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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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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호찬이와 옛 동료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5. 12:02

호찬이와 옛 동료들

전임 계장의 독직사건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끼어 맞추듯 진급이 되어 내려 간 용유에서 1년여를 한가롭게 근무를 하며 지내던 91년 초순경! 직원 아버지 회갑연에 참석하였다가 돌아오는 길에 진등 고개 밑에서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폐차를 할 정도로 심한 사고였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운전하던 조훈이는 경미한 찰과상에 그치고 나는 왼쪽 어깨뼈에 금이 간 상처를 입었다. 깁스를 하고 불편한 몸으로 근무하 던 중 사고 일주일 만에 급작스런 발령으로 공직생활을 통틀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건축과로 옮겨 근무를 하게 되었다.

건축과의 주 업무인 인, 허가 업무는 기술직들이 다루는 업무이면서 자칫 수뢰사건에 연루될 수도 있어, 행정업무만 다루던 내게는 매우 생소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차석으로 만난 호찬이라는 친구 덕분에 그네들의 룰과 흐름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갈 수 있었고, 무허가 건축물 철거 작업으로 인한 당사자들과의 마찰로 수많은 고초와 시련을 겪었어도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돈독한 동지애로 뭉쳐져 오히려 공직생활 중의 즐거움과 보람이 가장 많이 쌓이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호찬이는 용유로 내려가기 전에 노정(勞政) 업무를 담당하여 친분이 있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이면서 하얀 피부가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성격은 유순하지만 결단력과 강단 있는 업무추진력이 돋보이던 친구인데 자리를 옮긴 내게 천군만마와 비견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그때 맺은 인연이 공직을 떠난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간혹 만나게 되면 이제는 추억이 된 옛이야기를 안주삼아 술 한잔씩 하곤 한다.

건축과에 근무하게 되면서 그들과 금세 동화된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영종 선착장 앞쪽에는 제방이 있었고 그 제방을 따라 포장마차촌이 길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근무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그 포장마차촌을 철거를 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말이 포장 마차지 그 규모들이 매우 크면서 견고했고, 어느 집은 2층까지 올려놓은 지경이었으며, 철거를 종용할라치면 험악한 주인들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나타나 위협을 하곤 하여 결국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서로 간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강제 철거라는 극단의 조치를 선택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용역업체에서 철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직접 철거를 해야 했기에 유사시를 대비해 경찰 3개 중대를 지원받고 직원들이 해머와 장비 등을 사용해 한동 한동 철거해 나가기에 이르렀다. 철거 현장에는 늘 그렇듯 위험요소가 산재하고, 위험한 인물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2층 포장마차를 철거하던 중에 주인의 동생이라는 자가 양손에 칼을 들고 2층으로 올라오며 직원들을 향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칼을 보고 놀란 직원들이 순식간에 2층에서 뛰어내리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졌는데 2층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나와 문식 형만 남게 되자 작심한 듯 철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문식형이 상처투성이의 배를 내 보이며 어디 찔러보라 단호하게 윽박질렀다. 그 기세에 눌린 주인 동생이 엉거주춤한 사이 직원들이 그에게서 칼을 빼앗아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나 역시 뛰어내리려고 했지만 교통사고로 불편한 몸이라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는데 아래에서 나를 보던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 보았는지 그날부터 깍듯이 대우를 하기 시작했다. 난동으로 인해 경찰이 개입하기 시작하여 철거는 큰 무리 없이 끝났다.

