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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팝의 제3세력 본문

음악이야기/팝

팝의 제3세력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1. 00:33

https://youtu.be/NNiTxUEnmKI

Europe / The Final Countdown

 

팝의 제3세력

차가운 고대의 신화와 뜨거운 영웅의 전설을 간직한 『에다Edda』, 그리고 전승시가를 기록한 『자가스Sagas』의 땅을 많은 이들이 막연한 동경을 품고 그려본다. 바깥에 사는 이들에게 유별나게 칭송받는 나라, 즉 '타자 환상'의 대상인 인도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어떤 음악인이 북유럽 국가들을 둘러보고 “정말 사람 사는 것처럼 살더라"며 부러워한 일을 기억한다. 그런가 하면 현지의 어떤 음악인은 “여긴 참 심심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며 너스레 떠는 것을 본 기억도 있다. 북유럽의 위치와 자연이 자아내는 신비로움 때문인지 그 동네의 음악에서 청명함이나 서늘함을 찾아내려는 사람들도 종종 발견한다. 글쎄,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오해이지만, 동시에 어떤 면에선 진실이다.

북유럽의 음악세계는 두꺼운 빙하와 깊은 숲 아래에 감춰져 있지 않았다. 세계의 대중음악을 주도한 영국과 미국 다음의 위상과 역할을 오래전부터 점하고 있었다. 굳이 스웨덴에서 흘러나와 1970년대의 공기를 화려하게 물들인 아바ABBA, 1980년대 팝 시장을 석권한 노르웨이 청년들인 아하A-Ha, 혹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하드 록 밴드 유럽 Europe과 헤비메탈 기타의 신으로까지 추앙받은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같은 스웨덴 로커들을 언급하기가 어딘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후에도 스웨덴의 카디건스Cardigans 와 노르웨이의 디사운드D'Sound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뷔욕Bjork처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끊임없이 등장해왔다. 그러니까 북유럽은 볕이 잘 들지 않는 귀퉁이가 아니라 세계 음악사의 본류와 합류하여 도도히 흘러온 팝의 제3세력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모던 록과 인디 팝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핀란드에서 로맨티시즘을 고스goth의 전통 아래에서 현대화한 힘HIM을 비롯하여 개러지 록 밴드 하이브즈The Hives 라든가, 어느덧 한국 방랑자로도 유명해진 라쎄 린드Lasse Lindh 등은 그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덴마크의 뮤Mew와 스웨덴의 켄트Kent처럼 세계적인 스타 밴드들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음악 경향을 모두 수렴해온 북유럽의 대중음악으로부터 공통의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해왔다. 또한 이것은 20세기 후반 이후에 나타난 음악계 전반의 특징이기도 하다. 결국 속 편한 첫번째 결론은, 북유럽 음악의 특징이 전 세계 음악의 추세를 반영하는 보편성에 있다는 것이다.

