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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베른바르트 코흐 Bernward Koch의 몬타뇰라Montagnola(2003년) 본문

음악이야기/클래식 & 크로스오버

베른바르트 코흐 Bernward Koch의 몬타뇰라Montagnola(2003년)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1. 01:01

https://youtu.be/1Zn4eaH7s70

 

유리알처럼 맑은 아침,

헤세에게로 산책하는 피아노

베른바르트 코흐 Bernward Koch의 몬타뇰라Montagnola(2003년)

앞집 마당에 활짝 핀 목련을 훔쳐보다가 문득 이곳이 내가 꿈꾸던 사막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떠올랐습니다. 목련 주위에는 아직 새순조차 돋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어색하게 호위하고 있습니다.어수선하고 탁하기 짝이 없는 세상의 끝없는 소요에 서서히 퇴락해가는 군상의 그림자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는지, 여태앙상한 나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중앙아시아의 사막 어느 곳에 떨어진 어색한 생명들과 흡사합니다. 황사가 섞여 있으나 그래도 가까스로 회색에 가까운 푸른색을 띤 하늘을 등지고 인공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피어난 목련은 마치 마그네틱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새들이 지저귀지만 한갓 배고픔의 신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삶에 지쳐 가고 인간에 지쳐 가는 시간이 무겁습니다. 목련도, 나무도,새도 고단해 보입니다. 황사가 온다지만 창을 열고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줍니다. 땅속의 물길처럼 스며들어 가는 느린 피아노 어설픈 햇빛보다는 시원한 빗줄기가 더 그립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광기에 잠식되어 가는 조국에 환멸을 느끼던 헤르만 헤세가 망명길에서 버린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낮이 뜨겁고 혹독하면 저녁이 이를 불쌍히 여기고, 밤이 포근하고 부드럽게 어머니처럼 감싸준다.'고 노래한 헤르만 헤세에게는 전쟁에 광분하던 독일 사회의 결핍이 적이었습니다. 그 난폭한 외부 세계의 현실은 무질서한 오류로 다가왔을 겁니다.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때라야 해답에 근접하게 된다는 정신적 이정표가 세워졌겠지요.

구름과도 같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한 헤르만 헤세. 그는 결국 반전문학 운동을 벌이다 쫓겨나듯 스위스로 떠납니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남부 스위스의 몬타뇰라 언덕입니다. 해발467 미터의 고지에 있는 몬타뇰라는 황금의 언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일품이랍니다. 산들이 둘러싼 루가노 호수와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절경은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고 하지요. 그 언덕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헤르만 헤세가 살던 집이 있습니다. 망명 후 죽을 때까지 43년 동안 산 마지막 집 글 쓰는 것보다 정원 가꾸는 것을 더 즐겼던 시절입니다.

정원의 풀을 뽑으며 명상 유희를 했던 헤세에게 몬타뇰라의 삶은 실은 고난에 찬 것이었으나 결코 명랑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 같은 보석들이 그때 태어났으니까요. 헤세는 또한 이곳에서 2천 점이 넘는 밝고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베른바르트 코흐 Bernward Koch는 몬티뇰라에서 헤세가 그린 수채화들처럼 맑고 투명한 사유와 내면의 공명을 아름답게 재현합니다. 헤세의 많은 시가 작곡가들에 의해 음표로 음악으로 재현되었습니다.

베른바르트 코흐는 독일의 외딴 숲속에서 명상과 독서와 작곡에 파묻혀 사는 음악가입니다. 그는 헤세의 시대정신과 작품에 매료된 사람이며, 그의 피아노는 몬타뇰라에서 생을 보낸 헤세의 43년간의 은둔과 명상과 고독에 관한 또 다른 페르소나입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몬타뇰라 언덕의 오솔길을 따라가 봅니다. 그 옛날 바흐가 선사했던 명상과 영혼의 합일, 그리고 모차르트의 명랑성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조용한 저녁, 고뇌의 터널을 지나고 창밖을 바라보는 듯한 평온한 고독을 공유하게 됩니다.

황사에 차 뿌옇고 내일이 막막한 봄날, 당신과 나의 마음도 망명의 충동 안에 부유하고 있을 테지요. 베른바르트 코흐의 진중하나 무겁지 않게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에는 밝고 어두운 세계 모두를 지닌 영혼의 소지자에게 통하는 '공명에의 말 없는 권유가 있습니다. 맑은공기,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거기 달린 물방울, 그리고 폭풍 같은 세월의 벽.

평화는 오리라 「Peace Will Come」 「시간의 파도Waves Of Time」 「몬타뇰라Montagnola」 「아브락삭스로의 비행Flying To Abraxas」을 들으며 기다림의 공간을 넓히렵니다. 거기서 누구나 헤세가 되기를.

 

바람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을 / 강민석

 

Montagnola