그날! 회식자리에서 수훈갑인 문식형의 배포에 감탄을 하고, 곁들여 나까지 낯 간지럽게 추켜세웠는데, 직원들은 내가 그 위험한 자리에 있었다는 자체를 대견스레 봐준 셈이지만, 나는 철거 계획이 추진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를 도와준 호찬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얻고 직원들과 동화되는 계기를 얻게 된 호재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어려움을 넘겼는데 주로 건달들이 운영하는 무허가 업소들을 철거하며 생긴 일들이었다. 가스통을 트럭에 싣고 철거하는 직원들을 향해 돌진하는 사건부터, 흉기를 피해 뒷걸음치다 넘어진 직원을 삽으로 내려치는 것을 막아 낸 아슬아슬한 순간과, 분에 못 이겨 할복하는 사람을 호송하며 느끼던 자괴감까지. 게다가 건축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제시받은 엄청난 액수의 뇌물유혹을 뿌리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모두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어렵사리 공부방을 내어 짓는 집에 몰래 학용품을 전달하고 묵인하던 일과, 화장실을 내어 짓던 할머니를 도와주던 일등으로 감사원에 지적당하고 확인서까지 제출해야 했지만 당시 민생을 위하라는 대통령 지시사항 덕분에 외려 소신껏 일한다는 칭찬을 받던 일들은 힘든 가운데 얻을 수 있던 가뭄의 단비 같은 일화로 볼 수 있다.

위험하고 어려움을 함께 나눈 사람들은 끈끈한 동료의식을 갖게 마련이다. 동고동락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 낡은 앨범 속 몇 장의 사진에 남아 있는 그네들의 면면에서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

함께 어려움을 헤치면서 저녁이면 술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볼링 붐을 타고 볼링동호회 회장을 맡아 시 볼링대회에서 남자부 우승을 했던 멋진 추억도 그들과 함께였고, 간간이 가족여행과 바다낚시 등으로 핏줄보다 진한 우정을 보여준 것도 그들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 용인 자연농원에서 찍은 애틋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는데 사진 속에는 호찬이와 일찍 돌아가신 그 아내의 환한 웃음이 녹아 있다. 긴 세월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아내에 대한 돈독한 사랑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더니 이제야 새 장가를 들어 그 마음을 풀게 하였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고 고운 심성이다.

마니산 참성단에서 장난스럽게 포즈를 잡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피 끓던 젊은 시절의 단면을 반추해 볼 수 있겠으나 이제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고 추억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잘생긴 얼굴에 듬직한 외모가 일품이면서 정숙한 음주음전 솜씨를 뽐내던 용제 씨를 얼마 전 우연히 만났는데 이제는 경제 자유구역청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흐뭇한 소식을 전해준다. 세월이 흐르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은 정경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차돌같이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던 문식형과 물텀벙이 광식형, 그리고, 수안보 여행을 주선했단 은*형들은 내가 공보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뿔뿔이 흩어져 뒷 소식을 모르고 있다..

당시에 어린 계장과 함께 일선에서 고생을 많이 한 큰 형님 같았던 이 창복 반장님은 발군의 볼링 실력으로 우리들 중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였는데 정년퇴직 후 설계사무소 일을 도와준다는 말을 듣고는 그 후의 소식을 알 수가 없어, 이제라도 반장님이 연로하시기 전에 호찬에게 수소문해서 옛 동료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보라고 해야겠다.

밤을 낮 삼아 일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항상 웃는 얼굴로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멍게 권 대장은 지금도 늘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고, 제갈 공명과 같이 모든 입장과 관계에 대한 정리를 깔끔하게 해 주던 은환이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긴 고생을 했으니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 장가를 갔으면 좋겠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면 꽃 한 다발씩 챙겨주며 아내에게 점수를 따게 해 주던 고마운 친구.. 나는 네 개 아무것도 해 주지도 못하며 세월만 보냈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에 보통의 봉급쟁이가 겪을 수 없는 아찔한 순간들이 꽤 많았다. 그저 일에 미쳐 지내느라 위험하다는 생각조차 마음먹을 여력이 없던 것만 같았는데 이는 나만이 그리 행동하고 사고했을 리가 없다. 지난 모든 일들이 사명감으로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게 순응하며 지낸 날들이었다. 박봉으로 고난의 시기를 헤쳐 나가며 지탱해 나갈 수 있던 힘은 바로 끈끈한 동료애일 테고, 그네들과 함께 한 소박한 소명의식 때문이었음이리라.

오늘! 겨울의 한가운데에 모처럼 푸근한 날씨를 보인다, 한 겨울에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음이 복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 속에서도 봄은 느릿느릿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듯이 언제 지나갈까 싶던 모진 그 시절도 어느새 지나 지금에 이르러 추억으로 회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솔로몬 반지의 이 글귀를 생각했더라면...

“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12 - 1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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