전위의 분화구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마니아 취향의 음악을 유난히많이 배출해왔다는 사실이다. 북유럽은 최전위에서 극단을 실험하는 음악인들 때문에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노르웨이의 엠페러 Emperor와 딤무 보르기르Dimmu Borgir는어둠의 마력을 뿜어낸 자들이고, 씨어터 오브 트래저디Theatre of Tragedy와 그린 카네이션Green Carnation은 신비의 주술과 사유의 깊이를 훌륭한 음악으로 표현한 대표자들이다. 스웨덴은 디섹션Dissection과 레이크 오브 티얼스 Lake of Tears, 그리고 인 플레임스 In Flames와 다크 트랭퀼리티Dark Tranquillity, 또한 오페쓰Opeth처럼 진취적인 헤비뮤직 선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팸플릿을 한 다발 넘게 보유하고 있다. 핀란드 역시 나이트위시 Nightwish와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한 밴드들 외에도 센턴스드Sentenced와 아모피스Amorphis, 그리고 엔트와인Entwine과 투다이포To/Die/For에 이르기까지 뉴웨이브 고딕의 산실로 기록되고 있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실험성과 예술성의 전위로 등극한 익스트림 뮤직 중에는 메시지마저 극단으로 치달은 경우가 많았다.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내부의 반감에서 비롯된 인종주의와 극우 성향을 보인 이들마저 있었다. 반면 긍정적인 고유성 또한 특징이다. 북유럽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 적극 시도되어온 것이다. 전통악기를 활용하는 수준은 애당초에 넘어섰다. 코르피클라니Korpiklaani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속음악의 가락을 주 선율로 삼고 그 장단으로 뼈대를 구성하는 단계로 넘어온 지 꽤 되었다. “그런 건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쎄리온Therion의 크리스토퍼Christofer Johnsson는 2004년, 포크 folk와의 접목에 관심이 깊으냐는 인터뷰어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지만, 각지에서, 그리고 각 장르에서 포크의 잔향을 감지하기란 전혀 어렵지가 않다. 특히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를 음악의요소로 자신감 있게 시도한 음악인들이 무척 많은 것도중요한 지점이다.

새로운 경향을 적극 수용한 음악인들이 많은 상황을 간과한다면 게으름을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다양한 장르가 만들어지고 교접하는 음악계에서 2000년대의 중요한 음악 경향으로 포스트록이 전파되었다. 이 장르에 대한 최초의 규정과 달리, 그리고 흔하게 오용하는 것과 달리, 포스트록은 어느덧 지향을 넘어 타입으로 '장르화’했다. 하지만 그 유산은 광범위하게 파급되어 또다른 스타일을 파생시켰고, 음악에 더이상 새로울 건 없다던 불신을 불식시킨다. 앞서 다른 예술동네에도 인간 안에 무한히 남아 있는 미지의 감성 영역을 향한 탐험을 통해 유사한 감흥을 유발한 이들의 명단은 길게 작성되어 있다. 하지만 포스트록의 기법은 더 쉬웠고, 덜 어두웠고, 더 널리 퍼졌다.

그 대표자들로 영국에 모과이 Mogwai가 있고, 미국에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Explosions In The Sky가 있으며, 일본에모노Mono가 있다면, 아이슬란드에는 시규어 로스Sigur Rés가 있다 (혹시라도 북유럽과 아이슬란드를 함께 말하고 있다고 의아하게 여길 런지 모르겠다. 가장 일반적인 세계지도로 보면 거리도 꽤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상에 가까운 지구본을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아이슬란드는 앞서 말한 『에다』와 『자가스』뿐만 아니라룬문자를 공유하는 사이다). 포스트록은 대개 단음 프레이즈와 점층 무드에 의한 감성의 고양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돌출보다 누적된 감흥의 분출과 펼침으로 심화를 그려낸다. 소소한 일상을 쌓아 지구와 우주로 확장해 나아가듯이 소박한 멜로디와 노이즈가 화폭을 넓혀간다.

그 정서의 정체는 그저 멜랑콜리가 아니라 고도의 기교 지향과 세기말의 징후인 그로테스크를 털어낸 명상, 그리고 아름다운 대지를 향한 유대감이다. 이것을 안다면서사가 아니라 서경의 사운드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북유럽은 음악과 영상,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음악에 대하여 '아낌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한국과 달리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또다른 의미의)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 북유럽이다. 보편화된 음악교육과 대중예술 지원 정책, 그리고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기에 비주류 음악인도 자신의 노선을 고집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첼리스트들로 구성된 록 밴드 아포칼립티카Apocalyptica가 등장할 수 있었고, 인디팝 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가 세계인의 환대를 받게 될 날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북유럽 음악 안에는 세계 음악시장과 교류하는 보편성과 새롭고 기이한 것들을 뿜어내는 분화구에서 빚어진 특수성의 공존이 가능했다.  글쓴이 : 대중음악평론가 나 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