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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어린 시절의 단상 본문

내이야기

어린 시절의 단상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11:45

어린 시절의 단상

오늘은 대설! 영동지방에 폭설이 내려 이곳저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차들을 막아선다. 앞 길이 위험하니 잠시 쉬어 가란다. 역시 절기는 우리네 삶 속에 슬그머니 다가와 필요한 만큼 노크를 해준다. 마치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리는 우리의 의식을 잠시 멈추게 하는 제동 장치처럼.

그렇게 계절은 겨울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미듯 변함없이 타박타박 우리 곁을 찾아온다. 늦은 밤! 사무실 한 편에서는 따스한 스토브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서 규칙적으로 쌔액 쌔액 울리는 소리가 정감 있게 눈에 차는데 살포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사이로 문득 지난했던 어린 시절에 느끼던 한 겨울의 기억이 슬며시 그려진다.

콧등을 후려치는 바람도 서러운데, 동그란 문고리마저 손에 쩌~억 달라붙어 몽롱한 잠결의 아른함을 소스라치게 놓아버리게 하고, 윗목에 놓아두었던 자리끼도 웃풍에 얼려 버리던 그 시절의 아침 풍경... 어느새 걷어붙인 이불은 저 멀리 홀로 웅크렸고, 한뎃잠 자고 일어 난 어깻죽지가 뻐근하던 우리 어린 시절의 겨울은 왜 그리 섧고도 혹독한지~

그래도 눈 온 날이면 골목길에 새초롬 깔려 있던 연탄길이 정겹고, 비료 포대로 얼기설기 덮어 놓은 깨진 굴뚝 사이로 피어오르던 저녁 무렵의 노곤 한 밥 짓는 연기도 그립고, 川邊에 대리석 공장에서 흘러나온 은회색빛 돌가루의 반짝거림이 보석처럼 아름다운 그 시절의 풍경들은 어디에 있을까?

해는 이미 져 어둑해지고, "Gary Karr"의 "정결한 여신"이 조용히 가슴에 젖는다. 묵직한 콘트라베이스의 연주가 어린 시절의 감성을 천천히 심연으로 빠뜨리고 있는데, 별안간 전화소리가 그윽한 공간을 휘저어 놓았다. 생경스런 번호라 잠시 망설이다 받은 수화기에서 조용하고 느낌이 좋은 낯 선 여인의 목소리가 흐른다.

모교인 전농초등학교의 총동창회 카페가 동창들의 애틋한 추억의 가교 역할을 못하고 버려진 것이 안타까워 새로이 카페를 개설했으니 도와주면 좋겠다는 "푸른 숲"이라는 선배의 전화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흔쾌히 도와 드린다는 말을 못 한 채 전화를 끊고 난 뒤, 공교로운 인연이다 싶어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 어느 순간 기억 속에 침잠해 있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교무실 문 옆에서 두 손을 들고 씨근거리던 마음은 이미 차분히 가라앉고.. 미닫이 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이 옥죄는데,

"심 선생! 이 녀석은 무슨 장난을 친 거야?"

라며 출석부로 정수리를 한 번씩 쥐어박고 가는 선생님들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괜스레 눈물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눈물방울 속에 점심때마다 식모가 가지고 오는 따끈한 라면을 홀짝거리며 먹는 부반장 녀석에게 며칠 동안 한 입만 달라던 구차한 내 모습이 투영돼 온다.

주기 싫으면 그만이지 혓바닥 내밀며 약 올리던 녀석이 밉살스러워 라면 냄비를 뒤집어 씌워 버리고 얼마나 고소하던지, 녀석의 머리 위에 줄줄 흐르는 라면발을 보면서 온 몸에 짜르르 퍼지는 그 희열은 또 어떻고, 그러나 그 통쾌한 기분을 불과 10분도 느끼지 못하고 차가운 교무실 바닥에 무릎 꿇고 벌 받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선배의 전화를 받고 그때의 기억이 이리도 선명하게 떠 올랐을까? 그때 그렇게 먹고 싶던 라면은 이제 실컷 먹을 수 도 있는데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며
즐겨 먹지 못한다니 40여 년의 세월 동안 시절이 이렇게도 변하는구나.

그때의 담임 선생님이 심 동욱 선생님이셨는데 늘 짧은 머리에 선한 인상이 지금까지 그려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외에는 나를 가르쳐 주신 모든 담임선생님들의 성함을 기억한다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괴물 같다 하니 나와 친구들 중에 어느 쪽이 잘못일까? 그 모든 분들이 내 어린 시절의 인격형성에 큰 도움을 주셨는데.

그중에서도 6학년 때의 조 병선 선생님은 절대 잊지를 못하여 오래전에 조 병선 선생님에 대하여 써놓은 구절 중 일부이다.

(중략) 다들 어려운 경제생활을 하던 60년대에 나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다녔다. 반 학생들 중 형편이 좀 나은 학생들은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려운 생활에서도 구김 없이 학교에 다니고 들 있었으며, 나도 그중의 하나였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유독 내게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대해 주셨다. 일요일이면 댁으로 불러 자제분들과 함께 놀아 주시면서,

" 함께 있으며 기쁨을 느끼면 그게 바로 사랑이다 "
" 가난은 잘못이 아니다. 가난을 핑계 삼아 꿈을 갖지 않는 게 잘못이다."
" 몸보다 영혼의 아픔이 더 큰 아픔이니 책을 열심히 읽어라 " 면서 알기 쉽게 한 마디씩을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도 남의 집에서 세를 사시는 어려운 형편인데도 매우 정갈한 집안 모습과 사모님의 환한 웃음에서 푸근함을 느꼈으며 , 그 시절! 몸과 마음으로 가르쳐 주신 선생님 말씀대로 지금도 따뜻하게 꿈을 갖고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갖게 한 인생의 본보 기시다.(중략) -내 인생의 나침반- 중에서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배워가며 인격을 형성하고 지혜로움을 터득한다. 청소년기는 한 사람의 인격과 인성의 골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청소년기에 형성된 좋은 품성과 지혜는 그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동안 충분한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가정과 학교는, 품성과 지혜를 형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같이 교권이 무너져 가는 현실에 전국에 계신 많은 조 병선 선생님 같은 고귀한 분들이 힘을 내셔야 할 때라 생각한다.

동창들의 추억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던 선배의 전화가 옛 추억을 떠올리는 단초가 되었다. 그 시절 신발주머니 돌리며 경미 극장 앞으로 뛰어가던 어린 나는 세월의 숨결 속에 삼켜지고,, 전매청 옆 양지바른 곳에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 아픈지도 모르며 구슬치기 하던 개구쟁이 친구들은 어느 동네로 떠돌다 흔적 없이 사라졌는지.. 하루는 조개탄, 하루는 배급 나온 옥수수빵 상자를 나눠 들고 가던 그 시절의 짝꿍과 콘셑트 건물로 지어진 교실의 풍경들이 서서히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2011 -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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