 리무진이 스르륵 지니 간다. 뒤를 이어 버스 한 대와 몇 대의 승용차들이 라이트를 켠 채 묵묵히 뒤를 따르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나도 모르게 잠시 옷깃을 여미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몇 년 전부터 은연중에 우리의 눈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영구행렬의 모습이다. 내가 처음 운구차량으로 리무진을 본 것은 의회장을 치르던 고 전 중현 의원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였다. U.D.U 출신의 전 의원은 거친 풍랑으로 좌초된 어선에서 인명을 구하다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분이다. 구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치르는데, 리무진 지붕에 날카롭게 비치던 햇살이 눈에 시리고, 육중한 검은색의 자태가 어색함으로 다가오던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오래전 그날은 선명한 맑은 하늘이 외할아버지의 영혼을 맞는 날이다. 장지로 향하는 상여행렬에는 화려한 만장들이 펄럭이고, 상여꾼의 느릿한 곡소리는 서랑리 방죽의 수면 위에 떠도는데, 행렬의 맨 앞 쪽에서 성긴 누렁 베옷에 두건을 쓴 외삼촌들의 나지막하고 규칙적인 곡소리와, 두 어걸음뒤에서 조용히 눈물지으며 걸어가고 있는 어머니의 왜소한 체구가 아릿함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꽃상여 뒤로 자박자박 걷는 짚신들 밑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황톳가루들..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은 스산한 바람이 집 앞 골목을 맴돌며 좀처럼 떠날 줄 몰랐다. 곱게 습염을 하던 날! 나를 대신해 친구들이 천막도 치고, 백열전등으로 골목 안을 밝혔다. 웅성거리는 문상객들이 골목이라는 공간을 그득하니 채우며, 지난한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그렇게 서로 품앗이하며 상가를 찾고, 무겁게 나누는 술잔에서 고인의 덕을 그리던 그날의 모습들은 지금도 가슴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초상집의 풍경들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길을 걷다 보면 대문 앞에 불 밝힌 근조등이 보이고, 천막 근처에서 문상객들이 웅성이는 낯익은 풍경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길가에서 장의사 간판이 안 보이더니 슬며시 그런 풍경들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장례는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서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공동주택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곤란하거니와 음식을 차리는 공간도 협소하고 번거로우니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굳어졌다. 생활과 주거의 불편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도 있겠지만, 핵가족화로 인한 손길의 부족 현상도 가정에서 식장으로 옮겨 가도록 일조를 한 것에는 이견을 달 수가 없을 터이다. 모두 세태의 흐름이니 거스를 수는 없겠다.
하지만 고인을 품위 있게 보내 드리고자 하는 상주들의 애틋한 마음을 노린 장례업자들 의도 넘치는 행태들은 너무도 고약하다. 지금의 식장들은 어느 곳도 제대로 품위 있게 의식을 치를만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고 칸칸이 나뉜 식당 같은 식장들의 모습들을 보면 그저 처연할 따름이다. 게다가 터무니없는 장례 가격과 일부 장의차 운전기사들의 염치없는 손벌림에다 묘를 조성하는 인부들의 당연한 듯 뒷돈 챙기는 행태들은 인두겁을 쓴 사람의 짓거리로 볼 수 없다. 그 짓거리에 부아가 나도 나도 언제고 또다시 그 상술에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딱할밖에..
우리에게는 종교를 떠나 500년을 이어 온 유교적 관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아직까지 관혼상제를 치르려면 그 관습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경조사를 치르는 사람들의 근간에는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잡음을 피하려는 마음과, 나중에 힘들더라도 돈을 아끼지 않아야 제대로 된 의식을 치른다는 마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어 그 마음을 장의업자들이 철저히 농락하는데 그 문제가 있다.
일본 나리타의 “⼋富成⽥⿑場“(팔부 성전 제장)이라는 시립장례식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화장장과 장례식장이 한 곳에 있어 매우 편리하기도 했거니와 마치 일류 호텔의 라운지와 같은 고급스러움과 청결함에 그리고 시민을 위한 저렴한 가격에 그저 부러운 마음만 그득하니 담고 왔던 기억이 있다.
일본은 습한 기후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화장문화를 선택하였겠지만 이제 우리는 전 국토의 묘지화를 이루지 않으려면 매장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국민들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데 너무 오랜 시일이 소요되고 있어 안타깝다. 화장문화로의 변화도 중요하고, 장례업의 비틀어진 관습도 하루빨리 고쳐져야 할 것이다.
날이 점점 차가워지면 청첩보다는 부고가 빈번해진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는 집들은 한층 조석으로 부모공양에 힘을 써야 하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송강 정 철의 “훈민가”에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길랑 다하여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달에 새삼 나이 든다는 쓸쓸함이 가슴에 찬 바람을 일으키며 지난다..
2011 - 12 -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